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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유니온 인터뷰 기획 '나는 배달노동자'는 인권재단사람 정기공모사업 '2020 인권프로젝트-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구술작가 2명이 10대~50대 라이더 5명을 인터뷰해 정리한 글을 정기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이전 기사] 배달라이더가 사고 나면 반드시 없애야 하는 것 http://omn.kr/1p3xr
(유건우씨 이야기 2편에서 이어집니다)

유건우는 콜비 3000원짜리 커피를 잡고 같은 아파트로 가는 다른 콜을 이어서 잡으려고 스마트폰을 주시하고 있었다. 곧 화면에 원하는 아파트 이름이 떴고 놓칠세라 빠른 속도로 클릭했다. 콜비가 자그마치 6000원이었다. 참치 횟집이었는데 두 세트라 콜비가 '따블'이었다. 재수가 좋다고 생각했다.

평소 꺼리던 신축아파트단지였지만 배달을 얹어서 갈 수 있는 데다가 마지막에 잡은 콜비가 따블이었으니 쉽게 오지 않는 횡재였다. 유건우는 커피숍에 들렸다가 참치횟집에 들려 음식을 받았다. 아파트에 도착해서 커피를 들고 내렸다. 참치는 옆 동이었으니 늦지 않게 배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도착한 곳은 55층까지 있는 아파트였다. 한 동에 엘리베이터가 3대였는데 연동식이라서 한 대가 내려오고 있으면 다른 두 대는 움직이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배달 가야 할 곳은 38층이었다. 38층에서 내리면서 42층 버튼을 눌러두었다. 배달은 1, 2분이 다급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제때 타는 게 중요하다. 선결제였으므로 음식만 전달하면 이 건은 배달 완료다. 초인종 소리에 바로 나온 손님 덕분에 계산한 시간에 맞춰 내려온 엘리베이터를 타기만 하면 된다. 유건우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42층에 멈춘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방향이 켜진 채로 멈춰 있었다. 3분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왜 안 내려오지? 고장 났나?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늦으면 어쩌지?'

조급해진 유건우는 더 이상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급히 계단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난간을 잡고 반은 뛰어넘듯이 내려갔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숨이 차서 두통이 올 지경이었다. 1층에 거의 도착할 무렵 핸드폰이 울렸다. 식당이었다. 식당 주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렇게 늦어요?"
"거의 다 왔어요."
"배달시간이 이미 완료돼서 손님이 취소했어요."
"네? 바로 앞인데요."
"벌써 도착했었어야죠!"
"음식은… 어떻게 해요?"
"물어내셔야죠."
"얼마인데요?"
"영수증에 써 있잖아요. 참치회 130,000원이요."


다리가 풀렸다. 시계를 보니 3분이 지나 있었다. '배달의 민족'은 주문하자마자 도착 예정 시간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데 그 시간이 넘어가면 손님들이 식당에 전화해서 취소한다.

"너무 죄송해요. 깎아주실 수 없을까요?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어쩔 수 없었어요."

식당에 전화해서 사정했고 식당 주인은 선심 쓰듯 금액의 반만 입금하라고 했다. 식당에 입금하고 냉동팩이 녹아 물이 떨어지는 참치 봉지를 들고 배달대행 사무실로 향했다. 부모님에게 갖다 드릴 생각에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날 저녁 6시부터 새벽 1시 반까지 총 27번의 배달을 했고 오토바이 리스비 15000원을 빼면 63000원을 벌었다.

10대 청소년 노동자
 
라이더유니온 총회에 참석한 라이더들이 각자의 요구를 담은 현수막을 들고 있다.
▲ 라이더들의 요구 라이더유니온 총회에 참석한 라이더들이 각자의 요구를 담은 현수막을 들고 있다.
ⓒ 구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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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10개의 배달을 마치고 배달대행 사무실로 향했다. 목도 마르고 화장실도 가고 싶고 졸음도 몰려왔다. 사무실에 들어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 사무실에는 50대 라이더 세 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티비를 보고 있었다. 사무실에 배달 콜이 연거푸 울렸다.

"건우, 배달 가라."
"저 막 들어왔어요. 좀 쉬다 나갈 거예요."
"너 오늘 몇 개 했어? 10만 원 못 벌었으면 얼른 나가."


