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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8일 볼리비아 대선에서 55.1% 득표율을 기록하며 대통령 당선인이 된 루이스 아르세. 그는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 집권 당시 경제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지난 10월 18일 볼리비아 대선에서 55.1% 득표율을 기록하며 대통령 당선인이 된 루이스 아르세. 그는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 집권 당시 경제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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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8일 볼리비아 대선에서 좌파 후보 루이스 아르세가 55.1%를 득표하면서 좌파 진영의 완승으로 끝났다. 개표 결과, 26%p 이상 완승하면서 여러 나라 언론들에서도 관심을 가졌다. 한국 언론도 볼리비아 대선 결과를 다뤘다. 특히 지난해 쫓겨난 에보 모랄레스가 언제 볼리비아로 돌아올지 추측하는 기사들이 많았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볼리비아 대선의 의미를 평가절하하는 보도 태도를 보였다. <조선일보>의 '포퓰리즘으로 나라 거덜낸 볼리비아 모랄레스 부활하나' 기사가 대표적이다. <조선일보>는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정책을 매우 비판적인 어조로 서술했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서민적인 풍모로 주목받았지만 포퓰리즘 정책으로 장기집권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집권기 내내 인구 다수를 차지하는 원주민 출신들에게 각종 요직을 내주며 사실상 국민 편가르기 정책을 펼쳤고, 서민과 저소득층을 위한 현금 퍼주기 정책으로 국가 재정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 <조선일보> 10월 20일 보도

과연 <조선일보>의 비판을 설득력이 있을까?

포퓰리즘으로 나라를 거덜냈다?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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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으로 나라를 거덜냈다는 것은 사실일까? '나라를 거덜냈다'는 의미가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가 거시 경제를 파탄냈다는 뜻이라면, 나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2006년부터 2019년까지 볼리비아의 경제성장률을 살펴보면 2019년을 제외하고 매년 3~5%를 기록했다. 특히 원유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한 2015년을 기점으로 보면 2018년 4분기에 5.23% 성장률을 보였다. 주변 남미 자원 보유국들과 비교했을 때 경제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모랄레스 정부는 천연가스 국유화를 통해 천연가스로 얻은 부를 사회적으로 잘 투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다. 그런 나라가 현재 남미에서 가장 선방하고 있다는 것은 위기관리를 잘했다는 의미다. 최저임금(월 단위)도 모랄레스 정부 이전인 2002~2005년간 430~440볼리비아노(한화 7만 원가량)에 머물렀다. 하지만 2019년 기준으로 2122볼리비아노(한화 34만 원 가량)까지 인상됐다. 분배와 성장이 선순환하도록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

'나라를 거덜냈다'는 표현의 의미가 비효율적인 경제 정책을 폈다는 것이라도 나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본다. 모랄레스 정부 시절 고용율은 2006년부터 2016년까지 60%대를 유지했고, 2016년부터 고용률이 상승하기 시작해 2017년에 70%에 도달했다. 실업률도 꾸준하게 3%를 유지했다. 양호한 지표를 보이는데 어느 부분에서 '나라가 거덜났다'고 하는 걸까?

비판받을 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2014년 이후 매년 재정 적자였으며, 정부 부채가 2014년 GDP 대비 37.6%에서 2019년 GDP 대비 56%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대다수 산유국들이 2014~2015년을 기점으로 저성장 늪에 빠졌다는 걸 염두에 두면 포퓰리즘 때문에 부채가 증가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모랄레스 정부가 집권하기 이전 시기에는 볼리비아 정부의 부채가 80%(2004년) 수준이었다는 점을 살펴봐야 한다. 2006년 모랄레스 전 대통령 집권 이후부터 2014년까지 8년간 30%대까지 정부 부채를 줄이고, 비율을 유지한 것을 보면 모랄레스 정권의 경제운영이 세밀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원주민 친화 정책'으로 국민 편가르기를 했다?
 
2019년 11월 6일,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대선 개표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와 모랄레스 대통령 지지 시위대가 충돌하고 있는 모습.
 2019년 11월 6일,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대선 개표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와 모랄레스 대통령 지지 시위대가 충돌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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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기사엔 "원주민들에게 각종 요직을 내주며 국민을 편가르기했다"는 언급이 있다. 볼리비아의 역사를 안다면 이런 표현을 사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볼리비아 원주민들은 볼리비아 인구의 55%를 차지하지만 원주민 출신이자 좌파 진영인 모랄레스 정권이 들어서기 이전까지 '2등 시민' 취급을 받으며 생활했다. 

정치·경제계 요직은 보통 백인 출신들에게 돌아갔으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인종 격차로도 이어졌다. 이는 인종차별과 인종갈등을 유발했다. 악순환을 끝내려는 것을 '편가르기'로 평가절하할 순 없는 일이다.

인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정치·경제적으로 배제된 소수층을 안배하는 정책은 선진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성, 장애인, 소수민족 등에게 자리를 할당하는 건 어느 정도 시대정신이 된 정책이다. 또한 다민족·다인종 국가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정책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볼리비아 원주민을 대변할 인사가 정부 내에 없다면, 그것은 합당할까? 역으로 인구의 10%밖에 차지하지 않는 볼리비아 백인이 정부 요직을 독점해온 것이 더 문제 아니었을까?

모랄레스 정부 역시 실책과 잘못이 많았다. 칠레와 영토분쟁을 겪었고, 비리 스캔들도 있었다. 그러나 비판에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정말 비판받아야 하는 부분보다 큰 문제가 없거나 엉뚱한 부분을 자극적인 단어로 보도하는 건 분명 문제다. 특히 국제 사안을 보도할 때 사실 왜곡이 한 번 발생하면 바로잡기 쉽지 않다. 국제 문제에 대해 언론과 시민사회의 세밀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태그:#볼리비아, #루이스아르세, #모랄레스, #포퓰리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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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사, 사회복지 관련 글을 쓰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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