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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꼭 음식을 해갔다.
 엄마는 꼭 음식을 해갔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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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첫 명절에 시가에서 음식을 간소하게 하는 걸 보고 놀랐다. 2년 후 동생이 결혼하고 친정 엄마가 차린 음식을 보고는 기절할 뻔했다. 제사도 안 지내는 집에서 각종 전에 나물에 통닭까지(대체 통닭은 왜 하는 건지). 

우리 시가의 2배가 넘는 음식을 엄마 혼자 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가에서 올라온 사위(딸 아니고 사위)가 명절 음식 느끼한 거 먹고 왔다고 해물탕까지 끓였다. 정말 못 말린다.

어릴 때도 그랬다. 외가 식구들끼리 콘도나 어디에 놀러가면 외삼촌이랑 이모들은 그냥 오는 데 엄마는 꼭 음식을 해갔다.

"아줌마, 그거 양념 통닭 해서 형제들이랑 먹을 거니까 이쁘게 썰어줘요."

시장 닭집에서 닭을 사 와서 튀긴 다음 당시 유행하던 양념 통닭 양념을 직접 만들어서 콘도에 가져갔던 엄마. 7남매가 자신의 반려자와 아이들까지 대동하고 모이는 거라 엄청난 수인데 그 사람들이 다 먹을 만큼 양념 통닭을 해갔다.

"누나 김치 해올 거지?"

나중에는 아예 삼촌들이 김치를 주문하거나 먹고 싶은 걸 말하는 상황으로 갔다. 문제는 엄마도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아프다는 거다. 손가락 관절도 아프고 옷가게 하면서 짐을 나르느라 어깨는 망가졌고 족저근막염까지 왔다.

누가 우리 엄마 좀 말려주세요 

"나 이제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할 거니까 니들이 알아서 해."

올여름 고창에 갔을 때 엄마가 입버릇처럼 한 말이다. 여름 휴가 대신 동생네와 우리 가족, 엄마, 이렇게 고창에 있는 외가 시골 별장에 갔다(별장이라 쓰고 외조부가 살던 집이라 읽음). 차 막힌다고 새벽 3시에 출발하는데도 엄마는 닭을 3마리나 직접 튀겼다.

닭만 튀겼을까? 소고기 장조림, 전복 장조림, 간장게장, 양념게장, 멸치볶음, 진미채 볶음, 열무김치, 묵은지... 끝없이 나오는 반찬의 행렬. SUV 동생 차 트렁크에 테트리스 하듯 쌓아왔다. 그러고선 손가락 아프다고 아무것도 하기 싫단다(제발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겠다는 선언이 무색하게 엄마는 시장에 가서 오징어 사 와서 볶고 수육을 하고 또 일을 한다. 고창에 있던 4박 5일 동안 엄마가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한 건 딱 한 끼였다.

"지은아, 나 손가락이 너무 아퍼. 의성이네 애들 못 볼 거 같아. 어떻게 하냐."

동생네 7살, 4살 두 아이를 봐주고 있는 71세 엄마가 견디다 견디다 너무 아픈지 전화를 했다. 최근 동생네가 담보 대출로 엄마네 아파트 옆 동에 집을 샀는데 엄마는 애를 봐주느라 너무 아프단다. 동생이랑 잘 얘기해 보라고 했다.

며칠 후 동생네 집들이에 갔더니 해물탕, 잡채, 나물, 간장게장에 각종 밑반찬까지 엄마표로 한정식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나한테 아프다고 우는 소리 한 사람이 이렇게 음식을 해내니 참나...

"식구들 먹이려고 하는 건데 아파도 해야지. 내 새끼 입에 들어가는 건데."

쫌 이상한, 그래서 다정한 사람들
 
책 <쫌 이상한 사람들>
 책 <쫌 이상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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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엄마가 식구들만 먹일까? 김치를 해서 동네 혼자 사는 엄마보다 더 나이 든 어른들에게 나눠주고, 점심으로 국수를 한 냄비 가득 말아서 경비아저씨에게 나눠주는 엄마.

아프다 아프다 하면서 음식을 하는 엄마를 보면 속상하기도 하고 왜 그러나 이상하다. 맛난 거 푸지게 먹이는 거에 자신의 모든 걸 거는 엄마는 쫌 이상한 사람 같다.

책 속표지에 '쫌 이상한 그대에게'라고 쓰여 있는 그림책 <쫌 이상한 사람들>에는 우리 엄마처럼 쫌 이상한 사람들이 나온다.

길을 걷다 작은 개미들의 행렬을 보고 까치발을 드는 사람, 혼자 떨어져 있는 이가 있으면 곧바로 알아채는 근육맨, 자기편이 졌지만 상대편에게 축하박수를 치는 사람, 관객이 없어도 자신들을 위해 연주하는 사람들, 횡단보도에 멈춘 차 안 아이를 웃기려고 메롱하는 대머리 아저씨, 다른 이의 꿈을 볼 줄 아는 사람.

책에서는 이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다정한 사람들이라고도 한다. 이 다정한 사람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한다. 

가만 보면 책에 나온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라 개미의 행렬과 외로운 사람을 알아보는 세심함, 진정한 응원, 우리를 웃게 하는 유머, 자신이 좋아하는 걸 즐길 줄 알고,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속도가 중요한 경쟁 사회에서 이상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남들 가는 길로만 가야 하고, 작은 걸 밟으며 타인의 외로움에 무감각한 사회는 비정상이다. 이상한 사람들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드는 다정한 사람들이다.

노란색과 파란색만으로 그려진 단순한 선으로 표현된 그림은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재미있는 형태로 그려져 있다.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하는 마음과 자기 자신의 열정에 집중하는 마음, 식물과 작은 것을 돌보는 마음을 '이상하다'는 말로 재치있게 그려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교훈처럼 들리지 않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손가락이랑 어깨도 아프고 발바닥이 아파서 서 있기도 힘들지만 다른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나눠 먹는 걸 좋아하는 쫌 이상한 엄마. 알고 보니 다정한 거였다. 엄마의 이상한 면이 조금 더 유지될 수 있도록 조금만 덜 아팠으면 좋겠다.

쫌 이상한 사람들

미겔 탕코 지음, 정혜경 옮김, 문학동네어린이(2017)


태그:#쫌이상한사람들, #다정한엄마, #손큰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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