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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은 언감생심, 국내 여행조차도 꺼려지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아까운 계절을 '집콕'으로만 보낼 순 없죠. 가벼운 가방 하나 둘러메고, 그동안 몰랐던 우리 동네의 숨겨진 명소와 '핫플레이스'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전국 방방곡곡 살고 있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큰마음 먹지 않고도 당장 가볼 수 있는, 우리 동네의 보석 같은 장소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다 공짜라더니! 나는 공짜의 진실을 알아버렸다. 아름다운 공적 공짜는 바로 '도시의 공원'이다. 

도시 공원을 누리게 된 계기는 애 둘 육아 때문이다. 아이를 기르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아무리 내 돈 내고 밥 먹고, 커피를 마시고, 마트에 가더라도 아이와 함께 가면 값을 치른 비용만큼 즐겁기 어렵다는 사실을.

"뛰지 마라. 만지지 마라. 이 장난감은 안 사줄거니 참아라."

온갖 '안돼' 속에서는 애도 어른도 스트레스를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공원은 다르다. 자연이기 때문이다. 만지지 말아야 할 장식품도 없고, 참아야 할 장난감과 과자도 없다. 마음껏 뛰고, 만져도 된다. 공원에서 아이들은 뭐든 해도 되고, 격려 받으며 오감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공원은 좋다. 코로나 시대에 더 '뜨는' 명소가 됐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들은 실내 키즈카페로 가기에도 조심스럽고 도시를 넘나들기에도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한산했던 동네 공원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강원도 동해시에 산다. 그래서 동해, 삼척의 공원에서 애 둘 키우는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한다. 태백산맥 아래, 작은 바닷가 마을 공원의 이야기지만, 읽으면서 여러분 동네의 가까운 공원이 떠오를지 모른다. 아름다운 공적 공짜들의 분위기는 동네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곁에 있는 가장 가까운 자연이란 점은 모두 같을 테니까 말이다.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동해시 전천 공원
 
강원도 동해시 전천 산책로. 서쪽으로는 태백산맥을 마주하고, 동쪽으로는 동해 바다를 향한다. 전천과 나란히 걸으면 산이든, 바다든 어디로나 갈 수 있다.
 강원도 동해시 전천 산책로. 서쪽으로는 태백산맥을 마주하고, 동쪽으로는 동해 바다를 향한다. 전천과 나란히 걸으면 산이든, 바다든 어디로나 갈 수 있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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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 전천 공원은 작은 천(川)이 흐르는, 도시라면 있을 법한 공원이다. 물이 흐르고, 물 옆으로 산책로가 있으며, 군데군데 운동 기구가 있다. 넓은 잔디밭과 작은 놀이터도 있다. 이용료를 지불하면 가족 자전거나 투명 카누, 깡통 열차를 탈 수도 있다. 전천 공원의 시설은 딱 여기까지다.

하지만 전천의 시간을 채우는 건 산책하는 사람의 몫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수히 다양한 경이로운 자연이 있다. 동서로 길게 흐르는 전천을 서쪽 방향으로 걸으면 태백산맥을 마주하며 걸을 수 있다. 반대로 동쪽을 향해 걸으면 산책길의 끝에서 낚싯배가 여러 척 정박해 있는 바다의 입구까지 갈 수도 있다.
 
백로가 참새처럼 흔하고, 종종 갈매기가 날아들기도 한다.
 백로가 참새처럼 흔하고, 종종 갈매기가 날아들기도 한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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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물닭과 논병아리, 백로와 청둥오리, 박새와 딱새가 살기도 하고, 때로는 갈매기가 날아와 쉬기도 한다. 종종 고라니가 나타나기도 한다. 한번은 고라니가 놀이터까지 내려왔다가, 아이들보다 더 놀라 허둥지둥 엄청난 속도로 산을 향해 도망가는 것을 목격한 적도 있다.

여름 밤에는 반딧불이가 전천 공원의 검은 공중 위로 날아다닌다. 잔디밭으로 내려와 쉬기도 하는데, 손 위에 올려두어도 도망가지 않는 용감한 녀석도 있었다.
 
여름 밤에 반딧불이가 잔디밭을 기어다녔다. 손으로 잡아도 날아가지를 않았다. 겁도 없는 용감한 반딧불이를 만났다.
 여름 밤에 반딧불이가 잔디밭을 기어다녔다. 손으로 잡아도 날아가지를 않았다. 겁도 없는 용감한 반딧불이를 만났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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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너머로 지는 해를 보며 놀이터로 가자고 엄마 손을 잡아끄는 귀여운 4살과 함께라면, 그날은 정말이지 완벽하다. 식당, 마트, 카페에서는 언제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온 아이들이었다.

공원에서는 다르다. 숨이 차도록 뛰고, '계란프라이꽃'(개망초)을 돌 위에 얹으며 밥상을 차린다. 코스모스 꽃잎 사이로 숨은 꿀벌에 놀라 엉엉 울어도 코스모스 향기와 선선한 강바람 그리고 파란 하늘 속에서는 우는 아이마저도 오래 기억에 남을 풍경이 된다. 아이도, 어른도 공원 속에서는 온몸의 세포가 깨어난다.

공원은 기업에게 돈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좋은 장소로 홍보될 리 없다. 하지만 자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건 돈이 들지도 않을 뿐더러, 한 사람이 부쩍 성장하고 더 나은 사람으로 되어간다. 

아이들은 심장이 튼튼해지고, 집중력이 높아지며, 스트레스 상황에서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우수해진다. 부모의 지갑이 두껍든 얇든 상관 없다. 남편과 나는 자주 말한다. 이렇게 좋아도 되는 거냐고!

