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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수업>, 김준범, 북레시피, 2018, 14,000원
 <아내수업>, 김준범, 북레시피, 2018, 14,000원
ⓒ 북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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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어요. 오른쪽 난소에 종양이 19센티까지 자랐다더군요. 폴란드 의사의 서툰 영어와 폴란드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진단이 잘못됐나 싶어 한국에 왔지만, 결국 난소암 선고를 받았죠. 아내는 급히 수술을 받았고 한 달 후에 두 번째 수술을 받았어요. 그때 회사 일로 잠시 돌아간 폴란드에서, 한 직원의 말에 번쩍 정신이 들었어요. "당신이 지금 여기 왜 있어요? 아내 곁에 있어야죠." 곧바로 그곳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아내에게 모든 초점을 맞췄죠.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으니까요."

아내가 죽을 만큼 아프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남편은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당시엔 보이지 않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 늘어놓았다. 그렇게 '몰랐던 아내'를 향한 못난 남편의 고백과 다짐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못난 남편이었던 김준범 작가의 <아내수업>이다.

지난 9월 28일 결혼 11년 만에 낯선 아내를 만났다는 그의 속 깊은 이야기를 줌(Zoom) 화상 인터뷰를 통해 들어보았다. 

남편 역할은 처음이라서
 
 <아내수업> 김준범 작가와 zoom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아내수업> 김준범 작가와 zoom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 김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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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주어가 '나'에서 '그녀'로 바뀌는 순간, 가려졌던 아내가 내게 다가왔습니다. (p.7)

"저는 마흔다섯, 한국의 평범한 아빠입니다. 직장을 다니며 글을 쓰는 보통의 작가고요. <아내수업>이라는 책을 썼어요. 7년째 가족과 포항에서 살고 있어요.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에요. 힘들었던 시간을 가족의 힘으로 잘 극복한 만큼,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많은 이와 나누고픈 꿈이 있습니다."

- <아내수업> 출간 후 2년이 지났어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올해 1월, 아내가 마지막 수술 후 5년이 지나 완치 판정을 받았어요. 이제야 마음속 짐을 조금 내려놓게 됐어요. 아내도 이제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해보고 싶다네요. 원래는 육아휴직 기간에 가족들과 유럽으로 자동차 여행을 떠나려 했어요. 산티아고 순례길도 걷고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다 무산됐죠. 대신 주말마다 국내의 멋진 곳을 찾아다니며 둘레길을 걷곤 해요."

유럽으로 자동차 여행을 떠나려 했던 그는 사실 오랫동안 유럽에 살았었다. 결혼하자마자 주재원으로 발령받아 아내와 폴란드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상상하던 것과 사뭇 달랐던 폴란드의 회색빛 하늘, 그 아래에서 7년을 살았다.
 
#폴란드 행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아내는 가장 가까웠던 부모와 가장 멀어지고, 남이었던 남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부부가 되었음을 그제야 실감한 아내에겐 설렘도 두려움도 있었을 겁니다. (p.5)
 
-폴란드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둘 다 유럽 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어요. 낭만을 기대하며 폴란드에 갔지만, 현실은 상상과 전혀 다르더군요. 전 깨어 있는 시간에 대부분 일을 했어요. 항상 새벽까지 일하고 아침 일찍 출근하고요. 그동안 아내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땅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하루 종일 혼자였죠."

-아내분이 많이 외로웠겠어요.
"네. 저도 남편 역할이 처음이라, 돌이켜보면 잘못한 게 참 많아요. 우선 낯선 나라에서 자리 잡을 때까지 어떻게든 견뎌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이 컸어요. 한국보다 살기 힘든 곳이니 독한 마음 먹어야 한다며 정신적으로 강해지라고 자주 요구했어요. 이제 이전 삶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지금껏 살아온 29년의 삶을 잊고, 당신도 알아서 살아남을 능력을 키우라고요. 아내가 저 없이도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구실로 혹독한 말을 쏟아냈어요. 아내에겐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시간일 거예요."
 
#"팀장님, 아내 곁에 있어주세요. 지금 팀장님이 있을 곳은 직장이 아니라 아내와 가족 곁입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세요. 가족보다 소중한 것은 없어요." (p.45)
 
-폴란드 생활 7년 만에 아내의 암 선고, 무슨 생각 하셨어요?
"무엇보다 타지에서 7년 동안이나 아내를 독하게 몰아세웠던 게 뼈저리게 후회스러웠어요. 아내는 자기의 불만을 표현하기보단 침묵하는 성격이에요. 그렇게 속으로 삭이며 아내 홀로 감당했던 외로움과 상실감이 우울증으로 번진 것 같아요."