하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뻘 되는 사장님과 동료의 말은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 유건우는 사무실에서 가장 어린 라이더 중 한 명이다. 강제 배차가 되거나 휴일이 까이는 경우가 유독 많았다.

지난 화요일 저녁 7시경 배달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선 유건우에게 사장이 말을 걸었다.

"건우야. 오늘 비가 와서 콜이 별로 없다. 그만 들어가고 내일 나와."
"내일 쉬는 날인데요?"
"그러니까 내일 말고 오늘 쉬어."


휴일이 까이게 되어 억울했지만 입을 닫았다. 사장님 말에 토를 달아봤자 손해 보는 건 자신이었다. 일이 일찍 끝난 김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밥 먹고 근처 PC방으로 가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사장님이었다.

"건우야 갑자기 콜이 많다. 얼른 와."

콜수가 많아지면 사장님은 쉬는 사람 중 유건우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친구가 받지 말라고 말렸지만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핸드폰이 꺼져 있으면 사장님은 잊지 않고 앙갚음을 했다. 라이더들이 꺼리는 주문이 여지없이 강제 배차된다.

언젠가 금요일에 쉬고 싶다고 먼저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쉬는 날을 정해서 요청한 건 드문 일이었다. 사장님은 금요일에는 배달이 많기 때문에 쉴 수 없다고 했는데 약속을 취소할 수가 없어 사장님께 '말씀드린 대로 출근 못 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내고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날은 무단결근이 되어 벌금이 매겨졌다. 일주일 동안 수수료 500원이 추가로 빠져나갔다. 수수료는 원래 200원인데 500원의 벌금이 매겨져 총 700원이 나간 것이다. 배차도 휴일도 벌금도 사장님이 정한다.

오토바이 애호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오토바이가 타고 싶었다.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동네 형을 자주 마주쳤는데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을 마냥 바라보곤 했다. 차들로 막힌 도로에서도 오토바이는 날렵하게 움직였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운전자들도 쉽게 마주칠 수 있으니 자신이 오토바이를 탄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해보았다.

오토바이 면허는 만 16세부터 취득할 수 있었다. 열일곱 번째 생일이 지나자 오토바이 면허시험장을 찾았다. 오토바이 운전은 생각보다 어려워 연거푸 2번 떨어지고 3번 만에 붙었다. 면허시험장에서 잠깐 타본 게 다였지만 상상만큼 재미있었다.

'어떻게 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닐 수 있을까?'

오토바이 구입도 구입이지만 자동차 보험료보다 몇 배 비싼 보험료는 고등학생이 넘을 수 없는 문턱이었다. 같은 반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배달대행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오토바이를 빌려 타는데 빌리는 비용에 보험료가 포함돼 있다고 했고 배달료로 비용이 충당되고도 남는다고 전해주었다. 유건우는 솔깃했다.

"안전하게 탈게요. 허락해주세요."

부모님을 설득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부모님은 유건우가 하고자 하는 일을 믿고 맡겨주시는 편인데 오토바이는 달랐다. 안전하게 타겠다는 다짐을 여러 번 하고서야 건우는 배달대행 사무실을 찾을 수 있었다. 유건우는 올해 3년 차 운전자가 됐다. 고등학교 1학년 중반에 시작해 고등학교 3학년인 지금까지 하고 있다. 오토바이 운전을 즐기는 유건우에게 배달대행 일은 적성에도 맞고 돈도 벌 수 있는 일이었다. 등교도 오토바이로 하고 쉬는 날에는 오토바이를 몰고 근교로 드라이브를 나간다.

올 초에 홀로 제주도로 향했다. 3학년이 되기 전에 오토바이를 타고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아보고 싶었다. 제주공항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오토바이를 렌트했다. 기름을 넣고 출발을 해야 하는데 처음 타보는 기종이라 연료통 캡을 찾을 수가 없었다. 건우는 오토바이 사진을 찍어서 라이더유니온 단체톡방에 올렸다.

"제주도에 와서 빌린 오토바인데요. 연료통 캡이 어디에 있나요?"

누군가의 답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출발하려는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친하게 지내던 조합원 형이었다. 제주에서 배달대행 일을 하는 사람을 소개해주면서 연락해보라고 했다. 건우는 처음 만나는 분을 서슴없이 찾아가 여행 정보도 듣고 흑돼지를 얻어먹었다. 새로운 곳을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오토바이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데 6시간이 걸린다고 했는데 3일에 걸쳐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다. 라이딩하기 좋은 도로를 일부러 찾아다녔다. 마지막 날에는 마라도를 방문해 자장면도 사 먹었다. 제주도는 도로가 한산해 오토바이를 타기 좋았다. 제주의 도로를 달리며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다.

