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 13:14최종 업데이트 20.10.12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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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케이팝의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오마이뉴스 해외 시민기자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나라에서 경험한 케이팝 현상을 소개합니다. 또한, 2020 케이팝 열풍의 명암을 조명합니다.[편집자말]
미국 역사상 최악의 토론이라고 불린 9월 29일(현지시각) 대통령 선거 토론. 심란한 마음에 TV 앞을 떠나지 못했던 이들은 NBC 더 투나잇 쇼가 내보낸 방탄소년단(BTS) 특집을 보며 허탈한 마음을 위로했다. NBC는 이날부터 일주일간 BTS 위크(week)라며 매일 미 전역에 BTS 관련 영상을 송출했다. 경복궁과 경회루를 배경으로 한 화려한 공연을 보며 잠시나마 복잡한 대선판을 잊을 수 있었다. 

"걸스 제너레이션 신곡이 나왔던데 들어봤니?"
"누구? 아, 소녀시대. 근데 네가 소녀시대를 어떻게 알아?"


10여 년 전 인도 친구 니미쉬는 한국인인 나보다 케이팝을 더 잘 알았다. 그는 당시 소녀시대 9명 멤버 모두를 잘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니미쉬가 소녀시대를 접한 건 유튜브였다. 소녀시대를 전후로 케이팝 그룹들은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전 세계 팬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미국에 진출한 케이팝
 

지난 1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류 문화 축제 케이콘(KCON) 컨벤션에 참석한 관람객들이 K팝 가수가 등장하자 환호하고 있다. 2019.8.18 ⓒ CJ ENM

 
미국 시장에 처음 명함을 내민 케이팝 1세대 한국 가수들은 원더걸스, 보아, 세븐, 비 등이다. <성장하는 미국 내 K-pop 시장>이란 코트라(KOTRA) 보고서에 의하면 2009년 영어 앨범을 처음 발매한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아는 빌보드 차트 200에 우리나라 가수로는 최초로 127위에 진입했다.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던 JYP 엔터테인먼트의 원더걸스도 같은 해 '노바디'란 노래로 빌보드 핫 100에 진입(76위) 했다.

2011년 SM은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SM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SM 타운 라이브 월드 투어 인 뉴욕'을 개최하며 미국 진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대형 기획사를 중심으로 한 여러 노력에도 당시 미국의 대중과 평단의 반응은 썰렁했고 1세대 가수들은 큰 성과 없이 돌아가야 했다. 

미국에서의 엄청난 히트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나왔다. 2012년 7월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 최고 조회 수를 경신하며 전 세계적 열풍을 불러일으킨 것. 강남스타일은 다음 해 1월 미국에서 400만 장 앨범 판매를 기록했다(2020년 10월 현재 유튜브 조회 수는 38억 회다). 독특한 춤과 따라 부르기 쉬운 후렴구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이 노래는 빌보드 핫 100에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가수 싸이는 NBC, ABC 등 미국 공중파 아침 방송과 유명 토크쇼의 인기 게스트로 얼굴을 알렸다. 

이후 BTS, 엑소, 트와이스, 블랙핑크, 아이오아이, 갓세븐, SuperM 같은 그룹들이 꾸준히 미국 시장을 두드렸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12년부터 CJ ENM이 주최하는 케이팝 콘서트 'KCon'도 입지를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중 2013년 데뷔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소속 BTS는 최고의 성과라 할 수 있겠다. 이들에 대한 미국 내 찬사는 넘쳐난다. <포브스>(Forbes)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성공적인 케이팝 이름"이라고 했고, <타임>(Time)은 2019 타임 100에 오른 BTS를 "팝의 왕자"라고 칭했다.

실비오 피에로룽 빌보드 부회장은 "BTS와 비견할 팀은 몽키스와 비틀스밖에 없다"라고 평했다. BTS는 2019년 11월 빌보드가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선정한 '소셜 아티스트' 톱 4위에 선정된 데 이어 올해엔 빌보드 싱글 차트 2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버즈앵글>(BuzzAngle)이 낸 '미국 음악 산업 소비에 관한 2018 연말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BTS의 미국 내 앨범 누적 판매량은 60만 3307장으로 에미넴에 이어 앨범 판매량 2위를 기록했다. BTS는 또 단 6번의 미국 스타디움 콘서트에서 44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2019년 <포브스>지는 57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린 방탄소년단을 최고 연봉 100인 중 43위라 발표했다. 

케이팝의 그늘

문화체육관광부와 해외문화홍보원이 올해 2월 4일 '2019 대한민국 국가 이미지 조사'를 발표했다. 16개국 8000명의 외국인 중 76.7%가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는데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1위가 케이팝 가수였다.  

케이팝 가수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이들을 다룬 뉴스도 주목을 받는다. 지난 1월 2일 CBS 뉴스는 케이팝 스타들의 자살을 자세히 다뤘다. 이들은 케이팝의 화려한 무대와 엄청난 흥행 뒤에 25세의 설리와 28세의 구하라가 한 달 간격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을 조명했다. 이들 여성 스타들은 뛰어난 실력과 국제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의 표적이 되었고 자기 관리의 압박이 매우 컸다고 CBS는 지적했다. 무엇을 말하고 생각해야 하는지도 관리받아야 하는 스트레스와 엄청난 노동 강도가 어린 스타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넣었다는 내용이다. 

2019년 11월 7일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도 같은 보도를 했다. '케이팝의 어두운 면: 폭행, 매춘, 자살, 몰카'라는 강한 제목의 기획 기사였다. 이 매체는 크게 네 가지에 주목했다. 케이팝 스타들의 자살, 이른 데뷔, 불안한 미래, 그리고 버닝썬과 장자연 사건으로 대표되는 성 스캔들이다. 
 

