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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그런 걸까요? 유독 층간소음의 고통에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게 느껴집니다. 시민기자들이 겪은 다양한 층간소음 사례를 담아봤습니다.[편집자말]
신혼집으로 시작한 아파트에서 나름 터줏대감으로 16년째 살고 있다. 그런 나에게도 이웃과의 황당한 사건은 있었으니, 때는 지난해 초였다. 어느 날,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복도에서 한 할머니와 마주쳤다.  

옆집을 지나 집 도어록을 누르려던 찰나, "언니" 하는 공기 반 소리 반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두리번거리는데 다시 나를 향해 "언니" 하고 부르던 그 할머니.

'응? 뭐지... 새댁도 아니고 애기 엄마도 아닌 언니라니?'라는 생각을 하며 눈이 마주쳤고 할머니는 옆집으로 이사를 왔다며 종종 놀러 오라는 말씀을 하셨다. 첫 대면, 첫 마디의 단어 선택이 쇼킹하여 어정쩡한 자세와 웃지 않는 눈웃음으로 인사를 하고 황급히 집으로 들어갔다.

그 후 할머니는 우리집 초인종을 딸 집에 놀러 오는 친정엄마처럼 스스럼없이 눌러대며 매번 참기름, 고춧가루, 고구마, 과일 등 먹을 거리를 나누어 주셨다. '이웃 간의 정이란 어디까지인가?'를 생각하며 받기만 하는 건 예의가 아니기에 답례로 음식을 갖다 드리며 눈길을 트고 손길을 텄다. 그러다가 사달이 났다.

나를 "언니"라고 부르던 할머니
 
 어디 선가 난다는 가스 냄새. 우리집이 주범으로 몰렸다.
 어디 선가 난다는 가스 냄새. 우리집이 주범으로 몰렸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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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며 세대를 초월한 호칭(할머니는 일흔이 넘으셨다) "언니"를 부르며 나를 호출했다.

"무슨 일이세요?"
"우리 집에 좀 와줘 봐. 집에서 가스 냄새가 나."
"예? 가스 냄새요? 그럼 위험한데... 가스밸브는 잠그셨죠?"


옆집으로 향했다. 다복한 가족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할머니, 가스냄새 안 나는데요.... 어디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안방에서... 독가스 때문에 온몸이 간지럽고 눈이 따끔거려 못살겠어. 나 자는 방에서 밤마다 잠 못 자게 그런대니깐."  


할머니의 '독가스 발언'에 아연실색한 나는 관리실에 전화를 한 후 직원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직원은 확인 후 '이상 없음'을 할머니께 통보하였고 그날 일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집이 '독가스 살포'의 주범이 된 것이다. 할머니가 우리집 초인종 누르는 횟수는 빈번해졌고, 복도에서 마주치는 날에는 어김없이 나를 붙들고 "왜 밤에 독가스를 뿜어 대느냐"며 몰아붙였다.  

그와중에 할머니는 한밤에 고성을 지르기 시작하셨다. 때는 바야흐로 한여름. 집집마다 창문이며 베란다 문을 열고 지내던 날들이니 한밤 고성에 잠을 자다 놀라 깬 게 우리뿐이었을까. 불면의 밤이 이어졌다. 

할머니의 이상 증세가 나날이 심해지는 듯하여 나는 나름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관리실에 전화하여 임대인의 전화번호를 알아보려고도 했고, 우리집이 독가스의 원흉이라 생각하는 할머니의 의심을 풀어드리고자 집을 오픈하여 샅샅이 보여드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모두 소용없는 일이었다.  

마지막 방법으로 할머니께 아드님을 직접 뵙고 상황 설명을 드리고자 전화번호를 물어보았으나 "왜 남의 아들 전화번호를 물어?"라며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셨다. 결국 우리 가족은 할머니를 낮밤으로 피해다니며 심각하게 이사를 고민하고 집을 보러 다니게 되었다.  

'주객이 전도되고',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상황이 어이없었지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것'이 이치라 생각하며 체념하였다. 그렇게 속 시끄럽던 해가 지나가고 새해가 시작된 2월에 코로나19가 전 세계와 우리나라에 퍼졌다. 이사 준비는 잠정 중단되었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억지'를 부리던 옆집 할머니는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이사를 가버렸다. 나중에 이웃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할머니가 지나가는 다른 이웃들을 붙들고 예외 없이 독가스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겨울이 깊어가던 무렵 다른 지역으로 기도하러 간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했던가. 할머니는 어느 날, 사라지셨다.

할머니가 떠나고 나에게 남은 것들
 
 노년의 외로움
 노년의 외로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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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 대한 온갖 소문은 무성했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외로웠음은, 알 수 있었다. 공포의 '어르신판 미저리'를 한 해 동안 나에게 시전 하시고 떠나신 할머니에겐 다복한 자녀들은 있었지만 돌보는 이 없는 독거노인이셨다.

일 년 동안 당신의 자식들보다 나에게 걸었던 컴플레인 탓에 그분의 공간에 더 자주 들나들었던 시간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할머니께 가족이란, '이웃보다 먼 관계'가 아니었을까. '독가스 살포' 진원지가 됐던 우리 집-가족들을 좋아하셨던 모습이 짧게나마 기억나는 건 서로 왕래하며 이웃 간의 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이웃간의 거리'는 거기까지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손길을 트고 발길은 텄지만 마음의 길까지 내주며 들여다 볼 온정은 미약했다. 어쩌면 할머니를 괴롭히던 독가스의 실체는 질식할 것 같은 노년의 외로움이었는지도 모르겠다(당시는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의 여유가 내겐 없었지만).

물리적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가 더 견디기 힘들었을 할머니. 댓글 시인 제페토의 시집 <그 쇳물 쓰지 마라>에는 노년의 아픔을 들려주는 시가 있다.
 
노년을 아프게 하는 것은
새벽 뜬눈으로 지새우게 하는
관절염이 아니라
어쩌면
미처 늙지 못한 마음 이리라.
 
이 글을 쓰는 내내 할머니의 외로움의 명도가 가을 낙엽처럼 선명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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