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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1월 2일 오전 10시 46분]

나는 경증의 청각장애가 있고, 50대 여성이다. 사회복지를 전공했지만 경력이 단절 됐고 중년의 나이라 일을 찾기에는 악조건을 다 갖춘 셈이다. 정부는 뉴딜일자리라는 공공일자리 사업을 하고 있다. 이 사업의 취지는 '청년 및 취업취약계층이 일 경험을 쌓고 취업에 필요한 직무교육을 받아 민간일자리로 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다'이다.

올해는 4600명의 뉴딜 참여자를 모집해 각 분야별로 배치했다. 나도 서류와 면접을 거쳐 그 일자리에 채용되었다. 3월 9일부터 근무를 시작해 7개월째 일하는 중이다.

올 2월 말에는 코로나19 전염병이 터졌다. 모든 경제부문이 타격을 받았다.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다. 그만큼 일이 필요했고, 생계가 막막한 처지였다. 두 달 후인 12월 말이면 10개월의 근로계약이 종료된다. 다시 실업자의 대열에 서게 된다.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다. 

뉴딜일자리 사업, 기대가 컸지만...
 
서울형 뉴딜일자리 안내 이미지
 서울형 뉴딜일자리 안내 이미지
ⓒ 뉴딜일자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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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뉴딜일자리 사업중에 '여성일자리메이커사업'은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일자리라서 기대가 컸다. 내가 지원한 홍보 분야의 일도 배우고 기관에 도움 되는 일을 하겠다는 각오로 출근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코로나19가 터지자 기관은 휴업상태에 놓였다. 출근은 했지만 일이 없었다. 기관은 서울시와 근로계약을 맺은 사람에게 어떤 일을 어떻게 주어야 할지 몰랐다. 직원처럼 대하자니 부담스럽고, 책임질 일을 시키기도 난감하다. 그렇다고 놀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관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직원에게 일 맡기듯 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기관이 돌아가는 상황이라도 알게 팀 회의라도 참석케 해야 하는데 그것도 하지 않는다.  

코로나19는 잡히지 않았고, 평생교육기관은 수업을 할 수 없어 일이 줄었다.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여가 지나자 기관이 뉴딜 일자리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제대로 알고 있다면  참여자에게 그렇게 무관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여자는 나름대로 기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지만 직원도 아니고, 기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으니 일을 찾아서 하기도 어렵다. 나도 그랬다. 아침에 출근하면 홍보할 일이 없는지 기관 메일통을 열어본다. 없다. 개강하는 프로그램을 홍보할 전단지를 만들고 싶지만 콘셉트를 모르니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여성일자리메이커 사업의 세 가지 직무인 에듀플래너, 커리어컨설턴트, 홍보마케터에 맞는 일 경험을 하려면 배분된 직무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기관은 여력이 없다. 전체 상황을 오픈하지 않으니 참여자는 기관 돌아가는 상황을 알 도리가 없다. 뉴딜참여자를 위한 프레임을 만들고 업무를 분담하기에는 할 일이 많다. 시에서 사람을 보낸다니 받았을 뿐이다. 참여자를 담당할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일 경험을 하러 온 사람에게 문지기를 시키거나 각종 허드렛일을 시키기도 한다.

4:1의 경쟁률을 뚫고 웬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을 배치했지만 로드맵이 없으니 주먹구구식이다. 참여자의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이러한 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사람도 있다. 세금으로 만든 일자리사업이다. 국민의 피 같은 돈을 이렇게 쓰니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방치되지 않고 일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으면"

