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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항구다. 항구 앞 너른 바다는 삶의 터전이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기대 산다. 바다는 온갖 진귀한 보석을 품고 있다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다 내준다. 사람들은 고기를 낚고, 조개를 캐고, 미역이며 김을 뜯고, 소금밭을 일구어 가족도 먹였다.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은 바다에 스며 새하얀 소금이 됐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인천 앞바다엔 조기가 지천이었다. 전국에서 고깃배가 몰렸다. 수백 척의 배가 저마다 만선이었다. 거간꾼들과 상인들까지 몰려와 장이 열렸다. 연평도 조기 파시다. 전국에서 가장 컸고 제일 유명했다. 낙조에 젖어 붉게 물드는 파시는 장관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조기 떼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젠 추억으로만 남았다.

그 조기의 먼 친척 격인 민어도 흔했다. 일가 중 가장 덩치가 크다. '복더위엔 민어 찜이 일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양가가 뛰어나다. 많은 어부들이 잡고 싶어 했지만 쉽게 올라오지 않았다. 영물이었다. 그만큼 귀한 몸인지라 그해 처음 잡은 민어는 임금님 진상품으로 올렸다. 맛이야 말할 것도 없다. 비늘조차 버릴 게 없다.

꽃게도 많이 올라온다. 봄, 가을에 많이 난다. 봄 암게로 게장을 담고 가을 수게로 찜을 해 먹는다. 꽃게잡이 배가 많이 드나드는 소래포구에선 해마다 축제를 연다. 김장용 젓갈 쇼핑객까지 겹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온다. 관광객들은 찜, 탕 등 갖가지 꽃게 요리에 취한다. 그중 노란 알이 꽉 들어찬 꽃게장은 절정이다.

그 말고도 많다. 연안부두에서 낚싯배를 타고 나가면 놀래미나 우럭, 광어 따위가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손맛이 삼삼하다. 손해 볼 일 없다. 봄 밴댕이, 가을 전어도 제법 잡힌다. 6~7월경 작은 새우 떼를 포획해 젓갈을 담근다. 육젓이다. 김장용으로 최고다.

한창 물 좋을 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물고기가 있었다. 아귀다. 예전 인천 어부들이 '물텀벙이'라 불렀던 생선이다. 생긴 것도 흉측한 데다가 미끈거리는 껍질까지 꼴 보기 싫어 그물에 걸려 올라오면 냉큼 바다에 다시 던져버렸다. 그때마다 텀벙, 텀벙 소리가 나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징그러울만치 그물에 많이 걸렸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 아귀가 지금은 매우 귀하신 몸이 되었다. 겉으로만 보면 살도 물컹거릴 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다. 속살은 오히려 부드럽고 쫄깃하다. 찜이나 탕으로 주로 해 먹는다. 아삭거리는 콩나물과 특히 케미가 좋다. 인천에는 그걸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꽤 많다. 미추홀구 용현동에는 그런 식당들이 몰려 있는 물텀벙이 거리까지 있다.

부평개흥초등학교 후문 '찬용이네' 냉면 맛 아귀찜
 
 부평개화초등학교 후문에 있는 식당 친용이네의 아귀찜. 비빔양념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을 써서 상큼하게 매운 맛을 자랑한다.
 부평개화초등학교 후문에 있는 식당 친용이네의 아귀찜. 비빔양념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을 써서 상큼하게 매운 맛을 자랑한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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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말고도 아귀 요리 고수들은 많다. 부평 개흥초등학교 후문에 있는 '찬용이네'도 그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이 집 사장은 이찬용이다. 상호는 주인장 이름에서 따왔다. 자기 이름을 따 식당 이름을 짓는다는 건 그만큼 맛에 자신 있다는 말이다. 명예를 걸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다.

이 사장은 어릴 적부터 요리사가 꿈이었다. 재능도 있었다. 한식,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처음엔 양식을 했다. 돈가스 빼는 솜씨가 유명했다. 그러다가 솜씨 좋은 사부를 만났다. 냉면의 달인이었다. 그에게 육수 내는 법과 비빔장 비방을 전수 받고 나서 이 식당을 열었다. 애초엔 냉면 전문점이었다. 

아귀찜은 친구나 지인들이 술 한잔 할 때 서비스로 만들어 주곤 했다. 당연히 메뉴판에도 없었다. 그런데 그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어깨 너머로 남들이 아귀찜을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본 다른 손님들의 주문이 이어졌다. 아예 정식 메뉴로 올렸다. 비결은 양념이었다. 비빔냉면에 들어가는 양념장을 기본으로 내용물을 약간 변형해 넣었더니 제법 맛이 괜찮았다. 상큼한 매운맛이랄까.

아귀찜 재료는 미리 사서 보관하지 않는다. 주메뉴도 아니었거니와 식당이 하도 작아 그럴 공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주문 들어오면 그제야 시장가서 사왔다. 그러다 보니 선도가 좋았다. 지금도 대부분 예약 손님만 받는다. 다행히 부평에서 가장 큰 시장이 지척이다. 신선한 재료들이 차고 넘친다. 좋은 재료 구하는 데 어려움은 전혀 없다.

