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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b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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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가 좋다. 요즘은 꽂혀 있는 주제는 바로 환경이다. 시작은 넷플릭스였다. <하나뿐인 지구>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 하면서 지구에게 인간은 기생충에 불과함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세렝게티의 왕인 사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사냥을 한다. 육식 동물 대부분은 굶는 날이 훨씬 더 많다. 하루 세끼나 먹는 인간이 모두 육식만 고집하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무섭다. 

고기가 귀했던 시절이 있었다. 밥과 김치만 먹다가 명절에만 먹는 쇠고기 뭇국은 별미였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채식을 지향했다. 나도 그랬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 때문이기도 했지만 고기가 되는 동물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다.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사서 키운 적이 있다. 통통거리며 마당을 뛰던 녀석이 내가 내려놓은 커다란 빨간 대야에 깔려 죽은 모습을 보고 닭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돼지고기도 쇠고기도 먹지 않았지만 고등어는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우유는 배탈이 나서 먹지 않았고 달걀부침도 비려서 즐기지 않았다. 굳이 갈래를 나누자면 페스코(pesco-vegetarian)였다. 

채소와 생선만 먹고 살아도 별다른 부작용은 없었다. 억지로 찾자면, 키가 크지 않은 것이지만 이것도 상관관계는 별로 크지 않을 것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고기 맛을 알았다. 예나 지금이나 춘천은 닭갈비로 유명하다. 지금은 닭갈비도 제법 값이 나가지만 89년엔 엄청나게 싼 음식이었다.

강의는 빠져도 술자리는 개근을 하던 때라 꽤나 자주 닭갈비를 먹었다. 지금과 달리 한 대 두 대로 팔던 진짜 닭갈비라 뼈에 붙은 앙상한 살점을 빼면 야채나 면사리가 대부분이었지만 자꾸 먹다 보니 고기 맛에 길들여지고 말았다. 어차피 기숙사나 학생 식당도 채식만 고집할 수 없는 식단이었다.

금겹살의 비밀

입대하고 나서 고기 맛을 제대로 알았다. 비계만 잔뜩 들어간 멀건 된장국 때문이 아니다. 잔반을 가져가는 이가 1년에 한 번 중대별로 돼지 한 마리씩 주었다. 살아 있는 채로 넘겨주기 때문에 우리가 손수 잡아서 먹어야 하는 점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기에 굶주린 우리는 거의 모든 걸 먹었다. 구운 삼겹살도, 머리를 삶아서 누른 고기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심지어 맛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우루과이 라운드로 기억한다. 제대하고 복학한 다음 냉동 삼겹살이 수입되면서 자취방에서도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게 되었다. 솔직히 포장육은 맛이 없었다. 군대에서 1년에 한 번 맛보던 삼겹살과 비교하면 쓰레기였다. 지금도 기름기 많은 고기를 먹으면 설사를 하는 탓에 즐기진 않지만 소주 안주로는 가장 먼저 삼겹살이 떠오른다. 이그 그놈의 술이 원수다.

오늘도 유튜브 동영상 하나를 추천한다. 전주 문화방송이 만든 다큐멘터리 <검은 삼겹살>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삼겹살만 찾아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를 짚고 있다. 혹시 아시는가? 우리가 삼겹살을 많이 먹기 시작한 때는 돈가스를 즐기는 일본에 기름기 없는 등심이나 안심을 팔고 남은 기름 덩어리 뱃살을 아주 싼 값에 건설 현장이나 탄광촌에 팔기 시작한 때와 일치한다.

1990년 '33 데이',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라는 마케팅에 온 백성이 빠져들어 이제는 등심이나 안심이 아닌 삼겹살이 돼지고기를 대표하게 되었다. 삼겹살이 미세먼지를 씻어 낸다는 낭설도 있다. 오죽하면 교사들도 분필 가루를 씻어 낸다며 삼겹살을 먹기도 한다.

영상 첫머리에 피지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이 먹는 양고기는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왔다. 뉴질랜드와 호주 사람들은 램(lamb)으로 부르는 1살 미만인 양을 먹는다. 털을 얻기 위해 여러 해를 기르는 양은 머튼(mutton)으로 부르는데 고기에서 냄새도 나고 기름도 많아서 먹지 않는다.

머튼을 남태평양에 있는 나라로 헐값에 팔기 시작하고 30년쯤 지난 오늘날, 피지는 성인 대부분이 비만이 되었고 당뇨 환자가 4%에서 30%로 늘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피지 사람들처럼 고기에 한이 맺혔던 우리도 육류 소비가 엄청나게 늘었다. 전 세계 삼겹살 생산량의 25%에 이르는 양을 비싼 돈을 주고 사 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튜브 갈무리
 유튜브 갈무리
ⓒ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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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을 먹지 않고 버리는 나라도 많다. 다큐에선 기름 덩어리 뱃살은 잘라내 화장품 원료로 쓰거나 끓여서 기름을 만드는 데 쓰다가, 이제는 우리에게 비싸게 팔게 돼 즐거워하는 이들의 모습이 나온다.

영상은 이제 삼겹살이나 목살만 찾지 말고 등심이나 안심, 다리 고기 골고루 통으로 소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입맛을 길들여버린 삼겹살을 끊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좀 고상한 요리를 즐길 때가 되었다. 

채식하는 삶은 가능한가?

살기 위해 먹지 않고 먹기 위해 사는 시대다. 어떻게 먹는 것이 잘 먹는 걸까? 요즘 먹방이 대세다. 엄청나게 먹어대는 모습을 보며 저게 과연 잘 먹는 것인가 의문을 품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기르고 있는 돼지는 1000만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나 많은 돼지를 길러도 여전히 삼겹살이 금겹살인 까닭은 우리가 전체 고기의 일부인 삼겹살만 찾기 때문이라고 한다. 

뜬금없이 요즘 대세로 자리 잡은 요리하는 백 샘이 떠오른다. 백 샘이라면 스페인 사람들이 아주 맛있게 먹고 있다는, 돼지 뒷다리로 만든 하몬처럼 기름기가 적은 부위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뚝딱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등심이나 안심으로 맛있는 돈가스 만드는 유행을 만들어 상황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산 좋고 물 좋은 지역에 축산 분뇨를 처리하는 시설을 만드는 일로 갈등이 커지고 있다. 반려 동물로 개와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이 아주 많아졌다. 이제 개고기를 즐기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개와 고양이를 사랑하는 만큼 소와 돼지에게 연민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천만 마리가 넘는 돼지를 기르지 않아도 된다면, 고기를 만드는 공장이 되어 버린 농장이 사라진다면, 변 냄새로 고통받는 사람도 사라질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생각을 마무리하면서 채식하는 삶을 생각한다. 자신이 없다. 고기에 길들여진 입맛도 문제지만 소주와 안주로 이어진 인간 관계도 문제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 더는 삼겹살을 찾아서 먹지는 않을 것이다. '코로나는 인간에게 재앙이지만 인간은 지구에게 재앙'이라는 댓글을 보았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나아가 지구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참 많고도 어렵다.

태그:#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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