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리도 없이>포스터

영화 <소리도 없이>포스터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하루를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본업은 계란 장수지만 특별한 의뢰가 들어오면 또 일사불란하게 뒷수습을 한다. 악의는 없다. 직접 범죄에 가담하지도 않는다. 그저 생계를 잇기 위해 전문 시체 처리반으로 일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태인(유아인)과 창복(유재명)은 단골 의뢰인이었던 실장의 부탁을 받고 11살 아이 초희(문승아)를 맡게 된다.

불행의 시작은 소리도 없이 찾아왔다. 범죄 조직의 청소부인 두 사람은 졸지에 유괴 아동을 맡아 당황스럽다. 하지만 단골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다. 태인은 다음날 아이를 다시 데려다 주려고 했지만 실장은 시체가 돼 있었다. 아이를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관에 빠진 그들, 잔잔하던 일상은 서서히 꼬여만 간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낯선 캐릭터와 모호함
 
 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컷

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컷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소리도 없이>는 명백한 범죄 영화지만 느슨한 선과 악 구조로 접점을 쉽게 찾을 수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게 영화의 주된 정서다. 그런 까닭에 답답함을 감출 수 없다. 범죄 경계선에 서 있던 사람들이 모종의 이유로 직접 범죄에 가담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상황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겉모습만 봐서는 속마음을 전혀 알 수 없는 캐릭터가 사회의 이중성을 거울처럼 빗댄다. 둘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일일뿐, 심드렁하고 무심한 태도를 유지한다. 그 과정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범죄 현장들은 자못 불편함을 유발한다.

무엇보다 말을 하지 않는 태인의 사연이 무척 궁금해진다. 비닐하우스로 만들어진 가건물, 정리되지 않는 방에 방치되어 있는 여동생까지 모두가 의문투성이다. 어쩌다가 이런 일에 빠지게 되었나를 계속 곱씹게 만든다. 

태인과 창복은 처지도 비슷하다. 혈연관계는 아닌듯하나 분명 끈끈한 유대감으로 맺어진 사이임이 분명하다.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들이다. 먹고사는 위기 앞에 양심과 존엄성은 남아 있지 않다. 어딘가 어긋나 터져버릴 것처럼 불안은 간절함과 절실함으로 변해 관객의 판단을 흐린다.

편안한 차림에서 풍기는 태도, 푸근한 표정과 말투는 전반적인 분위기와 대조된다.  말없이 과장된 몸짓과 섬세한 눈빛의 태인과 신체적 결함 때문인지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창복의 캐릭터가 낯설면서도 참신하게 다가온다.
 
 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컷

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컷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부조화와 아이러니함은 캐릭터뿐만이 아닌 장소에서도 비슷한 결을 보인다. 공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일상의 비극을 유발하는 장치로 쓰였다. 유괴된 아이를 만나러 간 장소는 헨젤과 그레텔 속 마녀의 집처럼 아기자기하고 발랄한 분위기를 더해 끔찍한 잔혹성을 돋보이도록 했다.

두 사람이 시체를 처리할 때 입는 우비와 비닐캡은 또 어떤가.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따뜻한 톤과 농촌의 한적함은 위기를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무감각하다. 

영화가 끝나도 석연치 않은 분위기를 지울 수 없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신경 쓰지 않는 만연한 무관심과 책임회피는 악의 평범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회 탓, 남 탓을 하며 서서히 악인이 되어가는 두 사람은 어쩌면 우리 안에 숨겨진 또 다른 얼굴, 가면 속 민낯이라 할 수 있다. 선악의 경계가 무너져가는 사회 속 누구도 태인과 창복이 되지 않으란 법이 없다. 영화는 옳고 그름의 가치를 유보한 현대인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자 일상적인 분위기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고발하는 소리 없는 일갈이다.
소리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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