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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숲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선우가 쉬고 있다.
▲ 11살 우범소년  치유의 숲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선우가 쉬고 있다.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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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가명, 11세)는 소년법 위반으로 7호 처분(6개월 의료처우)을 받고 대전소년원에 수용되어있다. 출생 직후 보육원에 맡겨졌고, 부모에 대해 아는 사실은 없고 만난 적도 없다. 

"4살 때부터 분노조절이 안됐어요. 제가 4살 때, 보육원 이모가 화나게 해서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려 했던 게 지금도 기억나요."

선우는 초등학교 5학년이지만, 또래보다 체구가 훨씬 작고 앳되어 보이는 얼굴 때문에 2학년이나 3학년 정도로 밖에 안 보인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정신병원에서 분노조절장애 진단받고 지금까지 약을 먹고 있어요. 약을 먹으면 기분이 좋을 때도 있는데, 어쩔  때는 너무 잠이 와요.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너무 답답했어요. 제가 화가 나서 난동을 부리면 침대에 묶여 있어야 되거든요."

우범소년을 보호하는 소년법

지난 10월 22일은 선우의 퇴원일이었다. 하지만 선우가 보육원에 있을 때 난동을 부리고 동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보육원에서 인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소년원에서 퇴원할 때는 반드시 보호자의 손을 잡고 나가야 한다.

소년부 판사는 6개월 기간 연장을 결정했다. 선우를 인수할 보호자가 없기 때문에 소년원에 6개월 더 있어야 하는 것이다. 소년법의 이념과 목적은 '엄벌'이 아니라 '보호'이다.

선우는 보육원에서 교사의 지도에 불응하며 욕설을 하고 기물을 파손했다. 절도나 폭행, 사기 등의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선우의 비행명은 '소년법 위반'이다.

선우는 아래의 3항에 해당하는 우범소년이다.
※ 소년법 제4조(보호의 대상과 송치 및 통고)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소년은 소년부의 보호사건으로 심리한다.
1. 죄를 범한 소년
2.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소년
3. 그의 성격이나 환경에 비추어 앞으로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10세 이상인 소년

선우의 글씨는 개발새발이다. 구구단도 끝까지 못 외운다. 학교 수업시간에 교실을 돌아다니거나 운동장으로 나가서 놀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담임이 준 스케치북에 그림을 집중해서 열심히 그린다.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과 만화 캐릭터를 주로 그리고, 여가시간에 동료 학생들과 함께 보드게임도 한다. 선우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았다.

"소방관, 사육사, 수의사예요."
"소방관은 사람을 구해주고, 사육사는 제가 좋아하는 동물을 키우고, 수의사는 동물들을 치료해 주잖아요."


들뜬 표정으로 자신의 꿈을 얘기하는 선우는 여느 초등학생과 다름없다. 선우는 소년원 인성교육 수업시간에 나름 열심히 참여한다. 교사의 질문에 손을 들어 자신의 생각을 발표해서 상점도 받는다. 특히 미술치료나 십자수 시간에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앞으로 한글도 예쁘게 쓰려고 연습도 많이 하고 구구단도 마저 다 외울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대학도 가고 싶어요."

보육원에 있을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교사의 지도에 불응하며 대들었고, 동료 학생들에게도 위협을 가했지만, 소년원 생활을 하면서 행동이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예의바르게 인사를 잘하고 활발한 성격으로 형들과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다만 자신의 물건이나 가지고 싶은 것에 대한 애착이 강해 가끔 억지를 부릴 때가 있다. 

봉사활동을 통한 깨달음
 
장작을 실은 수레를 끌고 가는 선우
▲ 치유의 숲에서의 봉사활동 장작을 실은 수레를 끌고 가는 선우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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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조절이 되지 않아 목소리를 높일 때가 있지만, 화가 가라앉으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다. 담임인 필자는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선우와 봉사활동 학생들을 데리고 '치유의 숲'으로 간다. 산책로를 만들면서 베어낸 참나무와 소나무를 함께 옮기고 장작으로 쓰기에 적합한 크기로 톱질을 한다. 도끼질은 위험해서 필자가 도끼로 패서 장작을 만든다.

대전소년원 학생들에게 가마솥 라면을 끓여줄 때 쓸 장작들이다. 겨울에 군고구마통에 넣을 장작이기도 하다. 선우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숲에서 나무를 옮기고 톱으로 잘라 장작을 만들어 불을 피우는 과정을 체험하고 있다.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동안 인내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소년원생에게 가장 필요한 깨달음을 체험을 통해 얻는 것이다.

민생이란 무엇인가

'소년법 폐지·개정 및 촉법소년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청원은 지금까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가장 많은 답변을 이끌어낸 주제이다. 하지만 소년사법체계와 관련된 정책은 주요 국정현안으로 추진되지 못한 채,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그동안 국회의원들이 소년법 개정과 관련하여 수십 개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된 것은 하나도 없다. 대부분이 들끓는 여론의 법 감정을 달래기 위한 보여주기 식 법안 발의였기 때문이다.

또한, 소년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소년법 개정 및 촉법소년 연령 햐향, 보호주의와 엄벌주의에 관해 찬반양론으로 나뉘어 신문·방송에서 토론을 하지만. 전문가들만의 토론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법안 발의와 토론의 대상이 비행청소년이고 이들은 미래의 소중한 국가 자산이 아닌, 혐오와 엄벌의 대상으로 언론 기사와 댓글을 통해 배설적으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선우는 6개월 후에 퇴원하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선우 같은 무의탁 우범소년에게 절실한 것은 제도적, 실질적 지원이다. 

민생, 경제, 복지는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다. 검찰 개혁과 부동산 대책 등의 주요 국정과제도 중요하지만, '11살 우범소년의 민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태그:#소년법, #촉법소년, #소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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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20년 동안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위기청소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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