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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홍빛 꽃무릇을 보러 왔다가 나무의자에 앉아서 잠시 쉬고 있는 연인. 지난 9월 22일 영광 불갑사 풍경이다.
 선홍빛 꽃무릇을 보러 왔다가 나무의자에 앉아서 잠시 쉬고 있는 연인. 지난 9월 22일 영광 불갑사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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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들녘은 누렇게, 산과 들은 선홍빛으로 물들고 있다. 이맘때 형형색색의 단풍보다도 먼저 찾아오는 정열의 꽃이 있다. 꽃무릇이다. 기다란 연초록의 꽃대 위에 왕관처럼 붉은 꽃으로 피어나는 꽃이다.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다. 꽃과 잎이 영원히 만날 수 없다. 꽃과 잎이 서로 그리워한다는 애절한 사연을 지니고 있는 꽃이다. 꽃무릇과 흡사한 게 상사화다. 꽃무릇과 상사화는 언뜻 같아 보인다. 하지만 다른 꽃이다.

둘 다 잎이 없는 상태에서 꽃대 위에 꽃을 피우는 건 같다. 상사화는 봄에 잎이 돋아나고, 여름에 꽃대를 올려 꽃을 피운다. 꽃 색깔이 연분홍색, 노랑색이 많다. 꽃무릇은 가을에 꽃이 잎보다 먼저 피어난다. 색깔은 아주 붉은 선홍빛이다. 꽃이 피는 때와 방식, 색깔이 완전 다르다.

꽃의 모양과 색깔에 따라 이름도 달리한다. 상사화, 붉노랑상사화, 진노랑상사화, 위도상사화, 백양꽃, 꽃무릇(석산) 등이 그것이다. 백양꽃은 장성 백양사에서 처음 발견됐다. 위도상사화는 부안 위도에서 발견됐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꽃무릇 
 
 스님의 무덤인 부도와 어우러진 선홍빛 꽃무릇. 영광 불갑사 부도밭 풍경이다.
 스님의 무덤인 부도와 어우러진 선홍빛 꽃무릇. 영광 불갑사 부도밭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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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갑저수지에 반영돼 비치는 선홍빛 꽃무릇. 예년과 달리 오가는 등산객이 많지 않다.
 불갑저수지에 반영돼 비치는 선홍빛 꽃무릇. 예년과 달리 오가는 등산객이 많지 않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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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은 절집에 많이 핀다.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 고창 선운사 등지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다. 꽃의 생김새가 너무 강렬하고, 색깔도 선홍빛이어서 절집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다. 전해지는 이야기도 애틋하다.

옛날에 젊은 스님이 절집을 찾은 아리따운 처녀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 처녀를 마음에 품은 스님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한 채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그 스님의 무덤가에 피어난 꽃이라는 얘기다. 반대로, 출가한 스님을 그리던 처녀의 혼이 붉게 타오른 것이란 이야기도 있다.

꽃말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참사랑'도 꽃말로 지니고 있다.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꽃을 보면 가슴이 아련해지는 이유다.

하지만 꽃무릇이 절집에서 군락을 이룬 것은 꽃의 알뿌리가 머금고 있는 독성에 이유가 있다고 전해진다. 독성이 있는 알뿌리를 찧어서 절집을 단장하는 단청이나 탱화의 재료로 썼다고 한다. 알뿌리에 들어 있는 방부제 성분 덕에 좀이 슬지 않았다고 한다.
 
 저수지에 반영돼 비치는 꽃무릇 풍경. 함평 용천사로 가는 길목이다.
 저수지에 반영돼 비치는 꽃무릇 풍경. 함평 용천사로 가는 길목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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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교마을 숲에 피어난 꽃무릇. 고목 사이로 놓인 나무데크를 따라 꽃무릇이 줄지어 피어있다.
 향교마을 숲에 피어난 꽃무릇. 고목 사이로 놓인 나무데크를 따라 꽃무릇이 줄지어 피어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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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이 흐드러지고 있다. 하지만 군락지를 품은 지자체는 방문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 당초 계획했던 축제도 취소했다. 코로나19 탓이다. 요즘엔 군락지를 찾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농촌마을에 한적하게 핀 꽃무릇도 있다. 함평 향교마을은 오래 된 숲길에 꽃무릇이 줄지어 피어 있다.

