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현역 최고의 왼손 선발투수로 손꼽히는 클레이튼 커쇼(로스앤젤레스 다저스)는 1988년생으로 만 32세의 나이에 이미 웬만한 전설들이 갖춘 성과를 달성했다. 20대에 사이 영 상만 3번을 수상했고, 리그 MVP도 한 차례 수상했다. 최고의 왼손 투수에게 수여하는 워렌 스판 상과 더불어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까지 수상하는 등 최고의 인성까지 갖춘 투수다.

그러나 커쇼에게는 아직 한 가지 이루지 못한 것이 있다. 그에겐 아직 월드 시리즈 챔피언 반지가 없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는 1988년을 마지막으로 무려 32년 동안 월드 챔피언 트로피를 탈환하지 못했다. 특히 중부지구가 생기면서 각 리그 당 3개의 지구로 재편된 디비전 시대에는 한 번도 월드 챔피언이 되지 못했다.

2008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커쇼는 다저스가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던 2008년과 2009년에 처음으로 포스트 시즌을 경험했다. 다만 당시에는 선배 투수들에 비하여 역할이 적었으며, 다저스는 내셔널리그 챔피언 트로피도 들지 못했다.

이번이 10번째 포스트 시즌인 커쇼는 와일드 카드 시리즈, 디비전 시리즈,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이하 NLCS) 그리고 월드 시리즈까지 5경기에 선발로 등판했다. 그리고 이번 포스트 시즌 5경기에서 4승 1패 평균 자책점 2.94로 이전까지의 포스트 시즌에 비해 상당히 좋은 성적을 냈다.

가을남자 커쇼의 한 많은 포스트 시즌 도전기

커쇼는 2011년 내셔널리그 트리플 크라운으로 첫 사이 영 상을 수상했으며, 2013년과 2014년에는 정규 시즌 1점 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다. 이어 2015년에는 단일 시즌 300탈삼진을 달성하는 등 5년 동안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바로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포스트 시즌에 대한 도전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저스의 에이스 역할을 맡은 이후 커쇼는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가을 무대에 도전했다. 커쇼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3일 휴식까지 감수하며 1차전(7이닝 1실점)과 4차전(6이닝 무자책)에서 호투했고, 다저스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3승 1패로 꺾고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올랐다. 여기까지만 해도 커쇼는 정규 시즌의 위력을 포스트 시즌에서 이어가는 듯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했던 2013년 NLCS를 기점으로 커쇼에게 가을 악몽이 찾아왔다. 그래도 첫 등판이었던 2차전에서 커쇼는 비록 패전투수가 되었지만 무자책으로 호투했다. 하지만 지면 탈락하는 일리미네이션 게임이었던 6차전에서 커쇼는 단 1점의 득점도 지원 받지 못하고 4이닝 7실점 패전을 당했다.

2014년 디비전 시리즈에서 커쇼는 다시 카디널스를 상대로 설욕에 도전했다. 커쇼는 1차전 6회까지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7회에만 6실점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4점 이상 지원 받은 경기에서 패전을 당했다. 3일 휴식 후 4차전에서 다시 설욕에 도전했지만, 4차전에서도 6회까지 1실점했으나 7회에 추가 2실점으로 역전패하며 굴욕적인 가을을 보내야 했다.

2015년에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뉴욕 메츠를 상대로 1차전과 4차전 1승 1패를 기록했으나, 5차전에서 팀이 패하면서 다음 시리즈 기회를 잡지 못했다. 2016년에는 커쇼가 등판했던 1차전(선발승)과 4차전(팀 승리) 그리고 5차전(세이브) 3경기를 간신히 잡았다. 하지만 염소의 저주를 깼던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NLCS 2차전에서는 승리했으나 또 일리미네이션 게임인 6차전에서 패전을 당했다.

2017년에는 월드 시리즈 1차전에서 7이닝 1실점 승리투수가 되면서 드디어 우승에 대한 한을 푸는 듯했다. 그러나 5차전에서 4.2이닝 6실점의 악몽을 겪었고, 나중에 A.J. 힌치 전 감독이 주도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사인 훔치기 부정행위가 적발되면서 억울한 시리즈로 남고 말았다. 커쇼는 승자 독식 게임이었던 7차전 추격 상황에 구원 등판하여 4이닝 무실점으로 분투했으나 시리즈 분위기를 뒤집지는 못했다.

