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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국어에도 모국어가 있다고 믿는다. 전라도에서는 '어머'가 아닌 '오메'로 감탄하고, 경상도에서는 그저께를 '아래'라고 하는 것처럼. 제주에서는 '그렇습니까?' 대신 '기꽈?'를 쓰는 것처럼. 지방 출신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언어가 아니면 잘 표현되지 않는 정서라는 게 있다. 

한때는 나도 반찬처럼 사투리를 곁들여야 풍성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90년대 초반 전라도 바닷가 마을에서 할머니 손에 길러질 때가 최고조였는데, 서울만 가면 이모들이 내 말에 허리를 잡고 웃어댔다. 여섯 살 꼬마가 택시를 타보고 "오메, 오메. 시방 이게 뭐다요" 했다는 얘기는 삼십대 후반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가끔 듣는 레퍼토리다. 
 
 내가 나고 자란 바닷가 마을에서 달걀은 키우는 닭에게 얻거나 옆집에서 나눠주는 음식이었다.
 내가 나고 자란 바닷가 마을에서 달걀은 키우는 닭에게 얻거나 옆집에서 나눠주는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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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스무 살에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고향을 떠나온 청춘들은 잔고의 여유만큼 햇빛과 가깝고 곰팡이와 멀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햇빛과는 멀고 곰팡이와 가까운 방을 얻었다. 천냥마트에서 사 온(그렇다. 다이소가 아닌 천냥마트 시대였다.) 삼천 원짜리 상을 펴고 나면 방에 남는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고향 집에 많은 걸 두고 왔다. 은희경 소설과 에쵸티 오빠들의 CD, 그리고 사투리까지. 샤기컷을 하고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은 서울 친구들 앞에서 사투리를 쓰는 건 너무 '거시기' 한 일이었다.

그 뒤 내 언어에서 사투리를 솎아내는데 가속도가 붙었다. 지역혐오를 마주하고 나서였다. "우리 부모님이 전라도 애들하고는 상종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며 해맑게 전하던 친구부터 "너는 전라도 사람 같지가 않다"는 말을 칭찬이랍시고 던지던 알바 선배까지. 선배에게 "대체 전라도 사람 같은 게 어떤 건가요?" 묻고 사과를 듣긴 했지만 이미 정서적 카운터 펀치를 맞은 뒤였다. 나는 점점 가족과 통화를 할 때도 사투리를 잘 쓰지 않게 되었다. 사투리가 무슨 약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투리를 지운다고 내 고향 바닷가 마을의 정서가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도 아니거늘.

말의 허기 끝에 만난 목포 청년

내 사투리 지우기 작업은 꽤 성공적이었다. 사회에서 만난 이들은 내 출신을 잘 가늠하지 못했다. 나는 부러 표준어의 정석 같은 말만 골라 썼다. '겨란'(계란), '하거덩'(하거든) 같은 수도권 사투리도 쓰지 않았다.

매끈한 표준어 속에서 살다 보면 가끔 말의 허기가 밀려왔다. 고향을 떠난 지 18년이 지난 지금도 내 혀가 꽃게 무침이나 병어찜의 맛을 기억하는 것처럼, 구수하고 투박한 고향의 언어가 그립고 사투리가 고팠다.
 
 힙한 홍대에서 사투리를 만나니 어찌나 반갑던지
 힙한 홍대에서 사투리를 만나니 어찌나 반갑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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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서울 한복판, 그것도 힙하고 핫한 이들이 넘쳐나는 홍대에서 고향 말을 만나게 됐다. 홍대 뒷골목에는 걱정을 털어놓는 술집이 있는데, 이름부터 '노워리살롱'이다. 그곳에서 나는 신나게 피자와 치킨을 먹다 어딘가 구면 같은 청년들을 만났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더라… 고민하는 내 귀에 "아따 징해브러"라는 말이 꽂혔다. 아, 이래서 처음 만난 이들이 친숙했구나.

한동안 잊고 살았던 펄떡펄떡 생생한 언어에 귀가 트였다. 내게도 익숙한 리드미컬한 성조, 전라도 사투리였다. 나는 구수한 말투의 청년에게 물었다. "전라도 어디에요?" 그는 "목포요"하더니 나한테 "어딘데요?" 묻는다. 나는 부안이라고, 고향 말이 반가워서 물어봤다고 덧붙였다. 그가 이해한다는 듯 고갤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요. 사투리 굳이 바꿀라고도 안 하고 감출라고도 안 해요. 부끄러운 것도 아닌디 왜 감춰요? 안 그라요?"

그러게. 나는 왜 꼭 표준어를 쓰려고만 했을까. 공인도 아닌데. 남 앞에서 스피치를 하는 일도 없는데. 고향 말의 리듬을 버리고 똑 떨어지는 표준어를 쓰느라 애쓰던 날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홀린 듯 "그라게요...?"하고 답했다.

그 후 우리가 어떤 언어로 떠들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우리는 두어 시간 넘도록 신나게 남도 사투리 성찬을 벌인 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아쉽게 몸을 일으켰다. 집에 돌아오는 길엔 좋은 음식을 먹은 뒤처럼 입속에 여운이 은은했다.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말맛인지.

그날 이후로 나는 '촌스럽다'는 말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보는 중이다. 사전을 보니 '세련된 맛이 없이 엉성하고 어색한 데가 있다'는 뜻이라는데, 쿨하게 사투리를 써 온 목포 청년보다는 표준어에 편입되려 애쓴 내 쪽이 백배 촌스럽다. 

스무 살에 상경하고 햇수로 18년째, 더는 표준어 구사력에 연연하지 않아볼 참이다. 노워리살롱에서 만난 목포 사나이 덕분이다. 그러고 보니 제주와 울산에서는 사투리를 살리기 위해 연구회까지 생겼다던데, 지역의 언어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가 보다. 내게 작은 깨우침을 준 목포 청년들은 잘 지내려나. 문득 안부가 궁금하다. 아마 오늘도 찰진 사투리를 써가며 거래처와 업무 통화를 하지 않을까.

'청년들, 잘 지내는가? 쪼까 소식이 궁금한디 조만간 거시기에서 만나게요. 그라믄 거시기 하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relaxed)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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