뉴딜 참여자를 대하는 기관도 문제지만 서울시에도 책임이 있다. 참여자를 파견하기 전에 기관과 충분히 소통하고 담당자 교육도 해야 한다. 사업의 취지에 맞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 점을 간과한 채 사업을 진행해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 피해를 보는 사람은 참여자다. 일을 하러 왔는데 일을 주지 않고 '보조 역할'을 한다. 긴밀하게 공유해야 하는 회의에 참석시키지 않으니 소속감이 없다. 책임감도 생기지 않는다. 꿔다놓은 보릿자루라는 생각만 든다. 뉴딜 참여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신고를 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뉴딜일자리에는 분야별로 매니저를 둔다. 여성일자리메이커사업에도 매니저가 있다. 매니저도 뉴딜일자리 형태로 채용한다. 매니저는 서울시와 뉴딜참여자의 중간자 역할을 한다. 서울시의 지침대로 직무를 할 수 있도록 돕고, 뉴딜참여자의 근무적응, 고충처리 등을 맡는다. 사업 주최자와 참여자의 중간에서 일하다 보니 할 일도 많고 부담도 크다. 매니저 한 명당 맡는 참여자의 수가 많게는 300명이나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중간자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뉴딜일자리 참여자의 정체성이다. 엄연히 서울시와 근로계약서를 쓴 노동자인데 왜 뉴딜 '참여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일을 하라는 건지, 일을 배우라는 건지, 빨리 다른 곳에 취업을 하라는 건지, 직원인지, 아닌지. 어디에 방점을 찍고 일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뉴딜일자리 참여자는 '노동자'라고 불러야 맞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근무시간에 따라 급여의 차감이 생기는 등, 계약직 노동자의 형태와 같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취업에 필요한 교육서비스를 제공해….'라는 목적에 따라 외주업체에서 뉴딜참여자의 직무교육을 맡는다. 외주업체는 참여자에게 직무교육을 많이 받게 해 실적을 올리는 것이 목표다. 교육을 듣는 사람의 욕구와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교육을 받으라는 문자를 보내지만, 어쩌다 듣고싶은 교육이 있어서 신청하려면 마감됐다는 메시지가 뜬다. 허탈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교육 듣기가 힘들다는 호소는 참여자 간담회에서 이구동성으로 나온 말이다).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시 일자리 정책과에 묻고 싶다. 뉴딜일자리 사업을 이대로 진행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많은 뉴딜 참여자들이 언급하고 있는 '일을 주지 않아서 소속감이 없다, 일의 수준이 낮아서 자존감이 떨어진다, 투명인간 취급한다, 왕따 시킨다'는 말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다음은 각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뉴딜 참여자와 메신저로 나눈 대화 내용 중 일부다.
 
A씨: "뉴딜일자리 참여자들이 기존 직원들과 불평등한 처우를 받고 있다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모든 참여자들이 각 해당 분야의 일을 경험하고자 지원을 하고 배치가 된거니 계약 기간만큼이라도 방치되지 않고 일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B씨: "제가 뉴딜일자리에서 가장 문제로 느껴지는 건, 모집 공고에서 봤던 업무와 실제로 센터에서 수행하는 업무 내용의 괴리가 너무 크다는 점입니다. 이런 불평등한 포지션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심리적으로 너무 힘듭니다."

C씨: "어디서 일도 못할 사람 대신 채용해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게 파견해 놓고 자리만 지키라는 식으로 일을 했어요. 일이 없으니 소속감도 당연히 안 생기고, 말할 거리도 없으니 그냥 투명인간이 되더군요. 실질적으로 센터 교육 운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스템은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정말 자존감도 낮아지고 우울하게 지냈습니다."

D씨: "문제가 있으면 관련 담당자와 소통하면서 조율하고 적정선을 찾아야 하는데 '돈 주면 그만이지'라면서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F씨 : "저에게 일을 주는 팀 회의엔 참석시키고, 그 외 센터 전체 회의에선 배제돼요. 다들 바쁘니까 뭔가 상세한 안내는 기대할 수 없으니 정말 눈치가 빨라야 욕 안 먹고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필자는 5년 전에도 뉴딜일자리에 참여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소속감 없고, 존재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2013년부터 이 사업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8년 된 사업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좋은 일자리 정책이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일자리로 이직한 사람이 많다'는 평가가 나와야 하는데 긍정적 평가는 눈에 띄지 않는다. 형식적인 만족도 조사를 하고,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판에 박힌 결과보고서를 낸다. 실업률 수치를 낮추고 취업률 수치를 높이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운 때 임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창출을 많이 하고 있다는 생색내기 사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예측하지 못한 전염병인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사람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나 역시 이 일자리가 아니었으면 굶어 죽었을지 모른다. 올해의 뉴딜일자리는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에서만 고마운 일자리다. 청년, 경력단절 여성, 장애인, 퇴직자 등의 취업취약계층이 어떤 심정으로 이러한 일자리에서 근무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당장 바로잡아야 한다. 

태그:#뉴딜일자리, #노동자, #취업취약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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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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