2018년의 월드 시리즈 도전도 당시 알렉스 코라 전 감독의 주도로 부정행위를 저질렀던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시리즈라 억울한 면이 있었다. 1차전 4이닝 5실점 패전을 당했던 커쇼는 5차전에서도 7이닝 4실점 패전을 당했다. 2019년에는 디비전 시리즈 5차전에서 구원 등판했다가 블론 세이브를 범하면서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했다.

역할 부담 일부 내려놓은 커쇼, 경미한 부상도 극복

2013년부터 2019년까지, 2015년을 제외한 거의 매 시즌 다저스가 포스트 시즌 시리즈에서 탈락한 경기에는 커쇼의 경기 기록이 남았을 정도로 가을은 그에게 안타까운 계절이다. 이는 커쇼가 중압감이 큰 1차전 또는 일리미네이션 게임에 등판한 적이 많았다는 점도 한 몫 했다.

커쇼는 2020년 10월 26일(이하 한국 시각) 등판한 월드 시리즈 5차전까지 포스트 시즌 37경기(30선발)에서 189이닝 13승 12패 1세이브 1블론 평균 자책점 4.19를 기록했다. 평균으로만 따지면 크게 심각한 문제는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커쇼가 부진했던 경기들의 임팩트가 너무 컸다. 정규 시즌 통산 175승 76패 평균 자책점 2.43과 비교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이기도 했다.

2020년 포스트 시즌에서 커쇼는 와일드 카드 시리즈와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이 아닌 2차전 선발 등판을 맡았다. 그동안 커쇼가 도맡던 1차전 선발 등판 역할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젊은 오른손 에이스 워커 뷸러에게 맡겨졌다. 일단 커쇼가 무조건 1차전에 등판해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놓은 셈이다.

큰 부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커쇼는 와일드 카드 시리즈 2차전에서 8이닝 무실점,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서 6이닝 3실점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커쇼의 호투와 함께 다저스는 두 시리즈에서 밀워키 브루어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모두 스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NLCS 등판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경미한 부상이 있었기에 커쇼는 당초 예정되었던 2차전이 아니라 4차전에 선발로 등판하게 됐다. 그동안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포스트 시즌에서 강했던 커쇼였지만, 컨디션이 완전하지 못했던 NLCS 4차전에서 5이닝 4실점 패전투수가 되면서 다저스는 1승 뒤 3연패 위기에 몰렸다.

이번 PS 4승 1패 2.93, 통산 PS 탈삼진 역대 신기록까지

다행히 다저스가 1승 3패 뒤 3연승으로 반격에 성공하면서 커쇼가 월드 시리즈에서 한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월드 시리즈까지 올라가서 이번 포스트 시즌 처음으로 1차전을 맡은 커쇼는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6이닝 1실점으로 제 역할을 다했다.

커쇼는 4일 휴식 후 타일러 글래스나우와 다시 한 번 선발 맞대결을 펼쳤다. 이전까지 월드 시리즈 5차전에서 2경기 1패로 부진했던 커쇼는 이번 5차전에서도 불안하긴 했다. 커쇼가 1회와 2회, 3회 그리고 4회까지 연속으로 매 이닝 선두타자 출루를 허용한 것은 커쇼의 메이저리그 커리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을 정도다.

결국 3회말 수비에서 적시타를 허용하며 2점을 허용한 커쇼는 4회에도 선두타자 마누엘 마고를 볼넷으로 내보내며 위기를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마고에게 2루 도루를 허용한 뒤 이 과정에서 송구 실책이 나오며 3루까지 진루를 허용했다. 이어진 볼넷으로 무사 1,3루 위기를 맞이한 가운데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커쇼의 관록이 진가를 발휘했다. 커쇼는 일단 이후 2명의 타자를 연속 범타로 처리하며 주자들의 추가 진루를 막았다. 이후 마고의 홈 스틸 시도가 나오며 하마터면 커쇼와 오스틴 반스의 배터리가 흔들릴 뻔 했는데, 여기서 커쇼가 침착한 동작으로 정확히 홈에 송구하며 그 위기를 막아냈다.

이후 더 이상의 큰 위기를 맞이하지 않았던 커쇼는 6회말 2사까지 책임지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왔을 때 커쇼가 아쉬운 모습을 보였으나, 애초에 커쇼의 투구수(5.2이닝 5피안타 2볼넷 6탈삼진 2실점 85구)를 체크하고 있던 로버츠 감독은 과감히 투수 교체를 단행했다.