"어머니께서 시장에서 오래 장사하셨어요. 지금도 거기서 장사하시는 지인들이 많죠. 제가 가면 언제든 가장 좋은 재료를 정말 싸게 주세요. 물론 다 국산이죠. 아귀찜은 할 생각도 안 했는데, 저도 의외에요. 그냥 좋은 재료로 정성을 다하니 손님들이 알아주시는 것 같아요."

'찬용이네' 식당엔 사장밖에 없다. 다른 종업원이 없다. 사장 혼자 요리하고, 서빙하고, 돈 받고 설거지까지 한다. 테이블이 모두 5개뿐인 초미니 식당이라 가능하다. 처음엔 혼자 한다는 게 겁도 났지만 일드(일본드라마) '심야 식당'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한다. 손님들도 그런 심정을 잘 헤아려 준다. 주문이 조금 늦더라도 참을성 있게 기다려 준다. 다 가족 같다.

연수동 '부원집'의 눈부시게 말간 아귀 수육
 
 뻘건 아귀찜들과는 달리 말갛게 하얀 속살의 자태가 아름답다. 생물아귀를 진짜 쪄서 만든다.
 뻘건 아귀찜들과는 달리 말갛게 하얀 속살의 자태가 아름답다. 생물아귀를 진짜 쪄서 만든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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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원집은 연수구 연수동 후미진 골목 안에 있다. 내비게이션도 가끔 헛갈릴 만큼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늘 초만원이다. 보통 십수 년 이상씩 된 오래된 단골들이다. 가게는 10평 남짓하다. 손님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엔 서로 어깨를 부딪쳐 가며 먹어야 한다. 그게 일상적 풍경이니 아무도 불만이 없다. 대신 맛으로 보상받는다.

겉으로만 보면 그냥 작은 동네 식당이지만 그 안은 조금 다르다. 메뉴는 범상치 않고, 가격은 만만치 않다. 게다가 식사 메뉴는 따로 없고 모두 술안주다. 이를테면 고급한 실내포차다. 술안주는 인천 식당답게 생선 요리가 주다. 각종 구이와 찜이 망라되어 있다. 굴 보쌈도 훌륭하다. 키조개 관자 삼합은 이 집 간판 메뉴다.

현재 사장은 오영란씨다. 그가 가게를 넘겨받은 지도 10년이 넘었다. 오 사장은 당초 이 집 종업원이었다. 생업이라기보다 요리와 가게 일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일종의 위장 취업(?)인 셈이다. 2년 정도 수련 과정을 거쳐 과감하게 식당을 인수했다. 주인이 바뀌어도 단골들은 떠나지 않았다. 손님들이 의리가 있어서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변함없는 맛과 서비스 때문이었다.

이 집엔 눈에 띄는 메뉴가 있다. 아귀 수육이다. 수육은 원래 숙육(熟肉)이다. 삶아서 익힌다는 뜻이다. 한데 부원집 아귀 수육은 삶지 않고 중탕으로 찐다. 사실 아귀의 살은 밍밍하다. 특별한 맛이 없어 주로 강한 양념 맛으로 먹는다. 그래서 대개 뻘겋다. 한데 이 집 아귀는 눈부시게 하얗다. 이걸 고추냉이 간장이나 초장에 찍어 먹는다. 그 맛이 참 고소하고 은은하다.

"제가 직접 개발했죠. 처음엔 이게 먹힐까 했는데, 다행히 손님들이 좋아라 하셨어요. 수육은 꼭 싱싱한 생물로만 해야 해요. 얼렸다 녹이면 살이 흐물흐물해지죠. 아귀 손질이 쉽지 않아요. 미끄덩거리고 비늘도, 가시도 많아서요. 손질이 반이랄 만큼 손이 많이 가죠. 찌는 타이밍도 중요하고요."

이 집은 밑반찬부터 훌륭하다. 두부찜, 짠지, 각종 나물 따위가 나온다. 보통 솜씨가 아니다. 전혀 짜지 않고 감칠맛이 돈다. 짠지는 상지(상큼한 짠지)가 됐다. 모두 오 사장이 직접 한다. 가만히 보면 고춧가루 양념이 거의 없다. 김치마저 양념을 물로 씻어내고 기름에 볶아 내준다. 식탁이 평온해 보인다. 아귀의 말간 속살 같다.

사실 아귀찜에 대해서는 다소의 논란이 있다. '원조'가 어디냐는 거다. 인천을 비롯해 지금은 창원으로 바뀐 마산이나 전라도 군산 등이 자주 오르내린다. 하지만 고향이 어디냐는 문제는 대수롭지 않다. 또 거기 분들이 그리 이야기 하는 데엔 다 사연이 있고 명분도 있을 터다. 모두 인정해줘야 마땅하다. 다만 인천은 아귀를 따로 일컫는 여기만의 이름(물텀벙이)도 있고, 그 이름을 딴 거리까지 버젓이 있다는 사실, 그런 정도는 알고나 먹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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