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임동혁(왼쪽)-비예나 선수

대한항공 임동혁(왼쪽)-비예나 선수 ⓒ 한국배구연맹

 
대한항공은 올 시즌 프로배구 남자부의 강력한 우승 후보다. 포지션별 전력 균형과 경기 완성도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선수 구성이 강력하다. 대한항공은 지난 8월 열린 2020 KOVO컵 대회에서 외국인 선수 없이 국내 선수만으로도 준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 때도 5세트 막판까지 접전을 펼치다 한 끗 차이로 패배했다. 세트 스코어 2-3(18-25, 25-19, 20-25, 25-23, 18-20) 패배였다. 

V리그에서도 최근 흐름이 좋다. 지난 2016-2017시즌부터 2018-2019시즌까지 3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지난 시즌도 우리카드와 막판까지 정규리그 1위 경쟁을 펼쳤다. 특히 2017-2018시즌은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하며, '팀 창단 이후 최초'로 겨울 리그 왕좌에 올랐다. 2016-2017시즌, 2018-2019시즌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대한항공은 라이트 비예나(27세·192cm), 임동혁(21세·201cm), 레프트 정지석(25세·195cm), 곽승석(32세·190cm), 센터 진지위(27세·195cm), 이수황(30세·196cm), 진성태(27세·198cm), 세터 한선수(35세·189cm), 유광우(35세·184cm), 리베로 오은렬(23세·178cm)이 주축이다.

주전과 백업 멤버가 고루 탄탄하다는 점이 최대 강점이다. 다만, 센터진과 리베로가 상대적으로 약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한선수, 정지석, 곽승석은 남자배구 대표팀 주력 멤버들이다.

대한항공의 플레이 스타일은 '토털 배구를 바탕으로 하는 스피드 배구'를 추구하고 있다. 올해는 외국인 사령탑인 산틸리 감독(55), 프란체스코 올레니(44) 코치까지 영입하면서 더욱 기대감을 갖게 하고 있다. 산틸리 감독과 올레니 코치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유럽 빅 리그 경험이 풍부하다. V리그 역사상 외국인 감독과 코치를 동시에 선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적 육성 '장신 유망주'... 프로에서 '퇴보 코스' 

우승 후보인 대한항공은 다른 구단과 다른 측면에서 '특별한 고민'이 하나 있다. 바로 '임동혁의 성장'이다.

임동혁은 지난 2017년 9월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고교 3학년 신분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1라운드 6순위으로 대한항공에 지명됐다.

임동혁은 프로 입단 전부터 한국 남자배구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 잠재력이 높고, 남자배구의 장신화를 위해서도 임동혁의 성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배구협회도 고교 1학년 때부터 일찌감치 성인 대표팀 발탁과 훈련 참여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지원을 했다.

임동혁도 국제대회에서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17년 8월 남자배구 U19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전체 선수 중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러면서 베스트 아포짓 스파이커(최고 라이트 공격수) 상을 수상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4위를 기록했다.

문제는 프로 진출 이후였다. 한국 V리그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외국인 선수에 의한 국내 라이트 선수의 도태 현상이다. 임동혁도 피해가지 못했다. 프로 진출 이후 3시즌 동안 주전은 고사하고 경기 출전 기회도 미미했다.

임동혁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선수를 밀어낼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다면 좋았겠지만, 신인 선수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경기에 띄엄띄엄 출전하는 상황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상위권 성적이 중요한 구단과 감독들도 당장의 승리를 위해 외국인 선수에 중점을 둔다.

뜻밖에 찾아 온 기회... 외국인 감독과 KOVO컵
 
 산틸리 대한항공 감독... 2020 KOVO컵 대회 (2020.8.26)

산틸리 대한항공 감독... 2020 KOVO컵 대회 (2020.8.26) ⓒ 한국배구연맹

 
결국 한국 V리그에서 신인 선수의 성장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많이 따라야 한다. 팀과 감독을 잘 만나야 하고, 팀원 구성상 비집고 들어갈 공간도 있어야 한다. 이는 팀 사정과 감독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V리그와 해외 빅 리그가 가장 큰 차이가 나는 대목도 유망주 육성 부분이다. 해외 빅리그 중 한국처럼 신인 드래프트 제도를 실시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열악한 학교 배구에 의존하지 않고, 프로 구단들이 직접 투자해서 어린 선수를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클럽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때문에 18세~20대 초반의 유망주들이 프로 리그 주전은 물론 대표팀 핵심 선수로 활약하는 사례가 매우 많다. 신흥 스타들이 계속 나온다는 얘기다.

종목을 막론하고 선수는 경기에 자주 출전해야 잠재력도 발휘하고 성장할 수 있다. 반대로 출전 기회가 미미하면, 있는 기량도 도태될 수밖에 없다.

임동혁도 그렇게 사그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올해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하나는 외국인 감독을 만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KOVO컵 대회였다.

유럽형 스피드 배구에 익숙한 산틸리 감독이 라이트 포지션에 장신 공격수를 선호하는 건 당연하다. 이는 유럽형 스피드 배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산틸리 감독은 언론 인터뷰 등에서 임동혁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고, 많이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8월 KOVO컵 대회에서 임동혁에게 또 한 번 큰 기회가 찾아왔다. 비예나가 유럽선수권 예선전 출전 관계로 팀에 합류하지 못하면서 대항한공의 라이트 주 공격수로 뛰게 됐다.

임동혁은 KOVO컵에서 국내 선수와 외국인 선수를 통틀어 단연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고, 준우승 팀 수훈 선수에게 수여되는 MIP상을 수상했다. 

임동혁 성장과 남자배구 미래 '공통 숙제'

임동혁의 성장은 남자배구의 미래 그리고 V리그 흥행과도 연결된다. 이는 비단 임동혁에게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다. 다른 프로구단의 유망주들도 마찬가지다.

한국 남자배구는 지금 정체 또는 하락 위기 국면에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국제대회 성적 부진과 그에 따른 신진 대형 스타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프로 리그 흥행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때문에 스타성이 풍부한 선수가 V리그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고, 국제대회에서 대표팀 핵심으로 성장하는 일은 프로구단의 생존과도 직결된다. 

결국 관건은 경기 '출전 분량' 확보다. 선수 본인이 기회를 부여받았을 때 제 몫을 해야 하고, 감독도 신념과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부분이다. 

대한항공 구단 프런트도 임동혁 성장의 중요성에 대해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 구단 핵심 관계자는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감독의 의지도 있고, 임동혁도 KOVO컵 때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며 "올 시즌은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출전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동혁이 한 단계 더 성장한다면, 대한항공은 장기 레이스에서 큰 힘을 받을 수 있다. 중요한 국면 해결과 어려운 볼을 처리해야 하는 라이트 공격수가 더욱 탄탄해지기 때문이다. 올 시즌 대한항공을 지켜보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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