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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명칭도 생소했던 존재가 어느덧 만성 고질병처럼 느껴지는 요즘이지만, 처음, 그러니까 코로나가 전 세계를 위협하며 뒤흔들던 때엔 가장 두려운 게 '사람'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 감염되어 입원과 치료를 하고, 퇴원 후에도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는 안 그래도 좁아터진 나의 인간관계를 흔들었다.

우선 모든 바깥 활동을 멈추게 했다. 아이의 유치원 졸업식에 참석하겠다는 친정부모의 방문을 매정하게 뿌리치도록 했으며, 그나마 간간히 얼굴 보고 지내는 사람들의 연락까지 피하게 만들었다. 강박증 환자처럼 온갖 항균 제품을 사들여 난사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지만, 워낙 집순이 체질인 내겐 이런 생활이 편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

그래서 처음 몇 달은 아무 근심 없는 모습으로 장기 휴가라도 얻은 사람처럼 뒹굴 대며 보냈다. 통장에 아직 잔고가 있는 데다, 제 아무리 고약한 병이라도 조만간 종식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도 존재했다.

여름이 다가왔지만, 코로나는 여전히 일상에 머물렀다. 때론 이기심으로 비롯된 어이없는 사건들은 폭발적인 확진자 수를 기록하며 다시 한 번 감염병의 무서움을 각인시켰다.

그사이 우리 가정에는 궁핍이 찾아왔다. 남편의 일이 사실상 멈추며 생계조차 막막한 지경에 이르렀다. 보다 못한 내가 반찬값이라도 보태겠다며 생업 전선으로 뛰어들었으나 그 마저도 두 달 만에 끊기고 말았다.

이런 생활이 길어지자 우울감이 찾아왔다. 코로나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등 들려오는 온갖 이야기에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불면증이 찾아왔고, 짜증이 늘었다. 감정기복이 심해지면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남편과 아이들에게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모든 일이 귀찮았다. 무얼 해도 무기력하고, 심드렁했다. 예전만큼 감정이 널뛰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괜찮은 건 아니었다.

어느 날,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다, 누군가의 고독사 뉴스를 보게 되었다. 죽은 지 한참이나 되었는데,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관심 가져주는 이가 없어, 악취가 나고 나서야 발견 되었다는 뉴스. 기저질환을 앓고 있던 그에겐 어째서 안부를 물어 줄 사람 하나 없었던 걸까.

고독사. 단어의 느낌조차 지독하게 쓸쓸한, 죽음. 어제까지만 해도 내일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을 그가 이런 외로운 죽음의 주인공이 될 줄 짐작이나 했을까. 그 날 이후, 몇 차례 더 '고독사'로 생을 마감한 이들의 뉴스를 접했다. 연령도 성별도 사는 곳도 다 달랐지만, 코로나가 이들의 모든 걸 끊어버린 점은 비슷했다.

고독사를 맞이한 그들의 죽음을 접할 때면, 죄책감이 들었다. 당장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엄한 마음을 품었던 시간이 외롭게 죽은 이들을 더욱 욕보이는 일처럼 느껴졌다. 괜찮을 리 없지만, 그래도 견뎌야겠다. 견디고 버티며 살아가는 일만이, 원치 않게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위한 예의라고 여기며, 소매를 걷어부쳤다.
 
멀리서부터 나를 발견한 지인이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 왔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멀리서부터 나를 발견한 지인이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 왔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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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지인을 만났다. 그동안 간간히 연락을 주고 받곤 했으나, 얼굴을 보게 된 건 실로 오랜만. 멀리서부터 나를 발견한 지인이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 왔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마스크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반달처럼 휘어진 눈이 활짝 웃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손을 맞잡을 순 없었만, 잔뜩 높아진 그녀의 목소리가 이 만남을 상당히 기뻐하고 있음을 알게 했다. 잠시 나눈 평범한 대화. 특별한 말도 아닌, 그냥 일상적인 안부.

헌데, 그 잠깐의 만남이 나에겐 햇살처럼 느껴졌다. 나의 '안녕'을 묻는 진심어린 목소리에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도 스르르 녹아 버렸다. 다정함에 온기가 감돌았다. 뜨끈한 국밥이라도 한 그릇 훌훌 먹고 난 것처럼 따스하고, 개운하고, 든든했다.

그 짧은 만남이 내게 힘이 되었다. 그때부터 다시 무언가를 하고 싶은 동기가 생겼고, 지속하고 싶은 의지도 생겼다. 이렇게 쓰고 있는 지금 역시, 동기와 의지가 지속되는 결과의 일부다.

코로나를 겪으며, 잠깐의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는 혼자를 즐기는 타입이지만, 내 동력은 사람과 만나는 일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아니어도 괜찮다. 일단 보고 싶은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나는 괜찮아, 너는 어때? 요즘 많이 힘들지?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일. 그 일이 내겐 어떤 약보다 효능이 좋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고독사한 이들에게도, 다정한 안부를 나눌 존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절친한 벗이 아니어도 그냥 오며가며 안녕을 물어 줄 사람 하나만 있었다면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부끄럽지만, 이런 마음 아픈 뉴스를 접하고 나서야 내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아차, 하는 마음으로 내 모습이 어땠는지 더듬어 보고, 비슷한 경우는 없는지 생각해 본다. 내 근처에 홀로 외로이 지내는 사람은 없는지, 오랫동안 연락을 미루고 지내온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정한 대화가 사람에게 약이 되는 걸 경험했으니, 나도 쓸쓸한 누군가를 위해,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존재에게 말을 걸어야겠다. 너무 늦기 전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전에.

태그:#코로나시대, #고독사, #소통, #언택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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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레이디 밋셸입니다. 말하기 보다 쓰기를, 쓰기 보다 듣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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