이렇게 월드 시리즈 2번째 투구를 마친 커쇼는 올해 포스트 시즌 5경기에서 30.2이닝 10실점으로 4승 1패 평균 자책점 2.93을 기록했다. 올해 정규 시즌 6승 2패 평균 자책점 2.16과 비교했을 때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예전까지 포스트 시즌과 비교했을 때 올 가을의 커쇼는 확실히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올해 포스트 시즌에서 호투하면서 커쇼는 의미있는 기록 하나를 넘어섰다. 포스트 시즌 통산 207탈삼진을 기록하면서 이 부문 기존 기록 보유자였던 저스틴 벌랜더(휴스턴 애스트로스, 포스트 시즌 205탈삼진)의 기록을 넘긴 것이다. 벌랜더는 통산 사이 영 상 수상 2회에 MVP 수상 1회를 기록하고 있으며, 2017년에 월드 챔피언 반지를 손에 넣었다.

역사적인 기록 남긴 커쇼, 올해는 우승 이룰 수 있을까

이제 커쇼에게 남은 것은 월드 챔피언 반지 뿐이다. 다만 커쇼가 남은 월드 시리즈에서 선발로 등판할 가능성은 적다. 2011년 월드 시리즈에서 1차전과 5차전에 선발로 등판했던 크리스 카펜터(은퇴)가 7차전에 또 한 번 선발로 등판한 적은 있지만, 이는 6차전 예정일에 우천으로 인해 일정들이 하루 씩 밀린 덕분에 3일 휴식 후 7차전 등판이 가능했던 사례다.

다저스와 레이스는 27일 하루 휴식을 취한 뒤 28일에 같은 장소인 텍사스 주 알링턴 글로브 라이프 필드에서 6차전을 치른다. 만일 6차전에서 레이스가 승리할 경우 시리즈 전적 3승 3패 동률이 되어 29일에 7차전을 치른다. 6차전에서 레이스는 사이 영 상 수상 이력이 있는 블레이크 스넬을 선발로 예고했다.

커쇼(1차전, 5차전)와 뷸러(3차전, 7차전)의 등판 사이 공백이 있는 다저스는 2차전과 비슷한 방법으로 6차전에 토니 곤솔린이 선발로 등판한 뒤 불펜 이어 던지기를 준비하고 있다. 만일 6차전에서 다저스가 시리즈를 끝내지 못할 경우 7차전은 뷸러가 찰리 모튼을 상대로 선발로 나선 뒤, 커쇼와 훌리오 우리아스 등 선발 자원들도 모두 불펜에서 대기한다.

일단 다저스는 6차전에서 불펜의 물량 공세를 기반으로 최대한 지키는 경기를 진행할 예정이다. 당연히 투타의 힘으로 6차전을 이긴다면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그러나 만일의 경우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커쇼는 7차전 구원 등판을 통해 자력으로 다저스의 우승 트로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사실 포스트 시즌에서 승자 독식 게임까지 장기전이 이어질 경우 에이스의 구원 등판은 흔히 있는 일이다. 커쇼 역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승자 독식 게임에서 4경기 구원 등판했는데, 이 중 2경기는 세이브 상황이었다. 가장 최근 구원 등판으로는 2019년 NLDS 5차전에서 홈런 2개 허용으로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으며 승자 독식 게임 4경기에서 1세이브 1블론 평균 자책점 3.00을 기록하고 있다.

사실 커쇼에게는 우승을 꼭 이뤄내야 하는 또 하나의 동기부여 요소가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사이 영 상을 3번 이상 수상한 투수는 다저스의 전설 샌디 코팩스를 필두로 정확히 10명이다. 이들 중 아직 명예의 전당 심사를 8번이나 통과하지 못한 로저 클레멘스를 제외하고 은퇴한 7명은 모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3회 이상 수상 투수 중 맥스 슈어저(워싱턴 내셔널스)와 커쇼만 아직 현역 선수다. 그런데 지난 해 슈어저가 월드 챔피언 반지를 손에 넣으면서 이제 10명 중 월드 챔피언 이력이 없는 투수는 커쇼 밖에 없다. 이미 역사 속의 전설이 되어 있는 커쇼에게 있어서 이번에 우승에 실패하면 다음 기회가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일이다.

일단 커쇼는 6차전에서 팀 동료들이 경기를 치르는 모습을 지켜 볼 것이며, 7차전의 경우 불펜에서 언제든지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할 가능성이 높다. 어떠한 시나리오로 시즌의 엔딩을 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포스트 시즌 성적을 기록한 커쇼가 올해에는 과연 우승의 한을 풀어낼 수 있을지 지켜보자.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MLB 메이저리그야구 월드시리즈 LA다저스 클레이튼커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