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경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의 친선경기 2차전에서 올림픽대표 조영욱이 슛을 시도하고 있다.

12일 경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의 친선경기 2차전에서 올림픽대표 조영욱이 슛을 시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파울루 벤투 감독(포르투갈)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 A팀과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U-23) 대표팀간의 스페셜 매치는 형님들의 판정승으로 마감됐다.

지난 9일과 12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양팀간의 맞대결에서 A팀이 1승 1무로 우위를 점하며 사전에 약속된 경기 수익금 1억 원 기부의 주인공이 됐다. A팀은 1차전에서 예상외로 올림픽팀에 고전하며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지만, 2차전에서는 3-0으로 완승을 거두며 자존심을 지켰다.

A팀과 올림픽팀의 공식 경기가 열린 것은 1996년 이후 무려 24년 만이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A매치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며 대표팀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대한축구협회가 각급 대표팀간의 선수 점검과 훈련, 실전기회 제공을 위하여 고심 끝에 마련한 이벤트였다.

해외파들을 소집할 수 없어서 양팀 모두 K리거들만으로 가용자원이 한정돼 자칫 맥빠진 경기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지만, 뚜껑을 열자 충분히 박진감 넘치는 경기내용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이번 스페셜 매치는 축구협회가 새로 도입한 유니폼과 엠블럼을 공식적으로 선보이는 첫 무대가 됐고 양팀은 홈&어웨이 형식에 원정 다득점 원칙-VAR 판독까지 적용하며 단순한 친선전이 아니라 진지한 '실전'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특히 2차전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완화되며 모처럼 경기장을 찾은 팬들 앞에서 선수들이 함께 호흡할 수 있게 되어 더욱 의미 있는 이벤트가 됐다.

축구적인 측면에서도 벤투호와 김학범호 모두에게 선수 발굴과 전술적 색깔을 실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상호 윈윈이 된 경기였다. 1차전과 비교하여 A대표팀은 6명, 올림픽 대표팀은 8명의 선수들이 바뀌었을만큼 선수들을 고르게 활용했다.

먼저 벤투 감독은 그간 한국대표팀 사령탑 부임 이후 국내파보다는 해외파들을 더 중용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고정된 베스트 라인업과 빌드업 위주의 전술이 자리잡으면서 변화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해외파를 뽑을 수 없었던 이번 스페셜 매치는 자연히 벤투호에서 소외받던 K리거들에게는 기회가 됐다. 벤투 감독은 올림픽팀과 선수 차출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면서까지 23세 이하 자원이었던 원두재, 이동경, 이동준 등 3명의 선수를 A팀으로 데려오는 등 최상의 전력을 구축하기 위하여 애썼다.

벤투 감독은 빌드업과 점유율을 강조하는 고유의 팀 컬러는 계속 유지하면서도 1,2차전에서 걸쳐 다양한 선수들을 고르게 활용했고 일부 선수들은 소속팀과 다른 포지션이나 역할을 맡기는 실험을 시도하기도 했다. 조직력에서 다소 불안했던 1차전에 비하여 2차전에서는 수비적으로 훨씬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며 경기흐름을 장악했다. 2경기 모두 A팀의 골문을 지킨 조현우는 특유의 순발력을 이용하며 몇 차례나 인상적인 선방으로 골문을 든든하게 지켰다.

소속팀에서는 다소 부진하던 왼쪽 풀백 이주용이 벤투호에서는 2경기 연속 득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했고,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는 손준호가 2경기 풀타임을 소화하며 기성용-장현수 대체자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이동경-이동준-원두재 등 23세 이하팀에서 월반한 젊은 선수들로 안정적인 경기력으로 벤투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하지만 공격은 다소 아쉬웠다. 2경기에서 5골을 뽑아냈으니 겉보기에 득점력이 저조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중 3골이 경기 후반 40분 이후에 터졌다. 바로 올림픽팀의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상대의 실수나 역습 상황에서 나온 골이었다. 김학범 감독은 실점에 연연하지 않고 공격적인 운영을 유지했지만, 만일 작정하고 라인을 내려서 수비적으로 경기를 운영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12일 경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의 친선경기 2차전에서 국가대표 이동준이 패스를 받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12일 경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의 친선경기 2차전에서 국가대표 이동준이 패스를 받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 연합뉴스


벤투호는 전력과 경험 면에서 한 수 아래인 올림픽팀을 상대로 주도권을 쥐고도 고질적인 마무리 능력 부족으로 종반까지 경기를 어렵게 풀어가야했다. 만일 월반 멤버 3인방마저 A팀으로 오지 않고 정상적으로 올림픽팀 소속으로 뛰었다면 양팀의 경기 내용이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A팀은 이동경-이주용같이 2선 공격수나 풀백들이 오히려 활발한 공격을 보여준 반면, 정통 공격수는 이정협이 1차전에서 1골을 넣기는 했으나 최전방 공격수들의 파괴력은 대체로 떨어졌다.

손흥민-황의조-황희찬 등 간판 공격수들이 모두 해외무대에 나가있고, 대형 공격수가 부족한 K리그의 현실을 보여준 장면이기도 하다. 앞으로 월드컵 예선이 재개되더라도 약팀의 밀집수비를 효과적으로 공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벤투식 빌드업 축구'로는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편 김학범호는 가뜩이나 A팀보다 열세인 전력에 주력 선수 3명까지 상대에게 내주고 치른 경기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선방했다. 1차전에서는 선제골을 내주고도 역전에 성공하며 A팀을 거의 패배 일보직전까지 몰아넣기도 했고, 2차전에서도 조현우의 선방과 공격진의 침묵 속에서도 경기 종반까지 한골차 승부를 이어가는 등 끈끈한 모습을 보여줬다.

송민규라는 새로운 공격자원의 가능성을 발굴한 점, 김학범 감독이 추구하는 전방압박 전술과 역습이 A팀을 상대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라는 것을 확인한 점은 성과다. 이번에는 상대팀이 되어 올림픽팀에 비수를 꽃았지만 이동경이나 이동준의 성장세도 결국 김학범호에 돌아왔을 때 플러스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막판 체력저하와 집중력은 아쉬운 대목이다. 1,2차전 모두 후반 중반까지 A팀에 주도권을 내주고도 그런대로 잘 버텼으나 패스 미스와 위치선정 미숙으로 막판에 연달아 골을 내주며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김학범 감독은 좋은 경기를 펼치고도 대체로 아쉬운 부분을 먼저 거론하며 선수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직접적인 선수 비판을 자제하고 칭찬 위주로만 언급했던 벤투 감독의 화법과 가장 대조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김학범 감독은 이번에 소집된 일부 선수들이 국가대표에 걸맞은 몸상태나 마음가짐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내년으로 연기된 올림픽 본선을 앞두고 누구도 자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무한경쟁'을 부각시켜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젊은 선수들의 긴장감을 다시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이번 스페셜 매치는 양팀 모두에게 자신들의 장단점을 확인하고 대표팀에 대한 동기부여를 다시 일깨우는 건강한 자극이 되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고 할만하다. 비록 이번에는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급조된 이벤트이기는 했지만, 향후에는 단발성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올림픽 본선같은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 3~4년에 한번 정도라도 정기적으로 상설화시키는 것 역시 고려해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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