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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6월에 총 120조원 상당의 해외 대형 프로젝트 수주를 지원하는 해외수주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였다. 2년 내 수주 가능성이 높고 중요성이 큰 해외 핵심 프로젝트 30개를 선정 하여 15조원 상당의 다각적인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여 적극 뒷받침할 예정이다. 방글라데시 다카-마이멘싱 도로사업(5억 달러)과 다카 외곽 순환철도, 미얀마 달라 신도시 시범단지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올해 수주 목표는 36조원이지만 목표 달성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원을 위해서 글로벌 플랜트·인프라·스마트시티(PIS)펀드 1조 5천억원, 글로벌 인프라 펀드(GIF) 4천억원과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의 금융지원프로그램 1조 8천억원을 배정했다. 또한 10조 9천억원 상당의 정책 금융기관 보증, 대출, 경협중진자금도 해외 수주전에 투입할 예정이다. 선정된 핵심 프로젝트 외에 새로운 신규 유망 해외 프로젝트 추가 발굴을 위한 지원에도 역점을 둔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은 탓인지 3분기 내 해외수주가 대형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현대건설과 대림산업이 필리핀 교통부가 발주한 필리핀 남북철도공사 1공구(3838억원)와 2공구 공사(3636억원)를 각각 수주했고, 같은 현장의 차량기지 건설공사(3288억원)를 포스코 건설이 단독 수주하였다. 현대건설은 3조원 규모의 이라크 바그다드 도시철도 사업도 수주하였고, 현대엔지니어링은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정유공장 수소첨가분해시설 증설 프로젝트(1926억원)를 수주했다.

현재 해외 수주 시장은 꾸준한 증가 추세에 있지만 우리나라의 10년간 해외 수주는 2010년 716억 달러로 최고를 기록한 후, 2014년 단기 정점을 지난 후 급격한 하락추세이다. 2017년 290억 달러, 2018년 322억 달러는 전성기의 2분의 1 수준이며, 2019년도는 더욱 심해 223억 달러로 극히 부진했다. 이런 결과에는 건설사들이 국내 수주 활동을 강화하면서 해외 사업은 내실화와 수익성 위주로 전략을 바꾸어 해 수주활동 규모를 축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해외 수주가 양적 성장과 달리 중동·아시아 지역, 플랜트(산업시설) 분야 사업에 편중되어 있어서 중동과 아시아 지역에서 플랜트 분야의 발주물량이 적어지면 해외 건설 실적도 급강하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2014년부터 저유가 기조에 따른 주력지역 및 공종(플랜트)의 침체로 과거와 같은 해외수주 호황이 어려운 것이다. 또한 우리의 주요 진출 대상국인 개도국들의 현지 기업의 경쟁력 상승과 자국기업 보호주의 경향이 강해지고 있고, 경쟁국인 중국이 막강한 자금력과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공격적인 수주활동을 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영역은 기술력을 보유한 일본과 유럽 등의 선진기업들과 경쟁이 심화되면서 도급시장과 고부가가치 영역 모두에서 힘든 싸움을 펼치고 있다.

게다가 해외 인프라 시장은 정부재원 사업 발주에서 벗어나 민간투자를 적극 활용해 나가는 추세이기 때문에 가격적 요소만큼이나 기술력과 금융조달능력 등 비가격적인 요소가 더욱 중요시 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해외 투자개발형 사업 경험이 많지 않은데다 단순 도급에 주력해 온 우리 기업은 금융조달능력 또한 부족한 상황이라 수주경쟁력에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나마 여건이 괜찮은 대형 건설사와는 달리 중견·중소 건설사의 경우에는 금융지원 부족, 정보수집 어려움, 국내기업 간 과당경쟁으로 인한 출혈 수주, 해외건설 전문 인력 유인책 부족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해외 수주 활동이 어려워 국내 건설사 간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건설에서 중견·중소 건설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5~8%에 불과하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글로벌 부동산 붐과 그 여파 등으로 이 점유율이 약 13%까지 올라 간 것은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최근의 전체적인 해외건설 침체 속에서 중소 중견기업의 비중도 2016년 8.5%, 2017년 6.90%, 2018년 5.61% 등으로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등 대기업에 비해 어려운 상황이 가중되고 있다. 중견·중소 건설사에게 있어 해외 시장 진출은 대형 건설사의 보조건설사로서, 혹은 지분참여 정도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정부도 대형 건설사와 동반 진출하는 상생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중견·중소 건설사들의 약진이 있어야만 해외 수주 시장에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중견·중소 건설사들의 해외진출 기반을 확대할 수 있는 다각적인 해외 진출 및 수주 전략과 함께 공동 보증제도 개선을 포함한 금융지원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정부는 급변하는 건설 시장에서 국내 건설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설계, 시공 등 건설 전 과정을 통합 관리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을 향해 빠르게 전환한다는 방침을 지난 9월 3일 제113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국무총리 주재)에서 발표했다.