함평 향교마을은 전라남도 함평군 대동면 향교리를 일컫는다. 함평향교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팽나무와 개서어나무, 느티나무 고목 수십 그루가 줄을 맞춰 서 있다. 아름드리 곰솔도 있다. 지지대에 기대 비스듬히 누워 있는,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곰솔이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두 예사롭지 않다. 수령 300년이 넘은 노거수들이다. 이 숲 가운데에 데크 길이 놓여 있다. 데크를 따라 꽃무릇이 양쪽으로 줄지어 피어 있다. 흡사 빨강 융단이라도 깔아놓은 것 같다. 숲길에서 만나는 레드카펫이다.

노거수의 시원한 그늘, 마을주민의 사랑방
  
 함평 향교마을 숲의 노거수들. 한눈에 봐도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함평 향교마을 숲의 노거수들. 한눈에 봐도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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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모차를 앞세운 마을어르신이 향교마을 숲을 지나 들로 향하고 있다. 지난 9월 22일이다.
 유모차를 앞세운 마을어르신이 향교마을 숲을 지나 들로 향하고 있다. 지난 9월 22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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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이 노거수와 어우러져서 더욱 멋스럽다. 숲의 면적이 3만7000㎡에 이른다. 산림청과 민간단체가 함께 주최하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받았던 숲이다. 숲의 경관도, 보전상태도 좋다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숲은 마을주민들의 쉼터이고, 사랑방이다. 평소 농사일로 고단한 주민들이 잠시 쉬는 곳이다. 동네 어린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오래 전엔 마을에 사는 총각과 처녀들의 데이트 장소였다. 마을사람은 물론 길을 가다 들르는 외지인들까지도 다 보듬어주는 숲이다.

향교마을 숲은 함평향교와도 뗄 수 없는 인연으로 엮인다. 400여 년 전이다. 당시 함평향교는 함평읍 내교리에 있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불에 타고, 명맥만 유지해 왔다. 1631년 지금의 자리, 대동면 향교리에 다시 세웠다.
  
 향교마을 숲은 마을어르신들의 쉼터다. 지난 9월 22일 점심 식사를 한 어르신들이 숲에 나와 쉬고 있다.
 향교마을 숲은 마을어르신들의 쉼터다. 지난 9월 22일 점심 식사를 한 어르신들이 숲에 나와 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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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목헌 함평향교 사무국장이 향교를 지키는 은행나무를 두 손으로 펼쳐보고 있다. 수령 450년 된 은행나무다.
 이목헌 함평향교 사무국장이 향교를 지키는 은행나무를 두 손으로 펼쳐보고 있다. 수령 450년 된 은행나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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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 수산봉의 화기가 여기까지 뻗쳐왔다. 너른 들녘을 타고 오는 불의 기운을 막아줄 공간이 필요했다. 마을에 닥치는 액운도 막아야 했다. 멀지 않은 서해의 바닷바람도 막아야 했다. 마을 앞에 나무를 많이 심었다. 옛 향교의 나무도 옮겨왔다. 비보림이고 방풍림이다.

함평향교도 고즈넉하다. 향교는 지방에 설립한 교육기관을 가리킨다. 함평향교는 배향공간인 대성전을 앞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뒤에 두고 있다. 전묘후학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향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나무, 은행나무도 우람하다. 수령 450년이 됐다.

운이 좋으면, 철학자이자 인문학자로 이름난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도 만날 수 있다. '생각의 노예가 아닌, 생각의 주인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이다. 그러려면 철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 교수가 이 마을에 살고 있다. 정유재란 때 의병으로 활약한 이덕일 의병장도 이 마을 출신이다. 마을도, 사람도, 숲도 귀하고 아름다운 향교마을이다. 
 
 수령 450년의 은행나무 고목과 어우러진 함평향교 전경. 향교가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수령 450년의 은행나무 고목과 어우러진 함평향교 전경. 향교가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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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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