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한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대학교 정문.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한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대학교 정문.
ⓒ 부산대기록관

관련사진보기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이 처음으로 항쟁 발원지인 부산대학교 넉넉한터에서 열린다.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한 부마항쟁은 부산대에서 발발해 부산 시내와 마산 일대로 번졌다.

정부 주도 행사 2년째.. 부산대서 기념식 최초
 

행정안전부는 16일 오전 11시 부산대학교 넉넉한터에서 41주년 부마민주항쟁기념식을 연다고 15일 밝혔다. 지난해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정부 주관의 기념식은 이번이 두 번째다.

'다시 시월에 서서'라는 주제를 내건 기념식은 묵념, 경과보고, 유족 편지낭독, 기념공연 등으로 진행된다. 부마항쟁 관련자와 시민단체 활동가가 함께 애국가를 제창하며, 이어서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이 항쟁에 참여했던 故 신용길 씨의 시를 읊으며 묵념을 한다.

경과보고는 부산·마산MBC 라디오 방송으로 잘 알려진 '부산 자갈치 아지매(박성언씨)'와 '마산 아구 할매(김혜란씨)'의 구수한 사투리가 맡는다. 부마항쟁 희생자로 인정된 고 유치준씨의 유족은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나아가야 할 다짐을 담아 편지를 낭독하기로 했다.

부산대 학생들은 직접 작사·작곡한 '시월에 서서'를 공연하고, 부산과 마산 출신의 밴드가 노래를 부르며 마지막을 장식할 예정이다. 부산·마산 출신 밴드는 '육중완밴드'와 '노브레인'이다. 이들은 고 신해철씨의 무한궤도가 만든 '그대에게'를 함께 부른다.

이번 행사는 항쟁이 시작됐던 부산대에서 열리는 첫 기념식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행안부는 "부산대는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이 시작됐고, 넉넉한 터는 부마항쟁뿐만 아니라 학원자주화투쟁, 1987년 6·10민주항쟁 등 각종 민주화 운동이 열린 상징적인 곳"이라고 소개했다.

부산대 관계자도 감회가 남다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4년 전부터 부산대가 부마항쟁의 발생지로 이를 기념하는 여러 행사를 펼쳐왔지만, 공식적으로 항쟁 당일 기념식을 여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항쟁 이후 41년 만에 부산대 넉넉한터에서 행사를 여는 만큼 어느 때보다 뜻깊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열리는 만큼 참여 규모를 제한한다. 정부는 항쟁 관련자와 가족 등 100여 명이 참가한다고 밝혔다.
 
부마민주항쟁 41주년 기념식 포스터
 부마민주항쟁 41주년 기념식 포스터
ⓒ 행정안전부

관련사진보기

  
부마항쟁은 항쟁은 1979년 10월 부산대를 시작으로 부산과 경남 마산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말한다. 박정희 유신정부에 항거해 10월 15일 부산대학교 효원회관에서 부산대생의 소규모 시위가 시작됐고, 다음 날인 16일에는 수천여 명이 모여 '독재 타도'를 외쳤다. 경찰이 저지에 나서자 이들은 시내로 진출해 시위를 확대했다. 동아대와 고신대 등 다른 학교 학생들과 시민들까지 동참하면서 시위 규모는 삽시간에 불어났다.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이 불타는 등 부산을 넘어 마산으로 시위가 확대되자 유신정부는 경찰은 물론 군까지 투입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유신정부는 강경 진압에 나서 시민과 학생 1500여 명을 연행했다. 10여 일 뒤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숨지는 10.26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에 부마항쟁은 유신체제의 붕괴를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현대사에서 4대 민주항쟁으로 불리지만, 지난해야 국가기념일로 지정될 정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40주년 국가기념식에 참여해 민주주의의 성과, 진상규명, 관련자 명예 회복에 더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태그:#부마민주항쟁, #41주년 기념식, #부산대학교 넉넉한터, #육중완밴드, 노브레인, #박정희 유신독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입니다. kimbsv1@gmail.com/ kimbsv1@ohmynews.com 제보 환영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