힘든 수술을 마친 아내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루 이틀 지나며 정신은 차렸지만 아내의 배에선 핏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내의 손을 잡고 느릿느릿 병원 복도를 돌며, '괴로운 거 내색 않는 답답한 성격 좀 고치자'고 우격다짐으로 약속했다. 그리고 그 역시 다짐했다. 아내를 위해 변하자고.

이제는 좋은 아빠를 꿈꾼다
 
#아침부터 서툰 아빠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밥 먹자, 양치하자, 세수해야지, 피아노 늦겠다, 얼른 옷 입자…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고 밥을 떠먹이며 훈계하느라 혼이 다 빠질 지경이다… 돌아온 아이에 대한 반가움과 동시에 짜증 섞인 피로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세상에…' 예상은 했지만 집안일이란 게 이 정도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p.124)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아내 병간호와 육아에 뛰어드셨어요. 집안일을 해본 적 없는 남편이 처음으로 아내의 일상을 살게 된 건데요, 무엇이 가장 어려웠나요?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요. 나머진 다 해도 이것만은 정말… 지금도 힘들어서, 아내에게 그것 빼고 다 하겠다고 했어요. 아내도 허락했고요. (웃음) 한국에 막 왔을 땐 처가에 얹혀살았어요. 그땐 장모님 도움을 좀 받았는데, 분가하고 나니 전쟁이 시작되더라고요. 아이들 등원, 장보기, 청소, 빨래 전부 제가 해야 했어요. 폴란드에서 사 온 접시들도 이때 많이 깨 먹었네요. 그동안 아내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 그때 알았죠. 아내들이 남편이 출근하면 여유롭게 음악 들으며 커피나 마신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행동반경이 넓어지는데, 따라다니며 챙겨주는 것도 정말 만만치 않아요. 육아와 살림은 직장 생활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아내는 바뀐 남편의 모습을 어떻게 보나요?
"'나랑 결혼하길 잘했지?' 물어보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가 왜 당신이랑 결혼했지'하고 대답해요. (웃음) 말은 그렇게 해도 내심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루는 제가 가족 행사 계획을 세우는 걸 보고 '당신 정말 대단하다'라고 하더라고요. 잘 못 해준 것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표현할 때면 아내도 이제는 괜찮다는 반응을 보여줘요. 속 시원하게 웃으며 지난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 같아 감사해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 '아빠'라는 낯선 나로 살아가는 동안 '사랑의 언어'도 변해간다. '알까?'하는 관심이 '알겠지'라는 단정으로, '좋아할까?'하는 기대감이 '이정도면'이란 의무감으로 바뀌어가는 동안 나는 아내에게 어떤 남편으로 비쳤을까. 배려가 가득한 조심스러운 물음표로 완결되었던 언어가, 말줄임표에서 성급한 마침표로 바뀌는 동안 대화는 짧아지고, 결정은 빨라지고, 감정은 외면되어갔다. 한쪽에서는 '이해'라는 말을 양해 없이 던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해 없이 '양해'해주어야만 했다. (p.85)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편의 변화가 뭔가요?
"사소한 거라도 아내에게 물어보는 거 아닐까요. '오늘 일정이 뭐예요?' '00 때문에 힘들죠?' 이렇게요. '나는 당신의 일상에 관심이 많다', '당신과 대화하고 싶다'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요. 의견이 없더라도 물음을 던지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사소하지만 정말 중요해요. 계속 그렇게 질문을 던졌더니 입을 잘 열지 않던 아내가 이젠 자기 의사를 잘 표현해요. 이번 추석 고향 방문을 앞두고도, 아내가 올해는 가지 말자고 확실하게 얘기하더라고요. 예전에 비하면 큰 변화죠."

그의 변화는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회사 일로 바빠 아이를 낳는 아내의 곁조차 지키지 못한 과오가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지난날에 대한 후회를 뒤로하고, 이제 좋은 아빠를 꿈꾼다.
 
#이번에도 둘째 소식을 전화로 들어야 했고, 두 달이 더 지나서야 아이를 안아볼 수 있었다. 나는 참 편하게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p.31)
 
-아내의 투병 이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지셨죠. 육아휴직도 하시고요. 육아휴직은 어떻게 결정하셨어요?
"처음엔 많이 망설였죠. 사실 육아휴직에 대해 아내도 100% 찬성하진 않았거든요. 생계 같은 여러 문제가 있으니까요. 그래도 오롯이 가족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아내를 설득해 직장에 육아휴직 신청서를 제출했어요. 직장 내 반응도 좋지만은 않더라고요. '내년에 승진 안 할 거냐'는 핀잔에, 어떤 분은 노골적으로 이직을 권유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라 올해가 지나면 육아휴직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곤 그냥 밀어붙였어요."