2019년 11월 7일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는 '케이팝의 어두운 면: 폭행, 매춘, 자살, 몰카'라는 강한 제목의 기획 기사를 실었다. ⓒ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

 
"우울증이 서서히 나를 앗아갔고 마침내 나를 삼켜 버렸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것은 제 길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 모든 시간을 견뎌낸 것은 기적입니다." 

글을 쓴 매튜 캠벨과 김소희 기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샤이니의 종현이 "화려한 기획사 건물에 새겨진 수많은 얼굴 중 하나로만 남아 있다"라며 "재능 많았던 스물일곱 종현의 삶이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지미 헨드릭스나 에이미 와인하우스같이 기억되지 못한다"라고 안타까워한다. 역시 같은 선택으로 삶을 마감한 설리도 종현과 같은 소속사다. 기자는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이들이 실제 사생활에서 많은 제약 속에 갇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들의 대부분은 자아를 키우고 단련하는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연습생 신분으로 보낸다. 재능이 보이면 초등학생 때부터 기획사에 합류하기도 한다. 이들은 케이팝의 정년이 30세까지라는 불문율 때문에 일반적인 학교 수업과 교우 관계를 온전히 경험하지 못한 채 연습에만 매달려야 한다. 그리고 20대 후반이 되면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며 예능이나 연기 또는 자신의 사업을 준비해야 한다.

기사는 한국 사회를 뒤흔든 빅뱅 승리의 나이트클럽 버닝썬과 라면 프랜차이즈 운영을 이런 연유로 분석한다. 버닝썬을 둘러싸고 드러난 놀라운 여러 사건은 케이팝의 그림자와 한국사회 불공정한 구조의 가장 어두운 면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 기사는 서른 명의 영향력 있는 남성에게 성접대를 해야 했던 장자연 사건도 자세히 소개했다.

2018년 12월 뉴욕에선 '왜 케이팝에 열광하는가?'라는 제목의 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빌보드 잡지 뉴욕 에디터인 케이팝 전문가 제프 벤자민은 케이팝의 매력은 스타들의 솔직한 모습과 자신만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때보다 더욱 높아진 케이팝의 위상만큼이나 더 깊어진 그늘에 대해 2020년 그의 대답은 명확했다. 9월 28일 필자와 한 서면인터뷰에서 그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그들이 더 많이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케이팝 스타들은 완벽한 공연을 위해 많은 연습을 하지만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아티스트들이 좀 더 여유를 갖고 인간적인 면과 함께 지금처럼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어요. 이미 서구에선 케이팝의 어두운 면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고 있는데 결코 좋은 징조는 아닙니다."

앞의 블룸버그 기사도 같은 지적을 했다. 케이팝 시스템은 흔히 공장에 비유되곤 하는데 블룸버그는 중세 길드와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철저한 공동체성과 인기에 따라 서열이 나뉘는 엄격한 계급성 등이 그것이다.

블룸버그 기자는 강남의 한 연습실에서 주 5일 늦은 밤까지 연습에 매진하는 15살, 18살 연습생과 인터뷰했다.

"제 목표는 부모님께 집을 사드리는 거예요."
"가장 큰 희망은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거예요."

미국 음반사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야망을 가진 연습생들은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문제에 대해선 유명해지면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기자는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던 버닝썬에 대한 연습생들의 생각을 듣고 싶었지만 이들은 에둘러 그 뉴스와 거리를 두고 싶어했다.

글로벌 스타와 글로벌 스탠더드
 

방탄소년단(BTS)이 2019년 12월 31일(현지시간) 밤 미국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스퀘어에서 새해맞이 라이브 무대를 펼치고 있다. ⓒ 뉴욕 AP=연합뉴스

 
위 오픈 포럼에서 저널리스트 타마르 허먼은 자신의 케이팝 입문 경위에 대해 말했다. 섹스와 폭력으로 점철된 기존 팝과 매우 달랐기 때문에 끌렸다는 것이다. 그녀는 가수 자신의 얘기를 한국어로 더 풍부하고 자연스럽게 해주는 스타를 기대한다고 했다.

10월 1일 필자와 한 서면인터뷰에서 그는 저널리스트로서 최근 미국 사회에 일고 있는 흑인 인권 운동(BLM)에 BTS가 지지 성명과 성금을 쾌척한 것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BLM 운동을 주목하는 전 세계 많은 팬들에게 BTS의 행동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전 세계 팬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지요."

연예인들의 정치 사회적 의사표현에 민감한 한국 사회와 달리 사회 문제에 당당히 발언하고 동참하는 글로벌한 모습에 팬들이 더욱 공감하고 지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케이팝 팬들과 틱톡 유저는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유세에 노쇼 시위를 한 주범으로 언론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들은 누구를 원망하는 것 대신 직접 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그들은 전 세대 열정적인 팬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틱톡커(틱톡 크리에이터)와 케이팝 팬들은 SNS를 사용해서 참여한다는 거죠."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케이팝 팬들은 이미 알고 있다. 버닝썬 사건의 결론이 클럽의 문을 닫고 승리가 군대 간 것으로 조용히 마무리되고 있다는 것을. 누구도 구속되지 않고 장자연 사건이 끝나고 있다는 것을. 몰카 범죄는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기생충>이 미국에서 상영될 때 근로기준법을 지키며 찍은 영화라는 사실에 미국 관객들이 더욱 사랑했듯이, 케이팝을 놓고 벌어지는 뉴스가 적어도 글로벌한 팬심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의 멋진 젊은이들을 더 열렬히 자랑스러워하고 싶다. 그게 군대를 빼주느냐마냐보다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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