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의 양동근이 11일 오후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자신의 은퇴식에서 아내의 편지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의 양동근이 11일 오후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자신의 은퇴식에서 아내의 편지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의 레전드 양동근이 공식 은퇴식을 열고 정든 코트와 작별했다. 11일 현대모비스의 홈인 울산동천체육관에서는 원주 DB와의 정규리그 경기가 끝난 후 양동근의 은퇴식이 열렸다.

현대모비스 후배 선수들은 특별한 날을 맞이하여 KBL의 허가를 받고 전원이 '양동근'이라는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양동근은 경기 후반에 잠시 방송 해설자로 나서 후배들의 플레이에 대하여 냉철하면서도 애정이 묻어나는 평가를 이어가기도 했다.

경기 후 은퇴식에서는 양동근의 가족이 함께 등장하며 감사와 축하의 편지를 낭독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양동근이 선수생활 내내 달았던 등번호 6번은 영구결번이 됐다. 은퇴식이 진행되면서 내내 침착하던 양동근의 눈시울도 점점 붉어졌다.

양동근은 직접 쓴 은퇴사를 통하여 "눈물이 안 날 줄 알았는데 난다. 마지막에 유니폼을 입고 선수 생활을 마칠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울산이라는 곳에서 선수 생활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면서 고향처럼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울산에서 화재 사고가 났을 때도 마음이 아팠다. 앞으로 부디 코로나19가 빨리 끝나서 팬들이 이 체육관을 가득 메워주셨으면 좋겠다. 함께 해준 선수들에게 너무 고맙고, 감독님- 코치님들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도 너무나 감사드린다"라고 마지막 소감을 밝혔다.

양동근은 현대모비스를 넘어 한국 프로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한 족적을 남긴 선수다. 2004년 프로 입단 이후 상무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오직 현대모비스에서만 14시즌을 활약하며 유재학 감독과 함께 6번의 정규리그 우승과 6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합작하여 '현대모비스 왕조'를 구축한 주역이었다.

개인 타이틀도 화려하다. 2005년 신인상을 비롯해 총 4번의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3번의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했고, 한국농구연맹(KBL)이 선정한 베스트5에 9회 선정됐다. 팀 우승을 포함하여 모두 KBL 최다 개인수상 기록이다. 이밖에 최우수 수비상은 2회, 수비 5걸상 3회, 모범선수상은 2회를 수상했다. 통산 성적은 프로 14시즌동안 정규리그 665경기에 출전해 평균 11.8득점, 5어시스트, 2.9리바운드, 1.5스틸을 기록했다.

국가대표에서도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부터 2015년 아시아선수권까지 10년간 한국 농구대표팀 부동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했다. 특히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농구가 이란을 제치고 12년 만의 금메달을 따내는 데 주역으로 활약했다.

한국농구 역사에서 허재, 서장훈, 김주성, 이상민, 이충희 등 사실 양동근보다 더 탁월한 재능을 지녔거나 화려한 개인기록을 남겼다고 할 만한 선수들은 많다. 하지만 양동근만큼 코트 안팎에서 농구선수로서나 사생활로서나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커리어'를 이루어낸 인물은 정말로 찾기 힘들다.

양동근은 프로 입단 초창기만해도 장단점이 뚜렷한 선수로 평가받았지만 특유의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을 바탕으로 최고의 선수로 성장했고, 그 누구보다 오랜시간 꾸준히 장수했으며, 커리어를 마무리할 무렵에는 어느덧 운동선수로서 모두의 귀감이 되는 전설적인 존재로까지 자리매김했다.

또한 팬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농구실력 이상으로 높이 평가받는 것이 양동근의 인품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도 자기관리 실패나 사생활 논란으로 이미지를 망친 숱한 선수들과 달리, 양동근은 슈퍼스타의 반열에 오른 이후에도 개인사 등으로 인하여 논란에 휩싸인 경우가 단 한번도 없었다. 심지어 코트 내에서도 매너 문제 등이 거론된 경우는 전무했다.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의 양동근이 11일 오후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자신의 은퇴식에서 팀 동료들에게 헹가래를 받고 있다.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의 양동근이 11일 오후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자신의 은퇴식에서 팀 동료들에게 헹가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으로 양동근의 선수시절은 공교롭게도 한국농구의 침체기와 겹친다. 프로농구의 인기 하락이나 국가대표팀의 국제무대 부진 등 한창 흑역사를 쌓아가던 시기인지라 양동근은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선수라는 위치임에도 상대적으로 이전 세대의 스타들에 비하면 주목을 받지 못한 편이었다. 하지만 양동근은 언제나 대표팀의 부름이 있을때마다 기꺼이 응답했고 아쉬운 성적으로 팬들의 비난을 듣는 것도 묵묵히 감수하며 항상 최선을 다했다.

스타선수라면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전혀 없다는 것도 장점으로 평가 받는다. 그는 소속팀 사정에 따라 같은 포지션에 김시래-이대성 같은 선수들이 입단했을 때는 과감하게 주전 포인트가드나 메인 볼 핸들러의 자리를 양보하고 조연으로 물러나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양동근이라는 든든한 베테랑이 중심을 잡아줬기에 모비스는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많은 선수들이 팀을 거쳐가면서 특유의 색깔을 잃지 않고 강팀으로 장기집권할 수 있었다. 함께 뛴 동료선수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농구인들이 양동근을 '진정한 리더이자 농구선수의 모범'으로 인정하는 이유다.

이렇듯 누구보다도 훌륭한 농구인생을 보낸 양동근이지만, 유일한 아쉬움이자 옥에 티라면 은퇴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양동근은 선수생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9-20시즌이 코로나19 사태 악화로 인하여 리그 일정을 정상적으로 완주하지 못하고 중단되자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세상을 떠난 친구 고 크리스 윌리엄스의 등번호를 달고 남은 경기에 나서고 싶다는 소원도, 응원해주는 관중들 앞에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할 기회도 주어지지 못했다. 하필 양동근이 은퇴 발표 기자회견을 한 날은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팬들이 양동근의 은퇴가 차라리 거짓말이기를 바랐던 이유였다.

은퇴 발표 이후 약 반년이 지난 2020-21시즌 홈 개막전에서 정식으로 작별인사를 하게 된 양동근이었지만 이번에도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다. 시즌이 무관중 경기로 치러지면서 양동근의 은퇴식도 규모가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온라인 생중계 방송으로나마 많은 팬들이 양동근의 은퇴식을 함께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현장 직관의 열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허재나 서장훈, 김주성 같은 선배 레전드들이 선후배 동료들이 함께하는 성대한 은퇴경기나, 10개 구장 은퇴투어같은 화려한 이벤트를 통하여 만인의 축복속에 성대하게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것에 비하면, 'KBL의 GOAT(Greatest of All Time)'라 불리우는 선수를 떠나보내는 역사적인 순간이 너무 소박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공교롭게도 양동근이 은퇴식을 치르던 바로 그날,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1단계로 조정한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조만간 프로농구 관중 입장이 재개될 수 있게 된 것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양동근이나 모비스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이럴바엔 '은퇴식을 조금만 미룰 수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수 없다. 선수로서 이뤄낸 위대한 업적에 비하여 주목받을 기회가 이상하리만큼 적다는 것은, 은퇴하는 순간까지도 양동근의 팔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양동근이 한국농구에 남긴 업적과 헌신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농구팬들의 기억에 남을 전망이다. 지도자로서 농구인생의 새로운 2막을 준비하는 양동근에게 오히려 선수 시절보다도 더 빛나는 미래가 있기를 많은 농구팬들이 응원할 것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양동근 울산현대모비스 GOAT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