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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우리 집은 마을에서 가장 가난했다. 다섯 평 남짓한 집엔 TV도 없었고 냉장고, 라디오, 전화기도 없었다. 수도도 없어서 매일 저녁 뒷집에서 먹을 물을 길어와야 했다. 삼십육개월 할부로 산 냉장고가 들어오던 날은 너무나 신이 나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밟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생활보호대상자였다. 우리같은 생활보호대상자에겐 정부에서 연탄값(3000원)과 쌀(정부미)을 지원해 주었다. 지금은 대상이 기초수급, 차상위, 다문화, 교육지원 등으로 확대되었고 지원도 많이 늘었다. 어릴 때는 생활보호대상자라는 사회적 배려가 스스로에게 어떤 낙인감을 주는지 몰랐다.  
 
기본소득은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시기와 방법의 문제다.
▲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시기와 방법의 문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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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취업을 해서 돈을 벌면 어린 시절의 결핍은 충족될 줄 알았다. 게다가 적당한 결핍은 한 사람이 소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난한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에 싫은 이유를 하나씩 대며 일부러 외면했다.

하지만 그런 외면은 결핍이 주는 상처를 아물지 못하게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아무리 맛있는 어묵을 사 먹어도, 어린 시절 오십 원이 없어서 남이 먹던 어묵국을 구경만 하던 결핍은 채워지지 않았다. 배는 불렀지만 괜찮아지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를 지지하는 까닭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를 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하나 있다. 가난한 사람이 그들을 대변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게 아니라 부자를 대변하는 후보에게 투표를 한다. 가난한 사람은 진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보다 더 보수적이고 개혁과 변화를 싫어한다. 왜 그럴까? 가난한 사람들이 주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게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중세 시대 유럽의 귀족들은 식사를 할 때면 밀로 만든 단단한 빵을 깎아서 그릇(트렌챠, 트랑쇼와)을 만들었다. 그 단단한 빵 그릇에 스프와 고기를 담아서 먹었다. 그리고 귀족들은 식사후 접시로 쓰인 양념 묻은 빵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곤 했다.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질서와 개혁이 요구되었을 때 귀족들에게 양념 묻은 빵 접시를 받아먹던 이들은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이 아닌 자신을 멸시하고 핍박하던 귀족들 편에 섰다. 가난한 이들에게 새로운 질서나 정의, 개혁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당장의 굶주림을 해결해 줄 양념 묻은 '빵 그릇'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의 출발점이 된 무상급식 논쟁
 
무상급식 도시락 사진, 지난 2020년 4월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지역아동센터가 휴원을 하였고 결식아동을 위한 도시락을 만들어서 아이들 집에 배달했다.
 무상급식 도시락 사진, 지난 2020년 4월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지역아동센터가 휴원을 하였고 결식아동을 위한 도시락을 만들어서 아이들 집에 배달했다.
ⓒ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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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시에서 무상급식 논쟁이 한창일 때 나는 사회복지사로 성남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쳤다. 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했고 그 때문인지 꽤 오랫동안 시설장으로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지역아동센터에서는 오래전부터 아이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했다. 지역아동센터에선 아이들이 식판을 내민 손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학교에서도 무상 급식을 하고 있으며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급식 카드를 내미는 손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기본소득 논쟁도 마찬가지다. 미래권력인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도 기본소득을 주제로 찬반 논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무상급식이 그랬던 것처럼 시기와 방법의 문제다. 

노동이 필요 없어진 사회,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일하는 로봇.
 일하는 로봇.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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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성이었다. 그래서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노동이 사라지고 있다. 아니 인간보다 힘도 세고 능률적인 로봇으로 대체되고 있다.

요리, 서빙, 배달, 기사 작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로봇은 전원만 켜주면 잠도 자지 않고, 음식을 줄 필요도 없으며, 힘들다고 불평불만도 하지 않는다. 

예전에 참석했던 한 노동자 문학 강연에서 한 노동자 시인은 <노동의 종말>을 주장했다. 정확히 그 노동자 시인은 노동을 거부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자가 노동을 거부한다. 당시엔 그 시인의 주장이 궤변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 시인의 주장은 다른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다. 무인 호텔, 무인가게, 키오스크 등 곳곳에서 노동의 거부가 아닌, 인간이 노동에서 배제되고 있다.

기본소득, 모두가 '게으를 자유'를 보장하는 정책일까

기본소득이 인간을 게으르게 만들 것이라는 시선과 우려도 있다. 합리적인 비판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삶의 양식과 기준은 다르다. 월 수입 100만 원이면 만족하는 이도 있고 한 달에 수천만 원을 벌어도 부족한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래의 예시로 볼 수 있듯이 기본소득은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어떤 사람들은 노숙인들이 그 돈으로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하거나 도박에 탕진할 거라고 짐작했다. 정말 그랬을까? 아니었다. 노숙인들은 핸드폰.사전.보청기등 정말로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사는 데 돈을 소비했다. (중략) 1년 반이 지났을때 13명 가운데 9명은 지붕이 있는 주거지를마련했고, 그 중 2명은 번듯한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있었다.

-오준호.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P.77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에서 진행된 기본소득 실험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확인 할 수 있다. 케냐의 '기브디렉트리', 나미비아의 '무조건적인 기본소득', 우간다와 말라위의 '현금지원 프로젝트', 인도의 '기본소득 기금'에서도 기본소득 실험을 한 결과 실업률, 범죄율, 극빈자 비율이 의미있게 감소 했으며, 아이들의 학교 출석율과 진학율은 의미있게 늘었다.

일방적 수혜가 아닌, 당연한 권리로서 돈에 익숙해지자

기본소득을 보는 시선과 관점도 바꿔야 한다. 코로나19 감염병 위기로 전 국민에게 지급된 재난지원금은 모두의 당연한 권리였다. 코로나19라는 특수상황이긴 했지만 전 국민이 국가로부터 조건 없이 지원금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재난지원금을 받는 손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가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권리였다. 

"기본소득에 찬성하시나요, 반대하시나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면 현상을 해석하기 위해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이 개인을 넘어서 국가와 인류에게 커다란 영향을 줄 때 더욱 그래야 한다. 그러나 선택을 강요받는 질문은 늘 기득권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질문하는 자에게 유리하다. 그러므로 기본소득에 관한 질문을 바꿔보자.

"기본소득은 당신의 삶을 어떻게 변화 시킬까요?"

기본소득은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험 중이며, 아직 그 실효성이 확실하게 입증되지는 않았다. 기존 복지와의 충돌, 도덕적 해이, 재원 마련을 비롯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하지만 이제 기본소득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더욱이 인간이 존엄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인류가 사냥과 수렵채집만 하던 원시생활에서 우연히 땅에 볍씨 하나를 심으며 농업 혁명을 일으켰고, 18세기 증기기관이 산업혁명과 근대화를 촉진시켰듯이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분명 노동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조만간 도래할, 아니 이미 와 있을 새로운 사회를 위해 인간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인철 시민기자의 네이버 블로그와 다음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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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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