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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책더미 속에서 사심을 담아 알리고 싶은 책, 그냥 지나치긴 아까운 책을 오마이뉴스 라이프플러스 에디터가 골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대부분의 아픔엔 이름이 있다. 두통, 위염 따위가 그렇다. 그래서 누군가 '아프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어디가 아픈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묻는다. 그런데 아픈 건 분명하지만, 도무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통증도 있다. <천장의 무늬> 이다울 작가가 경험한 통증이 그랬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척추부터 시작해 뒤통수를 지나 얼굴까지 번져오는 통증 때문에 교수들의 목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았다. 쉬는 시간 친구들에게 왈칵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교수들 말이 안 들려.' ... 많은 병원을 탐방하며 진통 주사와 진통제를 처방받았고 다른 병원에서 같은 절차의 물리치료를 받았다. ... 그 숱한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내가 궁금한 것은 단 한가지였다. '나는 무슨 병을 갖게 된 것일까?' - 14~17p
 
학창시절 그는 철봉 매달리기의 고수였고, 다니던 대안학교에서 매년 개최하는 씨름대회에서 자신의 몸집의 두 배가 넘는 아이를 시원하게 뒤집고 승리를 거머쥔 적도 있다. 너무 운동을 잘해 "남자 같다"라는 묘한 비난이 섞인, 부당한 놀림을 받을 정도였다. 그 흔한 설사도, 고산병도 경험하지 않고 석 달간 인도와 네팔을 넘나들기도 했다.
 
 이다울 작가의 '천장의 무늬'
 이다울 작가의 "천장의 무늬"
ⓒ 웨일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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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눈물이 많고 불안정하지만, 날렵하고 단단한 청소년. 그는 분명 남들이 보기에 명랑하고 '건강한 몸'을 지닌 사람이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진학하고 2년 뒤, 원인을 알 수 없는 만성 통증에 시달리게 된다.

한의원, 정형외과, 신경외과, 가정의학과 등 수많은 병원을 전전하고, 검사를 받으며 '신체 나이 74세'라는 식의 애매한 판정을 받던 그는 통증이 시작된 지 1년 6개월 만에 류마티스 내과에서 '섬유근육통'이라는 질병의 이름을 얻는다. '남들보다 고통을 더 잘 느끼는 병'이라는 게 의사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는 통증을 설명할 최소한의 언어를 얻게 된 것에 불과했고, 원인을 파악한 건 아니었다. 이유를 알아야 정확한 치료가 가능한데, 애초에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 '이해할 수 없는 통증'을 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의 일상은 조금씩 달라진다.

'설명할 수 없는' 몸으로 살아가는 세상 

이다울 작가가 만성 통증을 느끼게 된 후부터 약 4년여의 경험을 담은 <천장의 무늬>는 단순한 투병 에세이라기보단, 질병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재편하는가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신문방송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어둡고 컴컴한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즐기며, 글을 쓰거나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던 한 청년의 생활 반경이 원룸에 놓인 작은 침대 위로 좁혀졌을 때 그를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세심하게 관찰해낸 기록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하루종일 누워있던 그가 지금껏 신경 쓰지 않았던 '천장의 무늬'를 알게 된 것처럼 그는 아픈 몸, 그 중에서도 '설명할 수 없는' 아픈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려낸다. 그가 집중하려는 건 통증 그 자체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다울 작가는 아픈 몸을 둘러싼 '공간'과 '관계'에 집중한다.

만성 통증을 느끼게 된 이후로, 그의 생활 반경과 관계는 이전보다 단순해진다. 움직임이나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활동하는 공간은 자신의 자취방과 동네 정도로 한정되고, 주로 관계를 맺는 이들도 연인과 가족, 몇몇의 친구 정도로 줄어든다. 그는 변화한 삶에서 느끼는 불안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이전보다 좁아진 자신의 세계를 더 깊고 진득하게 사유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가령, 이다울 작가는 자취방에서 함께 동거했던 애인이 사실상 자신의 돌봄자가 되면서 '연인'이라는 관계가 점차 조정되는 과정을 그려내기도 하고, 여러 인연이 끊어지고 맺어지는 과정을 꽤나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특히나, 양극성장애(조울증)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처음 복용했던 약의 부작용 때문에 여전히 자신의 병명과 치료, 입원 등을 15년째 거부하는 오빠 '훈'의 이야기와 자신의 경험을 나란히 놓고 그가 느꼈을 불안과 아픔을 짐작해보기도 한다.

이다울 작가는 제멋대로 행동한다고, 병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치료를 거부한다고 훈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처럼 당장 생과 사를 넘나들지 않지만 고통스럽고, 쉽게 이해하기 힘든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그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무심하고 따가웠을지 가늠해볼 뿐이다.
 