정부는 그동안 좁게 EPC(설계, 구매조달, 시공)를 관리하는 활동(Construction Management : CM), 또는 가장 좁게는 시공과 대비되는 설계(E) 부분만을 말하는 시공의 부수 활동인 건설 엔지니어링 분야를 광의의 개념으로 확대하여 시공과 연계된 초기 단계의 계획·설계 및 시공 이후의 운영·관리 등을 포함하는 건설의 전 과정을 통합관리하는 Project Management(PM: 건설 전 과정 통합관리) 개념을 도입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시공에서 고부가가치 건설 엔지니어링 중심으로 건설산업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 건설 사업 전반을 총괄 관리하는 통합사업관리를 도입하면서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업종으로 '종합 건설엔지니어링업'을 신설하고 시공사가 시공 노하우를 설계에 반영하는 시공책임형 CM을 확대하고, 시공사가 BIM을 활용하여 직접 설계하고 이를 시공 전 단계에 활용한 턴키 시범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내년 상반기부터는 시공사 위주로 참여하는 입찰과정에서 설계사가 공동으로 참여하도록 적극 유도하고 향후 설계사 주도의 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설계사는 시공 역량을, 시공사는 사업관리 능력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취지이다. 또한 스마트 건설기술을 활성화하기 위해 기술형 입찰과 턴키 입찰 시에 스마트기술 적용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스마트 건설기술 적용이 발주 및 사업자 선정의 주요 기준이 되는 스마트 턴키 발주도 추진한다. 2천억 규모의 스마트 신기술 R&D를 추진하면서 연내 마련될 PM 사업 가이드라인에 맞추어 내년에는 사업 계획부터 시공, 운영까지 포함하는 PM 시범사업을 공공부문에 도입하겠다는 입장도 내 놓았다.

국내 대형 건설사도 이런 흐름에 따라 스마트 건설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향후 직면하게 될 노동력 부족 문제와 더불어 수주 분야 확대를 통한 새로운 시장 개척까지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건설은 쌍용건설과 티푸스코리아, 생고뱅이소바코리아와 함께해 구조 틀로 사용되는 철재 프레임에서 발생하는 열교현상으로 인한 건물 냉난방 에너지 손실과 결로 발생에 취약한 부분을 해결한 트러스단열프레임과 발수처리 그라스울을 이용해서 건식 외단열 시공기술을 개발하여 건설신기술 제901호를 취득했고, 대우건설은 국내 최초로 아파트 옥탑 구조물에 하프-프리캐스트 콘크리트(Half-Precast Concrete) 공법을 적용할 예정이고 현대건설은 음식물 처리장, 하수 처리장 등 환경기초시설을 위한 악취관리 시스템 '홈스(HOMS, Hyundai Odor Management System)'를 개발했다.

미래 건설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내린 정부의 정책 결정에 대해 다양한 전망이 있다. 긍정적이고 당연한 진로라는 시각과 함께 금융지원 활성화에 대한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관점과 함께 로드맵이 현실화 단계에 들어서면 엔지니어링산업의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고, 시공사들의 무분별한 진입이 우려된다는 반응도 있다. 시공사가 설계와 사업관리 역량을 보유하는 게 설계사가 시공력을 갖는 것보다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공성과 효율성 중심의 기술력 향상에 편중되어 온 건설 산업의 흐름을 변화시켜 설계, 엔지니어능력 등의 소프트웨어 기술과 핵심소재 등 원천기술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건설 산업의 패러다임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부가가치의 원천이 되는 기술력이 취약한 상황에서 국내 건설사들이 패러다임 변화의 과정을 거쳐 선진국과 아시아의 중심으로 확대될 해외 건설 시장에서 고부가가치 수익 창출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나가는 저력을 보여 줄 것을 기대해 본다.

태그:#건설엔지니어링, #건설산업의 미래, #해외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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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대학교 교육학 석사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경영학박사 한양대학교 컴퓨터소프트웨어학과 박사과정 수료 선원건설(주) 연구개발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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