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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달 정도가 되었다. 허리 디스크 수술 후 이 정도 회복 기간이면 남들은 벌써 건물 벽도 오를 정도이다. 난 타고난 약골이라 이제야 좀 거동이 자유로워 졌다. 돌아다니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수술 전에 내가 했던 모든 취미와 문화생활을 다시 되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우리 동네 전북 군산은 호수와 산과 바다를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제대로 품었으니 걸어 다니기만 해도 취미와 문화생활의 감성이 채워진다. 마치 산해진미로 잘 차려진 상차림 같다고나 할까.

봉사활동 할 기회도 많다. 강연, 공연, 행사도 자주 있고 배울 곳이 정말 많다. 내가 주로 애용하는 곳은 시립도서관, 군산대학교, 동네문화카페, 한길문고, 여성인력개발센터, 평생학습관, 새만금아카데미, 시민예술촌, 주민센타 그리고 지역 커뮤니티들이다.

나의 허리 상태에 맞추어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야했다. 수술 전 몸 담았던 설장구나 봉사활동은 아직은 어려울 듯하다. 대학병원 초음파 검사하듯 지역정보를 샅샅이 탐색하던 중 내 동공이 멈추는 기사를 발견했다.

읍사무소에서 운영하는 댄스반이었다. 춤도 배우고 운동도 하고 이만한 것이 없지 않은가. 에어로빅이나 줌바댄스는 동작이 세서 부담스러울 듯했고 라인댄스와 실버 라인댄스 중에 나는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선생님, 라인댄스 등록하고 싶은데요?"
"몇 살이신지여?"
"네. 사십……"


남은 뒷 수자는 듣기도 전에 선생님은 

"여기는 실버반이에요. 다 65세 이상이에요."
"네, 선생님. 실버반 알고 연락드렸습니다. 제가 몸이 썩 건강하지 않아서요, 어르신들보다 아마 제가 더 몸치일 것 같아요, 저한테 정말 맞을 거 같아서 이 운동이 너무 하고 싶어요. 선생님. 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코로나에도 끄덕없는 우리 동네 환상의 댄스반 이야기
 코로나에도 끄덕없는 우리 동네 환상의 댄스반 이야기
ⓒ 황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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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첫 수업 날이다. 말할 수 없이 기뻤고, 웃을 때 초승달로 변하는 선생님의 눈은 정말 갖고 싶은 명품 미소였다. 말씀은 더 명품이었다.

"어르신 여러분, 오늘 처음 온 수강생이 있어요. 보았지요? 근데 젊어~. 내가 오라고 했어요. 우리 어르신들끼리도 좋지만 젊은 사람 하고도 섞여 지내야 좋아.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이 너무 하고 싶다는 말이 진심으로 와 닿았어요~. 괜찮쥬~?"

내 부모님 얼굴을 하신 어르신들과 멋진 언니 하고 싶은 선생님 모두 나를 환영해주셨다. 나는 행운아다. 그저 난 성은이 망극할 뿐. 역시 경력직이 무섭다고 어르신들은 이미 몇 년째라 스탭을 다 외웠다.

착착 발 맞추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전주곡만 듣고도 들썩들썩 여유롭게 리듬을 타셨다. 어떤 노래 가사말처럼 '예상은 빗나가기 쉬울 수밖에~' 실버반이다 보니 스탭이 단조로울 거라는 예상은 틀렸다.

나는 헷갈려서 쭈뼛쭈뼛 어정쩡하게 따라 하기에 바빴다. 너무 틀려서 창피하지만 신나는 노래가 있어서 연신 마스크 속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 그래 이거야. 마스크를 착용했다고 '찔레꽃'을 안 따라 할 수는 없었다.
 
사람이 뭔가를 추구하고 있는 한 절대로 노인이 아니다
- 진 로스탠드
 
선생님이 뿜어내는 모든 것은 유연하되 짱짱하고, 우아하면서도 마력적이다. 댄스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한 곡 마치고 다음 곡 사이에 선생님의 특급 구호가 일품이다. 오른손 손가락 5개를 쫙 펴서 팔을 앞으로 뻗으며 큰 목소리로 선창을 하시는 게 아닌가.

"우리는~?"

'잠깐. 설마, 이 포즈는 인류의 구원자 아이언맨이 손바닥에서 로켓을 발사할 때의 그것인데, 그렇다면 우리 반 단체 구호가 우리는 아이언맨이다? 와우, 이렇게 신박할 수가.'

나의 상상과 동시에 어르신들도 팔을 뻗어 아이언맨 포즈로 외치셨다.

"우리는 오십이다~! 우리는 오십이다~!"
"어르신들, 젊고 활기차게 사세요. 처져계시면 보기도 안 좋고 자식들도 싫어해. 알았죠?"


역시 우리의 위대하신 영도자와 어르신들답다. 이제야 여기가 실버반이라는 실감도 했다. 다음 수업을 기다리는 어느 날, 주춤하던 코로나19가 한반도에 다시 창궐하여 우리 실버댄스반은 갑자기 휴강에 들어갔다. 잘 지내란 인사도 없이 헤어졌고 다시 개강은 그 후로 한 달이나 지나서였다. 어르신들도 나도 마치 해방된 조국에 만세 부르러 나오듯 모두 나오셨다. 너무 기뻤다.

"아이고, 이거 한 달 못해니께 사는 게 재미가 음써."
"그려, 나이 60넘으면 재미난 게 없다더니 진짜여. 근데 이거만 재미나."
"이거 쉬는 동안 다른 운동해는디 영 지루해. 당췌 못 쓰겄어."


춤신들의 주옥같은 추천사 한 마디씩이 쏟아져 나왔다. 중간에 청일점 어르신께서 홍삼 캔디 한 봉지를 나눠주셨다. 쉬는 시간마저 달달하고 건강하게 느껴졌다. 어르신은 선생님의 무겁고 큰 스피커를 매번 들어주시는 짐꾼을 자처하시는데 인심마저 좋으셨다.

나는 출석한 지 몇 번 안 되어 어르신들과 아직 친하지는 않다. 이름 외우는 것도 원체 잘 못한다. 이제 한 분 한 분이 궁금해졌다. 오래오래 좋은 댄스 친구가 되고 싶다.

나한테 맞는 취미를 찾은 기쁨은 운전면허 합격한 거만큼 기쁘다. 댄스가 그랬다. 오래 못 갔다. 몇 년 전 허리가 아프고부터 운동화만 신어야 하고 '난 이제 댄스는 못 하겠지' 했다. 중고나라에 팔아버린 댄스화가 요새 어른거린다.
 
 중고나라에 보내며 고이 고이 포장했던 댄스용 신발.
 중고나라에 보내며 고이 고이 포장했던 댄스용 신발.
ⓒ 황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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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은색 찬란한 더블 라인, 도도한 높은 굽의 화려한 자태. 내 한때나마 정열의 동반자, 그 녀석을 곱게 곱게 포장하던 그날이 생각났다. 떠나보내기 전 찍어둔 사진을 꺼내보며 거슬러 거슬러 시간 여행을 저절로 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난 이렇게 어르신들과 다시 시작할 테다. 오늘, 하얀 밤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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