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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재난이 있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는 일상적 불편함을 넘어 장애인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정부의 방역 사각지대 속에서, 돌봄 인력의 부재와 장애에 대한 몰이해가 장애인을 더 큰 재난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을 지난 6월 24일에 발표했지만, 이미 대구에는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4개월, 메르스 유행 이후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심지어 매뉴얼에는 예산도, 실행 주체도 제대로 명시되지 않아 장애인이 맞닥뜨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동안 정부 대신 매뉴얼의 빈틈을 메운 것은 시민단체와 장애인의 가족들이었다.
지난 2개월간 발달장애인이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추락사한 일이 세 차례 발생하기도 했다. 국가의 역할이 부재한 곳에서 재난은 계속되고 있다. 또다시 감염병이 확산하면 장애인과 같은 취약계층은 위험의 최전선에 있을 게 불 보듯 뻔한데, 왜 변화는 더딘 것일까. 
우리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지난 2월 대구 코로나 확산을 겪은 장애인 당사자(이자 활동가)와 장애인 인권 단체 활동가들을 만나봤다. 당시 장애인들이 겪은 재난이 현재 어떠한 상황에 있는지 들어봤다. 또한 감염병의 위험이 여전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상황에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했다.[기자말]
최상도 활동가는 2월 대구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고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 자가격리 대상자가 됐다. 동시에 대구 내 장애인 활동지원 인력이 매우 부족해진 상황 속에서, 같이 자가격리 대상자가 된 장애인 세 명과 함께 2주간 생활한 활동가이기도 했다. 우리는 직접 돌봄 공백이 발생한 곳에서 그 공백을 메우려 한 활동가의 이야기를 통해 재난 상황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당시 상황을 듣고 이러한 사각지대가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한 근본 대책을 들어보고자 한다.

다음은 지난 8월 8일, 최상도 활동가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장애인 생활 지원 인력 부족... 보건소에서 힘들다고 하소연"
 
인터뷰를 진행중인 최상도 활동가
 인터뷰를 진행중인 최상도 활동가
ⓒ 최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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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장애인 세 분과 함께 자가격리에 들어가게 되셨나요?
"저희 센터에서 활동하는 상근활동가 중 한 분이 확진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이 센터에 상주하는 분이라 (저를 포함해) 상근활동가 열 명 정도의 직원이 전부 자가격리 대상자가 됐습니다. 

당시 시나 정부 차원에서 장애인이 자가격리가 됐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뉴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단체에서 먼저 조치를 하고 대구시에 보고를 하는 형식으로 활동 지원을 들어갔습니다.

문제는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자가격리된 장애인들을 생활 지원할 수 있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겁니다. 저 역시 자가격리 대상자이고 장애인 분들도 자가격리 대상이다 보니 한 공간에서 자가격리와 동시에 활동지원을 들어가게 됐습니다. 다행히도 저희 단체 소속의 자립을 원하는 장애인들이 임시 거주하는 공간이 있어 거주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 매뉴얼이 없었으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일상적으로 그런 것도 있고, 매뉴얼이 작동이 안 되니까 애로사항도 있었습니다. 자가격리 중 한 장애인 당사자가 고열로 인해 급하게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서구보건소에 연락하니 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고열은 해열제 복용으로 대처를 하라고 하더라고요. 

또한 당사자의 고열로 인해 제가 코로나 검사를 즉시 받을 수 있도록 보건소에 요청하였으나 인력이 부족하여 코로나 검사를 직접 오라고 하더라고요. 자가격리 상태인데 밖으로 나오라고 하는 거죠. 한 분이 감기 증상이 있고 열이 나서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보건소에서 오히려 (매뉴얼이 없어)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 2주간 생활하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었는지요?
"가장 힘들었던 건 한 분 한 분마다 불안해하는 점이 달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적장애인 두 분과 뇌병변장애인 한 분과 함께 생활했었는데, 지적장애인 분의 경우에는 얼마나 코로나가 위험한지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워하셨습니다. 다른 분은 당장 우리에게 큰일이 나는 건 아닌지 감정적으로 불안해하셨어요. 그래서 상황을 이해시켜드리는 부분이 어려웠습니다. 지적 장애가 있으신 분들은 마스크를 실내에서 써야 하니까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계속 얘기해서 주의를 드려야 하고. 얘기할 때는 잘 따라주는 데 불편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벗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구시에서 지원해준 긴급구호세트.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의 경우 생 쌀이나 무거운 생수 등은 혼자서 사용하기가 불편하다.
 대구시에서 지원해준 긴급구호세트.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의 경우 생 쌀이나 무거운 생수 등은 혼자서 사용하기가 불편하다.
ⓒ 최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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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가격리 기간 동안 시나 단체에서 어떤 지원이 있었나요? 