... 훈에게 나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전에는 몸이 아파 에너지를 분출하려면 소리를 지르며 우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새벽에 달릴 수 있다고, 먹을 수 있다고, 친구들을 만나 밤늦게까지 술을 마실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일들을 경조증으로 염려하는 이들에 대해 말했다. 나는 이제 그만 등을 떼고 싶은데 다시 등을 붙이라는 것 같았어, 라고 말하자 훈은 갑자기 어떤 예고도 없이 꺽꺽 하고 울었다. 내가 그랬어, 내가 그랬어, 하며 울었다. - 169p 

... 나는 그(의사)가 한 번쯤 내게 무언가 물어주기를 바랐다. 그것이 아니라면 일차원적인 공감이라도 받고 싶었다. '힘드셨겠네요'라고 단 한번만 말해준다면 그가 금세 좋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말이 없었다. 나는 의사의 태도를 조심성이 과한 것이라 열심히 이해해 본다. 환자에게 어떤 원인이나 병명을 함부로 전달했다가는 환자가 그것에 속박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름 없는 통증과 감정의 기복에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사회적으로 붙여지는 나의 병명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성분의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어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나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보다 더 두려웠다. - 177p
 
만성 통증이 진행된 지 2년하고도 두 달이 지났을 때, 이다울 작가는 몸 상태가 놀랍도록 괜찮아졌다고 느끼기도 한다. 오랜만에 느낀 활력을 잃지 않고 싶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갑작스럽게 괜찮아지니 불안함을 느낀다.

주변 사람들은 이전과 달리 활동량이 많아진 그가 경조증을 앓게 된 것이 아닌가 걱정하기도 한다. 그는 지인들의 우려에 속상함을 느끼면서도, 자신 또한 지난날의 통증에 대해 의심을 품기도 한다. "내가 정말 죽도록 아팠는지 자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터무니없이 무시무시해지기도, 시시해지기도" 하는 통증의 기억 속에서, 이다울 작가는 중심을 잡는다. 일기로, 사진으로, 음성 메모로 자신의 몸에 대한 기록을 꼼꼼히 남긴 덕분일까. 그는 예측할 수 없는 통증과 함께 하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상태를 낙관하거나 비관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흔들리고 불안정한 몸, 그 자체를 인정한다.

이다울 작가는 만성 통증이 생긴 지 3년째, "아픈 몸에 맞춰 유동적인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 "적어도 질병을 가진 상태를 버리는 시간이라 여기며 나중을 위해 삶을 유예하는 일을 멈"춘 것이다.

더 많은 '침대 위에서의 낭독회'를 기대하며 
 
 <천장의 무늬>를 시작으로, 더 많은 '침대 위에서의 낭독회'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천장의 무늬>를 시작으로, 더 많은 "침대 위에서의 낭독회"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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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을 해본 적은 없지만, 늘 통증을 곁에 두고 산다는 건 파도를 타는 일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언제 어떻게 밀려들지 모르는 파도를 기다리며 서서히 자세를 조정하고, 몸을 일으키는 것,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의 바람과 물결에 집중하는 것, 균형을 잃어 넘어지더라도 한쪽 발이 단단히 보드에 매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다시 올라서는 것.

이다울 작가는 자신만의 기나긴 서핑 과정을 풀어 <천장의 무늬>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여전히 흔들리는 보드 위에 올라가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세계 안에서, 쉬이 설명하기 힘든 자신의 '아픈 몸'이 의심받거나 배제 당하지 않는 사회를 열심히 상상하는 중이다.

그가 책에서 계속 강조한 것처럼, 통증의 양상은 제각각이기 때문에 더 많은 질병 경험이 논해져야 한다. 그 아픔들을 '꾀병'으로 요약할 순 없다. 그리고 그 수많은 경험담만큼이나, 한국 사회가 아픈 몸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혹은 바라볼 수 있는지 논해야 한다. <천장의 무늬>를 시작으로, 더 많은 '침대 위에서의 낭독회'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대규모의 사회적 실험을 하게 만들었다. 그 실험에는 아주 많은 레이어가 있다. ... 나는 그 셀 수 없이 많은 레이어 중에서도 등이나 엉덩이를 곧잘 뗄 수 없는 몸에 대해 생각했다. 동시에 몸과 몸이 만나는 공간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 우리 세대에게는 두 개의 공간을 짊어질 행운과 책임이 있다. 나는 먼저 '침대 위에서의 낭독회'를 시작할 것이다. 참여자들이 잠옷 바람이어도, 문장을 몇 줄 읽을 수 없어도, 반려견이 짖어도 계속 되는 그런 낭독회를. - 284p

천장의 무늬 - 이해할 수 없는 통증을 껴안고 누워 있으며 생각한 것들

이다울 (지은이), 웨일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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