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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에서 한복 의상을 선보여 해외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블랙핑크.
  뮤직비디오에서 한복 의상을 선보여 해외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블랙핑크.
ⓒ 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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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뉴욕 타임즈>에는 그간의 케이팝 관련 기사와는 조금 방향이 다른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A centuries-old Korean style gets an update(수세기가 넘은 한국 스타일이 업데이트되다)"였다. 제목 바로 아래 사진에는 한복인듯 한복 같지 않은 의상을 입고 공연하는 블랙핑크 멤버들의 모습이 보였다. 부제목은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을 혁신적 디자이너들이 재창조하고 케이팝 스타들이 수용하고 있다"였다.

<뉴욕 타임즈>는 전세계적인 하나의 현상이라 일컬어질 만큼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케이팝 그룹 멤버들이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을 입고 무대에 섬으로써 한복에 쏟아지고 있는 관심을 조명하고 있었다. 실제로 최근 2~3년새 여러 케이팝 그룹들이 한국적 멜로디와 가사, 기와집이나 궁궐 등의 전통 건축양식, 전통무, 전통 소품, 그리고 무엇보다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한복을 선보여 '한국의 미'를 제대로 알리고 있다.

실시간 트렌드에 오른 'HANBOK'

블랙핑크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진행된 미국 NBC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The Tonight Show Starring Jimmy Fallon, 아래 '지미팰런쇼')에서 색다르게 변형된 한복 의상을 입고 신곡 'How You Like That'의 첫 무대를 공개했다. 이날 동시 접속자수만 약 21만 명에 이르렀고, 이곡은 발매와 동시에 해외 60개국 아이튠즈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뮤직비디오 후반 군무 신에서도 한복 의상이 군무의 웅장함과 어울리며 신비한 조화를 끌어냈다. 이 뮤직비디오는 공개 24시간 만에 8360만뷰를 달성해 유튜브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지미팰런쇼와 뮤직비디오를 본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은 한복 의상에 즉각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블랙핑크와 비슷한 퓨전한복을 입은 해외 팬들의 커버영상도 등장했다.

앞선 2018년, 방탄소년단도 '아이돌' 뮤직비디오에서 한복 의상을 입었다. 배경인 기와집, 탈춤을 연상시키는 전통 춤사위, 부채 같은 전통 소품 역시 한국의 미를 알리는 데 한 몫 했다. 방탄소년단 역시 '지미팰런쇼'에 출연한 직후 미국 현지 SNS 실시간 트렌드에 'HANBOK'이 올랐고 그 열기는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가 '어거스트 디(Agust D)'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D-2'의 타이틀곡 '대취타'는 왕이 행진할 때 쓰이는 전통 군악인 대취타를 샘플링해 만든 곡이다. 따라서 태평소, 꽹과리, 나각, 자바라 등 전통악기 소리를 들을 수 있음은 물론, 조선의 궁궐과 저잣거리를 배경으로 촬영된 뮤직비디오 초반에는 판소리도 흘러나온다. 한 편의 퓨전사극을 방불케하는 이 뮤직비디오에서 슈가는 임금의 시무복이었던 '곤룡포'를 입고 등장한다. '대취타'는 한국 솔로 가수곡으로는 처음으로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와 싱글 차트에 같이 진입하는 성과를 거뒀고, 뮤직비디오는 조회수 1억 5천만 뷰를 넘어섬으로써 또다시 많은 외국 팬들이 한복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접하는 기회가 됐다.

음악과 함께 한국의 미까지 퍼트리고 있는 한국 뮤지션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룹 '빅스'는 2017년 발매한 '도원경' 뮤직비디오에서 가야금 연주와 퓨전 한복의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룹 원어스(ONEUS) 역시 '오늘 달이 좋~구나~' 같은 한국적 가사와 멜로디를 바탕으로 한복, 농악과 탈춤, 부채, 전통가옥 등 온갖 한국적인 멋을 뿜어내는 배경과 소품들로 '가자(LIT)' 뮤직비디오를 가득 채워 마치 한 편의 멋들어진 국악공연을 관람한 것 같은 인상을 남겼다. 지난 4월 '2020 글로벌 K-POP 프로젝트-FOR THE LOVE OF 대한민국'의 일환으로 지코와 강다니엘이 발매한 'Refresh(리프레쉬)'도 전통적인 리듬, 전통 가옥, 상모돌리기, 두루마기 등을 통해 한국의 멋을 제대로 살렸다.

#hanbokstagram 검색하면 주르륵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에서 한복 의상을 선보여 해외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블랙핑크.
  뮤직비디오에서 한복 의상을 선보여 해외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블랙핑크.
ⓒ 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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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즈>는 특히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의 한복 의상과 그에 따른 반응에 주목했다. 블랙핑크가 '지미팰런쇼'에서 선보인 한복 의상은 곧바로 팬들의 경탄과 호기심을 끌어냈고, 뮤직비디오가 발매된 다음날 의상을 제작한 브랜드 사이트에는 4천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방탄소년단이 2018년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한복을 입고 등장했을 때 의상 제작업체인 '리슬(Leesle)'의 판매 역시 크게 늘었다고 했다.

