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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담장 밖 세상을 전혀 알지 못하는 브룩스는 출소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
 교도소 담장 밖 세상을 전혀 알지 못하는 브룩스는 출소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
ⓒ 소니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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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면 교도소에서 50년 세월을 보냈던 브룩스라는 장기복역수가 나온다. 그는 법무부로부터 가석방 결정이 나자 돌연 교도소 내에서 소란을 피운다. 평소 조용한 수감생활을 했던 그였기에 모두가 그의 행동에 당황해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50년이라는 시간을 교도소라는 갇힌 공간에서 지냈던 사람이다. 교도소 담장 밖 세상을 전혀 알지 못하는 브룩스는 출소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가석방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고 브룩스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세기 만에 교도소 밖으로 나와야 했다. 예상대로 세상은 너무도 변해 있었다.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에는 보지 못했던 도로의 횡단보도, 신호등, 정신없이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높은 빌딩과 도심 가득한 사람들. 횡단보도 앞에 선 그는 건너야 할지 몰라 한참을 주저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가석방자들이 머무는 숙소를 배정받고 식료품점 일자리도 구했지만, 혼자라는 외로움, 전과자라는 탐탁지 않아 하는 시선에 적응하지 못했다. 매일 밤 현실에 적응 못 해 악몽에 시달리던 브룩스는 아직 교도소에 남아있는 앤디와 동료들에게 "나 같은 늙은 도둑 하나쯤 사라진다고 소란을 피우진 않겠지"라는 편지를 보낸 후, 자신의 방 천장 벽에 '브룩스가 여기 있었다'라는 글을 새기고 목매 자살한다.

강광보의 구술 = "지금도 누가 경적을 울리면 깜짝깜짝 놀라요. 아무것도 아닌데. 보안대 현역 군인들에게 고문을 당한 뒤로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교도소에서 몇 년간 불을 켠 채 잠을 잘 버릇하니 지금도 불을 안 켜면 잠이 안 와요. 그 공포라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게 후유증이라면 후유증. 그리고 가다가 가로등에 '보안'이라는 말이라도 보이면 깜짝 놀라고..."
 
제주 보안대 터
 제주 보안대 터
ⓒ 한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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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선 자리에 강광보가 다시 섰다. 그날 수십 일간 갇혀있던 보안대 건물과 고문을 받던 지하 조사실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어디쯤 보안대 지하실 입구가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 입구에 서니 그날의 서늘함은 그대로였다.

강광보의 구술 = "저기부터 지하가 되는 것 같네. 그 당시에는 이렇게 넓은 지하실이 없었어. 86년도 1월 초순. 왜 그것을 기억하느냐 하면 동네 후배가 미장 기술자인데 함덕에 집수리하는 일이 약 15일 정도 걸리니까 날보고 도와 달라고 하더라고. 근데 내가 잡혀간 거야. 집수리를 구정 전에 마치기로 했거든. 내가 여기(보안대) 와서 구정을 샜거든. 딱 한 달 정도 있었던 거지. 아이고, 지하(조사)실 옆에 보일러실이 있어서 춥지는 않더라고."

간첩으로 조작된 사람들은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몇십 년 동안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고립된 삶을 살아야 했다. 만들어진 간첩의 고통은 그들만의 것도, 그때만의 것도 아니었다. 자식들은 꿈을 포기해야만 했고, 가족과 친지들은 주변의 시선에 숨죽인 채 살아야만 했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빈곤한 삶, 간첩이란 꼬리표는 평생 그들의 삶을 옥죄였다. 뒤늦게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다 하더라도 지난 고통의 시간은 회복되지 않았고, 고문과 폭력의 기억도 사라지지 않았다.

올해 11월 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오경대씨는 이렇게 말했다.

오경대의 구술 = "53년간 저는 영혼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판사님이 저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영혼이 없던 저에게 영혼을 불어넣어 주신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제 저에게 날개가 있다면 저 높은 세상을 훨훨 날아올라 자유롭게 날고 싶습니다."

오경대씨가 말하는 영혼 없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사람이 많은 곳에는 절대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 누가 내 이야기를 하는지, 이런저런 말을 하지는 않는지 신경 쓰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구라도 저는 말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말이 불씨가 되어 다툼이라도 나면 모두 제 탓인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내가 억울해도 참고, 내가 손해 보더라도 참고, 그게 저의 삶입니다."

영혼 없는 삶이란 무리에 끼지 못하는 홀로 떨어진 짐승의 삶과도 같다. 사회안전망 밖의 삶, 그것이다. 있지만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만 의식되지 않는 그런 삶이다. 그 삶은 자신의 삶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오경대씨의 집에는 그의 아들이 성인이 되어 쓴 시 한 편이 벽에 걸려있다.

밤과 함께 자라나는 꿈

친구들과 울기 내기를 하다가
정말로 울어버렸던 시절에
무엇이 그렇게도 서러웠는지
지각 않으려고
창문으로 버스에 끼어들며 느꼈던 부끄러움도
딱지치기로 공책장을 다 날려버린 후의 씁쓸함도 아니었음을
아침에 차비를 꾸러 옆집으로 뒷집으로 출렁이던
할머니를 보아야 하는 아픔이었음을 안다.
지금은 안다.

급식 빵이 그리워 입학했던 학교에선
이따금 트럭을 멈추고 먹을 것을 사는
운전사가 무척이나 부러운 소년을
대통령으로
탱크를 만드는 과학자로
나누어주는 급식 빵만큼 부풀려 놓았지만
숨죽이며 대지 위에 올라선 어둠
헤쳐내지 못하고 방황하는 소년의 하늘을
적셔준 물방울 소리가
밤마다 잔잔하게 들렸던 파도소리가
할머니의 한숨소리였던 것을 지금은 안다

하늘 깊숙이 날아다니던 제트기가
소년이 외치는 우리나라 만세를
외면했을 때부터
자라난 소년의 꿈

집집마다 불이 오르는 저녁
철아, 순아, 누구야
친구들 쓸어가는 눈물 나는 소리를 들으며
불 꺼진 초가집과 함께
자라난 꿈.

이제는 안다
대학 정문까지 버스를 타고 들어왔어도
교문을 들어서면 안개 낀 앞길을
아파하며 걷는 이유를
흔들리는 수풀 사이로 한가닥 두가닥
피어올라 모두의 간절한 꿈이 되는 이유를

  
오경대씨의 아들이 썼다는 자작시. 그는 아들의 시를 자택 벽에 걸어놓고 매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오경대씨의 아들이 썼다는 자작시. 그는 아들의 시를 자택 벽에 걸어놓고 매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 한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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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대씨가 교도소에 갇히었던 동안 할머니에게 남겨진 아들은 어려서부터 가난을 몸으로 느끼며 자라야 했다. 시에서 보듯 등교를 위해 버스비를 빌리러 아침부터 이 집 저 집을 다니던 할머니를 보며 자란 아들의 아픈 마음이 시려온다.

아들의 마음속에 커다란 꿈이 자라고 있었지만, 결국 그 꿈은 '간첩의 자식'이 가져서는 안 될 꿈이었기에 그 꿈을 지켜보는 할머니는 냉가슴 앓듯 가슴 아파해야 했다. 이 시 한  편에 조작 간첩으로서, 또 그의 자녀가 가지는 사회적 상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태그:#수상한집, #평화박물관, #지금여기에, #간첩조작,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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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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