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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이슈

'선별이냐 일괄이냐'로 논쟁했던 2차 재난지원금 지급과 더불어 기본소득이  이슈로 떠올랐다. 우리 국민들은 재난지원금을 통해 기본소득의 효능감을 뚜렷하게 체감했다. 이런 민심에 어필하기 위해 여야도 앞다퉈 이 정책에 자기네 브랜드를 붙여 홍보에 열을 올렸다.

기본소득 이론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격변하는 시기, 뒤쳐진 농사꾼들의 최소생활소득을 보장해서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탄생배경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제조업은 저물고,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플랫폼으로 상징되는 4차산업으로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똑똑한 기계들은 사람을 밀어내고 공장, 주유소, 마트를 차례대로 장악하고 있다. 굳이 수년내에 80% 확률로 시급 20달러 이하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조사를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 위기감을 뚜렷하게 체감하고 있다. (2016년 백악관 대통령 경제 자문위원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쇼크는 이러한 변화를 더더욱 가속화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온라인 비대면 주문시스템을 강화시켰고, 오프라인 소상공인과 그와 관련된 고용직들은 이제 온라인 플랫폼으로 귀속되어 각각 테이크아웃 전문점과 배달기사로 내몰렸다.

19세기 러다이트 운동 때 일자리를 잃은 섬유노동자들이 방직기계를 부쉈듯이, 실직한 계산원들이 무인계산대에 망치를 날릴 수 있을까? 바둑기사 이세돌이 알파고를 만든 구글 회장 멱살을 잡고 따질 수 있을까? 길 잃은 사람들이 4차산업 시대로 내던져져 받을 충격을 완화할 쿠션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 몇 년간 마크 주커버그나, 앨런 머스크 등 경제계의 큰손들도 기본소득은 윤리의 문제가 아닌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경제정책이라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불어 재원문제, 선별복지 우위론, 지원형태 등 여러 논쟁과 담론이 오가는 상황이다. 그 중 가장 필자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바로 이 정책의 철학이었다.  

4차산업 시대의 인재상
 
스마트폰 활용에 따라 여러 가치가 창출되는 시대
 스마트폰 활용에 따라 여러 가치가 창출되는 시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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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 교수는 지식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형식지(形式知)는 언어나 문자로 표현된 객관적 지식으로서 일반적인 문서나 데이터로서 공유가 가능하고, 암묵지(暗默知)는 겉으로 바로 드러나지 않지만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몸으로 익히는 것으로서 경험지라고도 불린다.

AI는 대학교까지 모든 정규학습과정을 단 몇 분만에 섭렵해버리는 위력적인 수준까지 왔다. 이젠 '형식지'를 잘하는 인공지능을 굳이 인간이 따라 갈 필요가 없어졌다. AI가 못하는 영역, 즉 암묵지 능력이 중요 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애플, 구글 같은 기업들이 요구하는 능력으로 4C(창의성, 비판적 사고, 협업, 의사소통)를 꼽았다.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나름대로의 창의력을 발휘해 아이디어를 캐내는 게 중요하다. 아이디어는 노동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자유시간에서 나온다. 창의성은 놀이할 때 나온다. 4차산업 시대가 도래한 지금, 우리 아이들은 과연 어떨까?

대부분 성년이 되기까지 주입식교육제도에 갇혔다가 이력서에 '이름난 대학 졸업' 한 줄 쓰기 위해서, 비싼 등록금을 부담하려고 숱한 알바에 매달린다. 유희활동은 그저 사치라고 굳게 믿고 있는 어른들의 손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과연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를 기대할 수 있을까?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기본소득을 줘 어느 정도의 자유시간을 보장해준다면 4차산업에 걸 맞는 인재를 키우는데 꽤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자칫 '돈을 줘서 놀게 하면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라는, 좀 엉뚱하고 흰소리같이 들릴 수 있다. 수 년 전, 이상한 지도자의 이상한 정책 슬로건이었던 '창조경제'가 떠오르기도 하다. 이런 막연한 의문과 더불어 막연한 기대도 십여 년 전에 있었다.  
  
