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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유니온 인터뷰 기획 '나는 배달노동자'는 인권재단사람 정기공모사업 '2020 인권프로젝트-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구술작가 2명이 10대~50대 라이더 5명을 인터뷰해 정리한 글을 정기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유건우(19)는 배달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비보호 표지판이 있는 4차선 도로였고 빨간불이라 왼쪽 깜빡이를 켜고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빵빵" 뒤에서 경적과 함께 거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새끼야, 비보호잖아."

유건우는 뒤를 돌아보았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창문을 열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아저씨, 빨간불에서는 좌회전 안 돼요."

중년 남성은 오토바이 타는 놈들은 교통법규를 잘 모른다면서 혀를 찼다.

"야! 빨리 좌회전하라고."
"비보호라도 빨간불일 때 좌회전하면 신호위반이에요. 그리고 언제 봤다고 반말이세요?"
"내가 너보다 서른 살은 더 먹었다. 뭐가 신호 위반이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중년 남성은 창문을 올려버렸다. 그사이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었다. "빠아아아앙" 남자는 앞을 노려보면서 경적을 길게 울렸다. 유건우는 천천히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중년 남자 뒤차의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뛰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자신에게 막말한 운전자에게 할 말이 남아서 정차할 수밖에 없었다고 차분하게 양해를 구했다. 운전자는 상황을 보고 돌아가서 다른 차선으로 빠져나갔다. 그 사이 문제의 남성이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인터넷 찾아봤는데 빨간불일 때 비보호차선에서 좌회전하면 안 되는 거 맞네. 알았으니까 이제 갑시다."
"저한테 욕한 것과 경적 울린 것, 사과부터 하세요."


중년 남성은 그까짓 일로 사과까지 할 수는 없다고 했고 결국 둘은 근처 지구대로 향했다. 유건우는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은 경적을 반복해서 여러 번 울리면 범칙금이 부과된다고 했다. 남자는 그제야 유건우가 어려 보여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것 같다고 봐줄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유건우는 도로 위에서 겪은 수많은 일을 떠올렸다.

"나는 당신을 봐줄 생각이 없습니다."

폭우를 뚫고 가는 배달
 
라이더 유건우씨
 라이더 유건우씨
ⓒ 유건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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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우는 오토바이로 음식 배달하는 일을 한다. 손님이 '배달의민족'이나 '요기요' 앱을 통해 주문하면 식당에 연결된 배달대행 사무실로 콜이 가는데, 유건우는 배달대행 사무실에서 일하는 라이더다. 막 근처에 있는 떡볶이 식당의 콜을 잡았다. 오늘은 비가 오니까 3500원짜리다. 배달료는 2500원에서 3000원인데 눈이나 비가 오면 500원이 추가된다.

'아, 카드결제네.'

식당에서 김이 나는 음식 봉지를 받아 나오며 봉지에 붙은 영수증을 재차 확인했다. 우비 안쪽 조끼 주머니를 더듬으며 신용카드기 위치도 확인했다. 식당 문을 나서는 발아래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음식 봉지를 오토바이 배달통 안 배달 가방에 넣어 고정했다. 배달통 뚜껑을 닫고 빗물이 들어가지 않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헬멧 실드에 흐르는 물을 손으로 대충 닦으며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다. 오토바이가 물방울을 튀기며 차들 사이로 합류했다.

배달 가야 할 곳은 2019년 초에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 단지였다. 아파트 주민들은 입주를 시작하면서 배달 오토바이나 택배 차량이 주민의 도보를 위협해서는 안 된다며 지하주차장으로만 출입해야 한다는 지침을 정했다. 지하주차장은 택배 차량이 내려가기엔 천장이 낮고 오토바이가 내려가기엔 방지턱이 많아 미끄러지거나 음식 봉지가 터질 위험이 있다.

지난달에도 이 아파트로 배달 간 적이 있었다. 시간이 급해 지하주차장까지 가지 못하고 지상 출입구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올라갔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오토바이 바퀴에 도난방지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경비원은 풀어주는 대가로 각서에 사인할 것을 요구했는데, 지상으로 배달하다 다시 걸릴 경우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배달 시간이 촉박해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유건우는 비를 맞으며 그때를 떠올렸다. 아파트 입구에서 경비실 창문 너머를 살피는데 경비실 창문이 열리며 경비원이 손짓했다.

"거기 오토바이! 지하주차장으로 가요."
"비가 와서 위험해서 그러는데 이번만 지상으로 갈게요."
"누구 잘리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지하로 가요."