여기, 강원도 작은 바닷가 마을은 비록 용 안 나는 개천이라고들 하지만, 자연이 풍부한 이 개천에서 건강한 뱀으로 자라나는 게 그다지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용기가 난다. 그리고 건강한 뱀에게는 건강한 용이 될 힘이 잠재될 것이다. 자연이라 가능할 것이다.
 
전천과 나란한 평야에는 놀이터와 운동시설, 그리고 넓은 잔디밭이 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전천의 장소는 역시 놀이터다!
 전천과 나란한 평야에는 놀이터와 운동시설, 그리고 넓은 잔디밭이 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전천의 장소는 역시 놀이터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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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욕심을 잊게 만드는 삼척시 미로정원과 천은사

우리는 종종 폐교한 분교의 인공 호수에서 투명 카누를 탄다. 여기는 두 번째로 소개해드리고 싶은 도시의 공원, 삼척 미로 정원이다.

미로 정원은 폐교한 분교를 정원으로 꾸민 만큼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작은 바람만 불어도 산 전체의 나뭇잎이 서로 스치는 소리로 가득 찬다. 미로 정원에서 애 둘 태우고 카누 노를 젓다보면 느슨해진다. 긴장이 풀린다. 하완 작가의 책 제목이야말로 딱 그 기분이다. 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미로정원의 투명 카누. 어른 무릎 높이 정도의 얕은 인공 호수가 있어, 아이들과 카누를 즐기기에 좋다.
 미로정원의 투명 카누. 어른 무릎 높이 정도의 얕은 인공 호수가 있어, 아이들과 카누를 즐기기에 좋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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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정원을 비롯한 공원을 누리다보면, 나는 왜 개인 정원을 갖추기 위해 헉헉대며 몸과 마음을 소진했는지, 지나간 시간이 아쉽다. 벅차고 힘들게, 너무 열심히 살았다.

한 사람만 소유할 수 있는 사유재산이 아닌, 세금으로 운영되는 모두의 재산 속에서 두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이곳은 대한민국인데 말이다. 으리으리한 단독 주택을 꿈꾸기보다 세금이나 잘 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나는 한국의 공원들이 너무 좋아서 도무지 돈 욕심이 안 난다.  
 
삼척시 미로 정원. 폐교한 분교를 공원으로 다시 가꾼 곳이다.
 삼척시 미로 정원. 폐교한 분교를 공원으로 다시 가꾼 곳이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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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정원에서 차를 타고 10분 정도 더 가면 천은사가 나온다. 천은사는 산 속의 작은 절이다. 올라가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포장된 길, 다른 하나는 산길. 우리는 주저 없이 산길로 간다. 사실 우리의 원래 목적지는 절이 아니라 이 야트막한 산길이었기 때문이다.

입구에 주차한 후, 4살, 6살 두 아이를 데리고 산을 탄다. 저녁 무렵, 붉은 기운의 햇빛이 나무 사이로 들어와 작은 식물들을 비췄다. 색감만으로 따뜻하고 마음이 포근해진다. 폭신한 흙을 밟아서 더 편안하다.
 
천은사로 가는 산길.
 천은사로 가는 산길.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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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방역 수칙을 지켜야 하니 절 근처에는 가지 않고, 절 앞의 계곡에 잠시 손을 담갔다. 사실 우리 부부는 '잠시' 담그고 내려 가려 했지만, 애들은 이미 신났다. 아니, 물병에 물 뜨는 걸 30분이나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건지,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애들에게는 재미 있나 보다.

숲. 여기는 장난감 하나 없이도, 나와 남편이 아이들에게 '이제 제발 집에 가자'라고 애원하게 되는 곳이다. 육아 체험 코스 하나 없이도, 양육자들에게 가장 '힙한' 육아 성지다.
   
천은사
 천은사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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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하나 없이도 '얘들아 제발 집에 가자'하게 되는 곳. 바로 숲이다.
 장난감 하나 없이도 "얘들아 제발 집에 가자"하게 되는 곳. 바로 숲이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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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공적인 공간이나 시설이 그 자체로 훌륭할 때에도 개인적 영광에 대한 야심은 어느 정도 줄어든다. 그냥 평범한 시민이 되는 것이 괜찮은 운명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불안> 중, 알랭 드 보통 지음.

알랭 드 보통의 말이 맞다. 공원으로 가면 사는 게 덜 어렵다. 동해, 삼척의 공적인 공간과 시설 정도면 충분하다. 아이들을 양육하고, 가족들과 여가를 보내기에 모자라지 않다. 로또 당첨이라는 어마어마한 개인적 야망을 접어도 괜찮다.

태백산맥 아래의 작은 바닷가 마을이기에 다른 지역의 공원의 시설이나 풍경과는 다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와 당신에게 필요한건 동해의 '전천 공원'이 아니라 아이들이 뛸 수 있는 꽃이 핀 공원이고, 삼척의 '천은사'가 아니라 야트막한 숲이다. 이 아름다운 공적 공짜들은 동해와 삼척에도, 그리고 여러분의 도시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 장소들은 대단한 부자가 되지 않아도 소박하게 행복한 하루들을 보낼 수 있는 실마리가 되어 줄 것이다. 설령 코로나라는 감염병 위협 속에서도 여행 같은 일상은 이어진다. 우리에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적 공짜들이 있으니까.
 
삼척 장미공원. 도시의 훌륭한 공적 공간들은 개인적 야심을 누그러뜨린다.
 삼척 장미공원. 도시의 훌륭한 공적 공간들은 개인적 야심을 누그러뜨린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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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가을여행, #강원도여행, #동해시, #강릉시, #삼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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