'다음 수업' 
 
 매일 아침 6시 반, 가족 독서 모임이 시작된다.
 매일 아침 6시 반, 가족 독서 모임이 시작된다.
ⓒ 김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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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고민 끝에 선택한 육아휴직, 어떻게 특별하게 보내고 있나요?
"아이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기획하고 실제로 해요. 최근에는 가족 백일장을 열었답니다. 블로그 이웃들에게 심사를 부탁하고요. 상장과 상금, 꽃다발도 준비해서 시상식을 하니, 백일장 심사 기간이면 아이들이 얼마나 설레하는지 몰라요. 심사 후엔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도 세우고요. 또 매일 한 시간씩 가족 독서 모임을 해요. 책을 읽고 서로 돌아가며 얘기하는 거예요. 아이들은 과학과 역사 상식 분야를 좋아해서 자기가 읽은 걸 퀴즈로 내요. 저 같은 경우엔 얼마 전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 아이들과 생각을 나눴고요. 아이들도 아빠 따라 블로그와 유튜브 활동을 하는데, 독서 모임 내용을 자기네 블로그나 유튜브 영상 원고로 사용하니 부담 없이 하는 거죠. 아이들도 즐겁게 하고 아내도 만족하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아이들이 즐거운 활동으로 배우고 성장하네요. 특별한 교육 철학이 있나요?
"우리 집도 다른 집과 다르지 않아요. 말 안 들으면 주말에 게임 못 한다고 애들에게 엄포를 놓기도 하고요. (웃음) 다만,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아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해요. 블로그에 올리는 글로 아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들려주니, 아이들이 우리 부부가 살아온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제가 쓴 <아내수업>도 벌써 몇 번씩 읽었고요. 훗날 아이들이 힘든 일을 만나도 엄마, 아빠를 기억하며 담담히 받아들이고 잘 극복하고 살아가면 좋겠어요."

-작가님도 결혼을 후회하신 적이 있나요?
"형이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내의 투병 생활도 짧지 않았어요. 그리고 저 또한 크게 아파봤고요. 아플 때 옆에서 곁을 지킨 건 가족이었어요. 그 온기로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내 역시 남편과 아이들의 힘으로 위기를 견디지 않았을까요.

저 역시 예전엔 결혼하지 않겠다 생각했어요. 나중에야 제 생각이 짧았단 걸 깨달았죠. 20대 때의 생각이 평생 가진 않아요.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경험하고 성장하니까요.

아내가 아프고 나서 언젠가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엄마, 아빠 없이도 너희끼리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살라고. 그랬더니 자기들끼리 서로 사랑한다며 안아주더라고요. 그거 보면서 '아, 하나보단 둘이 낫구나, 그럼 둘보단 셋이 더 낫겠네' 생각했어요."

-요새 불안정한 현실에 결혼을 포기하거나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작가님에게 결혼과 가정은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가 인생에서 경험하는 보편적인 일들 있죠, 가정을 꾸리고, 직장에서 승진하고, 자식을 키우는 일들. 이런 희로애락을 겪으며 햇빛을 받고, 때론 눈비를 맞기도 하면서 비로소 인생을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결혼이나 출산을 무작정 강요하는 건 요즘 시대에 맞지 않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결혼하지 않기로, 혹은 가정을 꾸리지 않기로 지레 결정해 버리는 것도 어쩌면 인생의 수많은 가능성과 행복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포기해서 잃은 무언가가 내 생각보다 훨씬 크고 소중한 것이었다면 그거야말로 비극이잖아요."
 
 김준범 작가에게 가족은 행복의 본질이다. 매일 아침 함께 눈 떠 ‘좋은 아침’이라 말하고, 함께 웃으며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그의 행복이다.
 김준범 작가에게 가족은 행복의 본질이다. 매일 아침 함께 눈 떠 ‘좋은 아침’이라 말하고, 함께 웃으며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그의 행복이다.
ⓒ 김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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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범 작가에게 지난 14년의 결혼 생활은 나쁜 남편에서 좋은 남편으로, 또 좋은 아빠로 성장해가는 과정이었다. 김 작가는 그 과정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 말한다. 앞으로도 더 좋은 남편, 더 좋은 아빠, 그리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그는 다음 '수업'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

덧붙이는 글 | 김준범 작가는 <아내수업> 이후의 이야기와 육아휴직 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깨달은 것들을 기록한 두 번째 에세이집 '자녀수업(가제)'을 준비하고 있다. 또 무료 온라인 강연 플랫폼 ‘당콘(당신의 콘텐츠를 들려주세요)’을 운영하며 다양한 온라인 강연을 기획한다.
자세한 내용은 김준범 작가의 개인 블로그(blog.naver.com/jun10032)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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