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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90년대생들은 참 바빴습니다. 학교에선 PMP에 담아놓은 '인소(인터넷소설)'와 팬픽을 몰래 읽으며 운명적 사랑을 꿈꿨고, 칙칙한 체리 몰딩에 둘러싸인 현실의 방 대신 싸이월드 미니홈피 꾸미기에 열중했습니다. 그 시절, '좋아요 반사'와 '일촌 파도타기'는 하루의 중요한 일과였지요. 엄마는 질색했지만, '얼짱'을 따라 샤기컷을 하고 열심히 돈을 모아 브랜드 옷을 사보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소중하고 낭만적이었던 그 시절을 '추억 팔이' 해봅니다.[편집자말]
완연한 가을이다. 가로수는 알록달록 색을 입기 시작했고, 퇴근 후 걷는 거리에서는 특유의 가을밤 냄새가 난다.

가을 냄새를 맡으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10여 년 전 이맘때 갔던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낮에는 새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지고 밤에는 입김이 나올 만큼 추운 지금의 색깔과 온도, 공기를 꼭 닮은 제주도의 가을이었다.

단체 버스를 타고 다음 장소에 도착할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일정이 끝난 후엔 입김이 호호 나오는 밤에 숙소 창문을 열곤 옆 방, 아래층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새벽까지 자지 않고 방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던 그 시간의 온도와 분위기는 매년, 이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그리울 것 같다.

'퍼가요~♡'로 우정을 나누던 그 시절
 
싸이월드.
 싸이월드.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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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든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 찍고 쉴 틈 없이 카톡과 SNS 알림이 울리는 요즘이지만, 그때만 해도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사진을 찍거나 문자를 할 때가 유일하게 휴대전화를 꺼내는 순간이고, 당연히 친구들과 얼굴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이 시절의 추억이 유난히 더 짙고 역동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휴대전화로 찍은 저화질 사진들은 간단한 포토샵을 거쳐 싸이월드에 올라갔는데, 일촌 친구들은 사진에 '퍼가요~♡' 댓글을 남기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공유해갔다. 일촌명은 서로만의 애칭으로 저장할 수 있었는데, 나와 상대가 얼마나 돈독한지 애정을 과시하는 귀여운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렇게 내 추억이 녹아들어 있는 싸이월드가 얼마 전 완전히 종료되었다. 소식을 듣고 사진을 미리 다운받아 놓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가을 공기에 아련해진 나는 고2 수학여행 사진을 꺼내 봤다.

풀뱅 앞머리(머리숱을 많이 내린 일자 앞머리)를 내린 동글동글한 소녀들이 성산일출봉 잔디에 쪼르르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하나 같이 앳되고 해맑다. 그 시절 유행하던 '초코송이' 단발 머리를 한 채 미소짓고 있는 나를 보니 덩달아 행복해진다. 싸이월드 사진 복구 문의 글이 여기저기서 보이는 걸 보면 옛 추억을 되새기고 싶은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왜 빛바랜 것에 열광하는 걸까 
 
'달빛천사'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달빛천사"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 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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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렸던 90년대 생들은 어느덧 사회활동을 하는 세대가 되었다. 추억을 추억으로만 간직하지 않고 이를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뜻이다.

지난해 15년 전 방영한 애니메이션 '달빛천사'의 OST 앨범을 구매할 수 있는 크라우드 펀딩이 열렸는데, 모금액이 무려 26억을 넘었다. 목표액인 3300만 원의 약 80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또 초등학교 앞 문구점 베스트셀러였던 10대 잡지 <와와109>도 지난 7월 크라우드 펀딩을 했다. 발행일에 맞춰 초등학생, 특히 여학생들이 줄을 서서 사곤 했던 잡지다.

심리 테스트와 연예 기사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편지지 도안이 들어있어 직접 오리고 접어 편지지를 만들고, 편지를 써 소위 말하는 '베프'와 주고받았다. <와와109>의 펀딩 목표액은 2500만 원이었는데, 하루 만에 이 금액을 넘었으며 마감일에는 약 1억9000만 원이 모였다.
 
텀블벅에 올라온 와와109 펀딩.
 텀블벅에 올라온 와와109 펀딩.
ⓒ 텀블벅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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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딩에 참여했던 이들은 어렸을 적 눈치 보던 '덕질'을 어른이 되어 실컷 한다고 말한다. 예전에 즐겨 했던 것, 갔던 곳, 사용했던 것의 이름만 들어도 그 시절의 감성이 되살아나고 마음이 뭉클해진다. 나도 언제든, 얼마든 추억을 덕질할 준비가 돼 있다. 

앞서 얘기했던 싸이월드부터 시작해, 하교 후 들르지 않으면 섭섭했던 캔모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앵두색 틴트까지. 하나하나 살펴보면 모두 사소하기 그지없는 것들인데, 우리는 왜 이렇게 빛바랜 것에 열광하는 걸까.

아마 우리가 그리운 건 대상 자체가 아닌 그 작고 사소한 것들에도 순도 100%의 웃음을 지을 줄 알던 그 시절의 우리가 아닐까.

태그:#추억, #싸이월드, #달빛천사, #와와109, #수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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