말을 더 붙여볼 틈 없이 경비실 창문이 닫혔다. 어쩔 수 없이 지하주차장 쪽으로 오토바이를 돌렸다. 지하주차장은 우레탄 바닥이라 물기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미끄러지기 쉬웠다. 유건우는 최대한 속도를 낮췄다. 거의 다 내려올 무렵 방지턱에 걸려 덜컹했는데 그 순간 옆으로 승용차가 내려오고 있었다.

브레이크를 잡는 동시에 오토바이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옆으로 미끄러졌다. 오토바이는 가속이 붙어 앞으로 날아갔고 건우의 몸은 그 자리에서 위로 던져졌다. 오토바이는 쓰러지면서 벽에 부딪히며 멈췄고 건우는 땅에 부딪히면서 몇 바퀴를 구르다 멈췄다. 몸이 뜨는 순간 생각했다. '이제 죽는구나.'

헬멧이 어디엔가 부딪혀 "쾅" 하는 소리가 났고 이어 둔탁한 느낌이 머리에 전해졌다. 두 팔과 허리, 다리가 차례로 바닥을 때리듯 닿았다. 찰나에 어떤 장면들이 슬로비디오처럼 지나갔다.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여 보았다. '살았나?' 조금씩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땅에 닿았던 살갗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 순간 감각을 누르고 배달해야 할 음식이 머리에 스쳤다.

유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일단 오토바이가 어디 있는지 살폈다. 오토바이는 다행히 차가 아니라 벽에 부딪혀 멈춰진 상태였다. 오토바이를 세운 후 시동부터 껐다. 배달통 뚜껑이 활짝 열려 있었고 음식봉지는 3미터쯤 되는 곳에 떨어져 있었다. 얼른 뛰어가 봉지를 주웠는데 다행히 포장을 꼼꼼히 해서 봉지 안 음식이 터지진 않았다. 유건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비를 걷어 옷소매로 봉지에 묻은 빗물을 닦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급하게 뛰었다.

배달완료 2분 전에 음식을 배달할 12층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누르고 봉지를 들지 않은 손으로 우비 안에 입은 조끼 주머니에서 조심스레 신용카드기를 꺼냈다. 카드기는 물이 묻으면 쉽게 고장이 나기 때문에 비 오는 날은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순간 손바닥이 쓰라렸다. 넘어지면서 왼손이 땅바닥을 쓸었는데 손바닥에 꽤 넓게 상처가 나 있었다. 빗물에 흙에 피까지 뒤섞여 손이 엉망이었다. 손가락을 세워 조심스레 카드기 모서리를 잡았다.

결제를 마치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그제야 무릎과 팔꿈치에 통증을 느꼈다. 절뚝거리면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오토바이 시트에 앉는데 바지가 축축했다. 아까 넘어지면서 우비가 찢어졌는데 바닥에 고인 물에 바지가 젖어버린 것이었다. 우비를 대충 여미고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다. 스마트폰을 켜고 근처 식당에서 올린 콜을 잡았다. 유건우의 오토바이가 폭우가 쏟아지는 거리를 향해 달렸다.

라이더들의 노동조합

2019년 여름은 무더웠다. 오토바이 배달은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다. 비, 바람, 눈, 햇빛을 몸으로 받으며 하는 일이니 아스팔트가 녹고 땅이 얼 때 가장 힘들다. 덩치가 큰 유건우는 여름이 가장 싫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라 한여름은 달리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땀이 흐른다.

배달 라이더들은 피부가 타거나 넘어져 다치는 것에 대비해 한여름에도 긴팔상의와 긴바지를 입는데 유건우는 어쩔 수 없이 반팔을 입는다. 땀 때문에 옷이 달라붙어 운전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은 매일 땀에 절여진 채 녹초가 되어 퇴근했다.

유건우는 잠들기 전까지 유튜브를 보곤 한다. 그날은 여느 때처럼 오토바이 시승 영상을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추천 영상 중 하나에 눈길이 갔다.

'올해는 컵라면 말고 폭염수당 주세요!'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
ⓒ 라이더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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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매장 앞에서 오토바이 헬멧을 쓴 젊은 남성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폭염수당 100원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폭염 수당?' 생각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을 요구하는 모습이 놀랍고 신기했다. 졸음이 밀려왔지만 영상을 끝까지 봤다.

영상 말미에 라이더들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 홈페이지 주소가 나와 있었다. 검색해보니 '라이더유니온'은 라이더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산재, 수당, 해고…' 홈페이지에는 미처 몰랐지만 자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유건우는 홈페이지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조합원 가입신청서를 작성했다. 조합원이 되면 조합비를 매달 내야 했으므로 출금 계좌번호까지 꼼꼼히 기재했다.

(유건우씨 이야기 2편으로 이어집니다)
[다음 기사] 배달라이더가 사고 나면 반드시 없애야 하는 것 http://omn.kr/1p3xr

태그:#배달, #라이더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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