유건우가 그리는 미래 "라이더가 일하기 좋은 사무실 만드는 게 꿈이에요"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유건우는 8시에 등교해 오후 4시 반 무렵에 하교한다. 학교 근처에서 친구들과 엽떡(떡볶이)이나 컵라면으로 저녁을 챙겨 먹고 6시에 배달대행 사무실로 출근한다. 매일 7시간씩 꼬박 일한다. 밤 1시쯤 마지막 콜을 잡는데 배달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새벽 1시 반쯤이 된다. 매일 새벽 2시를 넘겨 잠이 드니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가장 힘들다. 그래도 지각을 할지언정 절대 결석은 하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로 한 것은 자신과 한 약속이다.

빼먹지 않고 지키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매주 정비소를 찾는 일이다. 리스 오토바이라 점검이 운전자 책임은 아니지만 안전하게 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엔진오일을 갈고 브레이크 패드나 후미 등, 깜빡이 등을 꼼꼼하게 점검받는다. 유건우는 오토바이에 관해서는 베테랑이 되고 싶다.

밤 9시가 넘은 시간 가로등 하나 없는 발전소에 배달을 간 적이 있었다. 표지판도 없고 정비가 안 된 길을 오토바이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위태롭게 운전했다. 귀신이 출몰할 것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에 잔뜩 겁을 먹었다. 배달을 겨우 마치고 발전소를 빠져나와 큰 도로로 합류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데, 갑자기 앞으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유건우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후미등이 꺼진 채로 달리는 배달 오토바이였다. 속도를 내서 그 오토바이를 따라잡았다. 헬멧 실드를 올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후미등이 나간 거 아세요? 방금 사고 날 뻔했어요. 얼른 고치세요!"

유건우는 후미등이나 깜박이등이 나간 오토바이를 발견하면 쫓아가서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운전자가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답답하게 생각하는 운전자는 헬멧을 잘 쓰지 않거나 자전거 헬멧을 쓰는 라이더들이다. 사고의 순간에 운전자를 보호해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헬멧뿐이기 때문이다. 유건우는 헬멧을 고르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안정성을 인정받은 제품에 시야가 잘 확보되면서 적당한 가격인 제품이다.

지난달 새 헬멧을 사자마자 '라이더유니온'에서 받아온 스티커를 뒤통수에 붙였다. '블랙박스 녹화 중'이라고 써 있는 스티커였는데 일러스트가 귀엽고 글씨체도 예뻤다. 헬멧 뒤통수 쪽에 스티커를 붙인 후부터 운전자들이 차를 오토바이 쪽으로 붙이거나 경적을 울리는 등의 위협운전을 덜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더 마음에 드는 점은 '블랙박스 녹화 중'이라는 글씨 아래에 '라이더유니온'이라고 써 있는 부분이다. 라이더들이 이 스티커를 보고 노조가 필요한 순간에 '라이더유니온'이 떠올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실제로 다른 라이더들이 가끔 물어볼 때가 있다.

"라이더유니온이 뭐예요?"
"배달 기사들 노조예요."
"배달기사도 노조가 있어요?"
"있어요. 사고가 나거나 배달하면서 알아야 할 것들도 알려줘요."

 
유건우 라이더유니온 조합원.
 유건우 라이더유니온 조합원.
ⓒ 한겨레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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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우는 올해 초 청소년노동인권센터 상담사양성교육에 교육생으로 참석했다. 산재보험과 인권에 대해 몰랐던 여러 가지 정보를 얻었다. 친구나 동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간단하게 메모도 하고 나오는 길에 리플렛도 챙겼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나 지식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며칠 전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에게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었다. 특고직 배달대행 라이더도 교육을 필수로 받아야 하고 교육을 받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위원장이 몰랐다면서 고맙다고 했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군대를 다녀온 후 배달대행 사무실을 차리고 싶다. 유건우가 순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사무실은 산재보험이 무조건 필수예요. 라이더들이 일하기 좋은 사무실을 만들 거예요."
 

태그:#라이더, #라이더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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