게임 기획자의 추억과 모눈종이

십여 년 전, MB의 엉뚱한 주문이었던 '명텐도'는 황금알을 낳는 게임기업 '닌텐도'에 대한 부러움과 욕망 그 자체였다. 어떻게 하면 그런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컨텐츠가 나오는지 아무런 이해와 노력도 없이, 그저 수출실적에 열을 올리려고 꺼낸 결과중시의 담론에 불과했다.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슈퍼마리오 게임시리즈는 최근에도 엄청난 판매고를 자랑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과연 콧수염 아저씨가 뛰어노는 게임이 어떻게 탄생했을까?

게임의 신이라 불리는 게임기획자, 미야모토 시게루는 어릴 적 초원에서 뛰어놀았던 추억을 모티브로 최초의 슈퍼마리오를 제작했다. 모눈종이 위에 게임의 무대를 스케치하고 2차원좌표(x,y)데이터로 바꿔 고스란히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옮겼다. 게이머는 게임컨트롤러를 쥐고 TV속 주인공 배관공 아저씨를 통해 환상적인 모험을 만끽했다.

미야모토의 추억을 대리 체험하게 한 이 게임은 수천만 개의 판매고를 올리며 대히트를 쳤다. 앞서 소개한 미야모토의 '암묵지(暗默知)'와 컴퓨터 기술이 융합되어 엄청난 가치의 컨텐츠가 탄생한 것이다. 우리 어른들은 닌텐도의 실적만 쫓지 말고 자유롭게 뛰어놀았던 미야모토의 게임 기획서에서 힌트를 찾아야 한다. 만약에 미야모토가 밖에서 놀지 않고 학교-학원-집만 왕복하는 범생이 코스를 밟았다면 이런 끝내 주는 컴퓨터 게임이 나왔을까?
 
1988년 슈퍼마리오2 스테이지 기획서.
 1988년 슈퍼마리오2 스테이지 기획서.
ⓒ 닌텐도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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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 시대의 '시드머니'

가수 헤이즈는 눈물을 삼키며 서너 개의 알바를 견디며 작곡 공부에 매진했고, 음악대장 하현우는 먹다 남은 라면국물을 얼려 다음날 데워서 밥을 말아먹으며 무명의 시기를 견뎠다. 두 아티스트의 이런 눈물겨운 성공 에피소드가 당연시되며 청년들에게 강요되는 분위기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기본소득을 축소하여 시범적으로 청년층으로 한정해서 시행해도 좋을 것이다. 연GDP 2천조에 육박하는 우리나라에서 20~30대에게 월 10만원(1년 16조원) 주는 것은 이제, 재원의 문제가 아닌 정책철학의 문제라고 본다. 청년들에게 알바 하나라도 줄여 고단한 현실의 족쇄를 풀어주자. 그리고 자신만의 놀이터에서 맘껏 뛰어놀 수 있게 해주자. 그 풀밭을 뛰어놀았던 게임 기획자처럼 말이다.

여기까지가 기본소득에 관한 필자의 다소 낙관이 섞인 생각들이다. 아직까지 다툼의 여지가 많지만 이 논쟁의 테이블에 앉은 우리 어른들에게 이 게임 기획서 한 장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인식의 전환부터 이뤄졌으면 좋겠다. 기본소득은 4차산업 혁신의 시드머니라고 외친 경제학자 최배근 교수의 주장에 이렇게 필자의 자투리 지식 하나 보태며 글을 마친다.

덧붙이는 글 | * 참고: 최배근 <호모 엠파티쿠스>, 경기도 기본소득 박람회


태그:#기본소득, #슈퍼마리오, #게임기획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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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작가 김진수입니다. 게임,일상다반사 등 가슴에 맺힌 여러 생각들을 재밌게 써볼랍니다. 블로그 '소금불' 운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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