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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
ⓒ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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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1800년대 초 전국 각지의 민란 상태를 약술했거니와, 1811년 평안도 농민들의 반란은 학계 일각에서 '평안도 농민전쟁'이라 부를 정도로 규모가 크고 명분이 뚜렷했다. 몰락한 농민과 광산노동자, 부유한 상인을 비롯하여 서북지역 차별정책으로 관직에 나가지 못하는 양반 등 다양한 계층이 하나가 되어 홍경래를 중심으로 봉기한 것이었다.

조선후기는 영ㆍ정조의 탕평책에도 불구하고 지역차별이 여전했다.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강화되면서 더욱 심해졌다. 정약용은 조정에 있을 때부터 이 문제의 심각성을 우려하고 상소를 통해 시정을 제의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평안도에서 대규모적인 민란이 일어났다.

명문이란 시대를 뛰어넘는 글을 일컫는다. 200여 년 전 지역차별 철폐를 주창한 글이 오늘에 이르러도 공감을 받게 되는 이유는, 그 뿌리와 유제가 아직도 남아 전하기 때문일까.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서북지역 민란소식을 듣고 자신이 제출했던 상소문을 되새겼다. 「통색에 대한 논의(通塞議)」 전문이다.

통색에 대한 논의

신이 엎드려 생각하건대, 인재를 얻기 어렵게 된 지가 오랩니다. 온 나라의 훌륭한 영재를 뽑아 발탁하더라도 부족할까 염려되는데, 하물며 8~9할을 버린단 말입니까. 온 나라의 백성들을  다 모아 배양하더라도 진흥시키지 못할까 두려운데, 하물며 그 중의 8~9할을 버린단 말입니까.

소민(小民)이 그 중에 버림받은 자이고, 중인이 그 중에 버림받은 자입니다.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이 그 중에 버림받은 자이고, 황해도ㆍ개성ㆍ강화 사람이 그 중에 버림받은 자입니다. 관동과 호남의 절반이 그 중에 버림받은 자이고, 서얼이 그 중에 버림받은 자이고, 북인(北人)과 남인(南人)은 버린 것은 아니나 버린 것과 같으며, 그중에 버리지 않은 자는 오직 문벌 좋은 집 수십 가호뿐입니다. 이 가운데에도 사건으로 인해서 버림을 당한 자가 또한 많습니다.

무릇 일체 버림을 당한 집안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폐기하여 문학ㆍ정치ㆍ농업ㆍ군대 등의 일에 마음을 쓰려 하지 않고, 오직 분개하여 슬픈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며 스스로 방탕합니다. 이 때문에 인재도 마침내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들 집안에 인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저들은 진실로 버려야 마땅하다."고 합니다.

아, 이것이 어찌 본래부터 그런 것이겠습니까. 어찌 천지가 그 정기를 모으고 산천이 그 참 기운을 길러 반드시 수십 집 사람에게만 몰아 주고, 더럽고 혼탁한 기운은 나머지 사람에게 뿌려 준 것이겠습니까.

그 태어난 지방이 나쁘다 하여 버리는 것입니까. 김일제(金日磾)는 휴도(休屠)에서 출생하였으니 서쪽 오랑캐(西戎) 사람이고, 설인귀(薛仁貴)는 삭방(朔方)에서 출생하였으니 북쪽 오랑캐 북융(北狄) 사람이고, 구준(丘濬)은 경주(瓊州)에서 출생하였으니 남쪽 오랑캐 남만(南蠻) 사람입니다. 그 어머니의 친정이 천하다 하여 버리는 것입니까. 한 위공(韓魏公)은 청주 관비(官婢)의 아들이었고, 범문정(范文正)의 어머니는 추잡한 행실이 있었으며, 소강절(邵康節)의 형제는 셋이었는데 성이 각기 달랐습니다. 이와 같은 자들을 모두 버릴 수 있겠습니까.

서류(庶流)도 청직(淸職)이 되게 하자는 의논이 때로는 시행되기도 하고 때로는 막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행된다 하여도 서류들은 기뻐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삼망(三望)에 주의(注擬:관리 임명 시 임금의 비점(批點)을 받기 위해 세 사람의 후보를 올리는 것)된 사람이 반드시 모두 서류라면 이것은 서류의 정언(正言)이 되었을 뿐 진짜 정언이 된 것은 아닙니다. 아무 관직으로 한정하고 아무 품계로 한정한다면 이는 모두 사람을 버리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동ㆍ서ㆍ남ㆍ북에 구애됨이 없게 하고 멀거나 가깝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 간에 가리는 것이 없게 하여 중국의 제도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유능한 자는 매우 적고 어리석은 자는 매우 많으며 공정한 자는 매우 적고 편벽된 자는 매우 많으니, 말한다 하여도 시행되지 못하고 시행된다 하여도 혼란이 있을 것입니다. (주석 20)


주석
20>  금장태, 『다산 정약용』, 159~160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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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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