"대구시에서 자가격리를 지원하는 물품 4박스를 보내왔습니다. 이후에는 민간단체와 저희 센터에 후원 요청을 해서 지원을 받았습니다. 대구시에서 지원해준 물품은 라면 10개, 햇반 6개, 5kg 쌀, 생수 2개, 3분 요리 등입니다. 언론에서 시의 지원 물품이 장애인의 경우 사용하기 어렵다는 내용이 나오면서, 민간에서 상황에 맞는 물품을 많이 지원해주셨는데 정말 감사하죠."
         
- 장애인이 사용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 같은 구성품들이네요.
"그렇죠. 장애인에 대한 고려는 부족했죠. 예를 들어 지체장애가 있는 분은 쌀을 드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무거운 생수를 따르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저희는 제가 생활지원 인력으로 함께 있었기에 물품 사용이 가능했지만, 지체장애인의 경우 혼자서는 이걸 받으면 스스로 해 먹을 수 없다고 봐야죠." 

장애인을 배려하고 생각한 제도는 없었다

- 장애인지역공동체에서 3월 2일부터 전문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장애인 생활지원인'을 모집했습니다. 그 이유가 있었나요?
"2월 당시에는 장애인 자가격리자를 생활보조하는 생활지원인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었습니다. (한 명이 양성이면 다른 한 명에게 전염시킬 수 있으니) 서로 자가격리가 되어있는 범위 상태에서 생활지원을 들어가므로, 장애인이 자가격리가 돼도 활동지원사가 지원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인프라가 없다 보니 비장애인 활동가를 중심으로 자가격리가 된 장애인의 생활을 보조해줄 사람들을 모집해야 했습니다. 

대신 위험수당이라는 인센티브를 주었습니다. 자가격리자를 지원하기 때문에 코로나에 대한 위험에 노출된 채로 지원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활동지원사 1명당 장애인 1명으로 1:1 매칭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일반인 대상으로 생활지원인 모집을 하면서 김시형 활동가 같은 경우처럼 장애인 혼자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사각지대는 어느 정도 해소가 됐습니다."

- 장애인 지원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까 활동가분들이 번아웃을 겪으셨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자가격리 해제 후 장애인분들이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신경을 되게 썼죠. 당시 생활 지원 인력 부족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한 후유증을 다들 갖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런 후유증에 대한 시 차원에서의 지원은 전혀 없었죠. 스스로의 몫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심리적인 지원은 지자체에 아마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도 계속 정서적 지원에 관한 요청은 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바뀌는 데는 되게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 코로나 블루 등 심리적인 차원에서 정부나 시의 지원은 부족했던 것이군요.
"
제가 자가격리됐을 때, 시 차원에서 불안하거나 힘들면 전화로 상담을 할 수 있게 했었어요. 그때는 상담사 1명이 많은 인원을 담당했어야 하는 거로 알고 있거든요. 장애인만을 위한 상담은 아니었죠. 장애인을 배려하고 생각한 제도는 없었죠."  

- 2월만큼의 심각한 위기상황은 어느 정도 지난 것 같지만, 그런 재난이 또다시 닥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을 돌이켜보며 그리고 앞으로를 대비하며, 감염병 사태에서의 장애인 관련 정책 또는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장애인들의 상황을 깊이 있게 고려하고, 장애인의 목소리를 행정에 반영할 수 있는 공무원, 전문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도 중요합니다. 만약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장애인은 어떡하지?'라고 떠올리는 사람은 현재로서는 장애인 당사자나 장애인 인권단체 활동가가 아니라면 힘들지 않을까요. 그런 인식이 바뀌어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학창시절에 장애인에 대한 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저는 거의 없거든요. 저도 고등학교 때 공립학교에 다녀서 장애인 학생은 있었지만, 학교 전체에서 장애인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그런 교육이 없었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배워야 하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2월의 대구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획-또 다른 재난이 있었다]
① "활동지원사 없이 격리된 2주, 지원키트 받는 순간 슬픔이..." http://omn.kr/1pz2v

태그:#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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