"블랙핑크의 의상은 전통적인 동시에 현대적이었다. 제니의 핑크색 크롭 재킷을 만든 디자이너는 누구일까? 그 스타일은 무엇에서 영감을 받은 것일까? 팬들은 알고 싶어했다.

지난 몇년 간 BTS, 샤이니, 엑소 같은 케이팝 그룹 멤버들에게서 비슷한 디자인 컨셉이 발견됐다. 한복이라 불리는 한국의 의상 형태를 신선하게 재해석한 것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hanbokstagram이라는 해시태그로 검색해 스크롤해보면 한복 스타일이 업데이트되는 수많은 포스트들을 볼 수 있다.

몇몇 최신 한복 브랜드들은 헌신적인 열성 팬부대를 거느리는 케이팝 스타들에 의해 힘을 받고 있다."


이어, <뉴욕 타임즈>는 기원전 1세기까지 거슬러 오르는 한복의 역사 및 한국 전통요소들을 서양 디자인에 접목한 초기 디자이너들에 대해서도 살폈다. 1993년 파리 패션위크에서 저고리 없는 한복을 선보이며 최초로 한복 디자인의 경계를 넘어섰던 고 이영희 디자이너, <보그 코리아> 2006년 2월호에서 강렬한 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족두리로 스타일링한 모델을 선보이고 2014년 '한복진흥센터' 설립에 이바지한 스타일리스트 서영희, 2000년대 초반 조선시대 무관의 의복이었던 '철릭'을 여성용 중간 길이의 랩드레스로 재탄생시킨 디자이너 김영진이 그 세 사람이었다. 그중 김영진 디자이너의 말이 인상적이다.

"단지 과거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 그 속에 독창성이 없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한편으로 '오래됨, 낡음, 고루함' 같은 부정적 의미가 들어있을 것 같은 '전통'에서 그 무엇보다 '창의적이고 현대적이며 세련된' 스타일을 끌어내고 있는 최근 디자이너들의 소개도 이어졌다. 2018년 멜론 뮤직어워드 당시 방탄소년단 지민의 의상 '사폭 슬랙스'를 제작한 '리슬'의 황이슬 디자이너, 그리고 블랙핑크의 'How you like that'에서 제니와 로제의 의상을 제작한 '단하주단'의 김단하 디자이너였다.

"항상 한복을 입을 필요는 없겠지만, 한복도 흰티셔츠나 검은바지처럼 기본 아이템이 될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황이슬 디자이너는 엑스트라 스몰부터 라지까지 다양한 사이즈로 큰 사람, 나이 든 사람, 호리호리한 사람 누구도 배제되지 않으며 세탁이 용이한 한복을 추구한다.

실제 황이슬 디자이너가 현대적으로 재창조해낸 한복들을 찾아보니 정말 일상복으로 입을 수 있겠다 싶다. 아니, 입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날렵한 라인과 세련됨이 패션 '인싸'라도 만들어줄 것만 같다.

화려한 색감과 독특하고 고급스런 디자인으로 꼭 한 벌쯤 소장하고 싶은 욕심이 드는 김단하 디자이너의 한복에는 '환경보호'라는 가치까지 담겨 있다. 한국의 공기오염이 악화되는 것을 보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김단하 디자이너가 사용하는 원단의 30에서 50퍼센트 가량은 재활용 폴리에스터나 유기농 면이라고 한다. "환경보호와 전통적인 한국 디자인은 서로 잘 어울린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티셔츠의 둥근 칼라보다 한복의 직선 라인이 원단을 덜 낭비하게 되는 것처럼, "서양의 형태와 비교했을 때 원래 한복 디자인은 조각이 덜 남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성과

한복에 쏟아지는 외국인들의 관심은 케이팝 그룹들이 일궈내고 있는 또 하나의 성과다. 그리고 그 뒤에는 전통과 현대의 접목이라는 창의적 작업에 몰두하는 한복 디자이너들이 있다. 그들의 의상은 '멋지다, 쿨하다' 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가령, 블랙핑크 제니의 의상은 한복 저고리를 '크롭탑'(일명 '배꼽티')으로 변형시키고 '봉황문 인문보'라는 전통 보자기에서 따온 문양을 새겨 넣었다. 또다른 멤버 로제의 의상은 옛날 브래지어에 해당하는 한복의 '가슴 가리개'를 서양식 탑으로 변형시키고, 탑 위에 앞서 언급한 '철릭'을 매칭한 것이었다. 분명 한복이 아닌데 한복이었고, 서양옷 같은데 한국적 미가 생생히 살아 있었다.

<뉴욕 타임즈>의 기사를 접하면서, 한복을 무대의상으로 삼은 케이팝 그룹들의 뮤직비디오와 황이슬, 김단하 등 한복 디자이너들의 브랜드 사이트까지 샅샅이 살펴보았다. 흥미로웠고 자랑스러웠다.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무대에 당당히 우리의 한복을 입고 오르는 케이팝 스타들의 자신감과 패기가 고맙고, 그것을 가능케 해준 디자이너들이 존경스럽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이 생각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으로 재탄생해 세계인들의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태그:#한복, #케이팝, #블랙핑크 제니 로제, #BTS 지민, #뉴욕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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