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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0일, 온라인 생중계로 2020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가 열렸습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나를 돌보며 주변을 함께 돌아보는 방법, 코로나 시대의 관계 맺기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상생과 돌봄을 말하는 5명의 강의를 연속 기고를 통해 소개합니다.

이 기사를 작성한 '이을'은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입니다. 페미니즘으로 노동의 문제를 재해석하고 노동권의 관점으로 성차별 문제를 재조명하는 '성평등 노동' 운동을 하는 활동가. 모든 이가 어디에서든, 존중받고 성평등하게 일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기자말]
코로나19 속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재난의 시기에 여성의 노동하는 모습에서 천착하여 진단하고 성찰하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이야기 말이다. 바이러스는 평등하다는 누구의 말처럼 모두가 다 힘들고 아프고 어려운 시기, 왜 여성에게, 특히 여성의 노동에 주목해야 한다고 하는가?  

코로나 경제 빙하기

먼저 코로나 감염병이 몰고 온 재난위기가 우리 사회의 민낯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겠다. 지난 4월 한 신문에서 "코로나 경제 빙하기 이제 서막일 뿐, 2분기 이후가 더 두렵다"라는 기사 제목을 보았다. 그렇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올해 2월 이후의 모든 경제지표, 노동지표가 이 기사 제목이 진짜임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 사무실이 위치한 홍대 주변만 해도 상권의 변화가 엄청나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고 오랫동안 영업을 하던 가게가 문 닫는 것을 계속 목격하고 있다. 한류 열풍으로 최근 몇 년간 홍대 근처에 높게 올라간 호텔 건물 로비가 코로나로 인해 휑해진 것을 보았다.

학교와 보육기관, 돌봄 기관들도 문을 닫았고, 일반 회사 사무실에도 불이 꺼지고, 사업전망이 불투명해 폐업을 하는 경우가 지금 이 시간에도 발생하고 있다. 실직자가 크게 늘어나고, (재)취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그야말로 불황 중 불황이다. 사실, 이 위기 속에 가장 먼저 실직되는 업종/고용형태에 위치하고 있는 이들은 여성노동자이다. 취업률, 고용률, 비경제활동인구수 등 여러 국가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장(일터)이 멈췄다

이는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전세계적 상황이다. OECD에 따르면 미국발 경제위기가 있던 2009년 이래 현재 세계경제가 가장 느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중국이 생산을 멈췄으며, 전세계적으로 소비가 줄었다고 보고된다. 코로나로 '공장'이 멈췄다는 제 이야기 제목은 은유가 아니다.

인도 북부 펀자브 지역은 히말라야와는 160km의 거리이다. 서울에서 대전 정도의 멀리 떨어진 히말라야가 코로나 때문에 국가 봉쇄령이 내려지고 주변 공장들이 멈추며 스모그가 사라지자 30년 만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안보이던 히말라야가 보일 정도로 전세계가 마비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도 결코 멈출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돌봄'이다. 일터들이 잠시 셔터를 내리고 심지어 어린아이를 돌보는 기관과 학교 그리고 노인이나 장애인을 돌보는 시설이 폐쇄되었을 때에도, '돌봄' 그 자체는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모든 일터가 문을 닫을 때에라도 지금과 같은 역병이 창궐하는 시기에 보건의료계에서 환자를 '돌보는' 노동자들은 그 노동의 손길을 쉬지 않았다. 모든 것을 멈출 수밖에 없는 시기에도 인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전선에 돌봄 노동이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기획기사 시리즈 "해고/돌봄 0순위, 재난 속 여성노동자"의 제목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기획기사 시리즈 "해고/돌봄 0순위, 재난 속 여성노동자"의 제목
ⓒ 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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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다. 전국 11개 여성노동자회 지역지부의 활동가들이 지난 5월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인터뷰 기사에는 이 시국에도 멈출 수 없었던 '돌봄노동'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집단감염 시국에도 연고 없는 노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돌보았던 복지시설의 요양보호사, 학교의 공식적인 수업이 멈추었지만 일하는 부모들을 위해 아이들을 도맡았던 돌봄교실의 돌봄전담사들, 혹시라도 반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봐 철저하게 절제된 생활을 하며 일하던 보육교사들.

무엇보다 갑작스레 재택근무를 하는 성인가족들과 모든 교육/공적 돌봄시설들이 쉬게 되면서 온전히 가정 안에 거해야만 하는 노인/미성년/장애인 가족들의 삼시 세 끼를 챙기고 집안의 온갖 가사를 도맡다시피 해야 했던 주부들. 이 외에도 미처 다루지 못한 수많은 돌봄노동자들이 있다. 세상 전체가 코로나로 멈춘 듯했지만, 오히려 코로나 때문에 더 바삐 돌아가는 다른 세상이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를 주로 여성이 전담하고 있었다.

'덕분에'만 있고, 돌봄 가치에 대한 재고는 없다

공장이 멈춰도 인간의 삶을 멈출 수는 없기에 재난 시기에도 돌봄은 절대 멈추지 말기를 사회적으로 요구받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 돌봄 노동의 필수 불가결함을 얼마나 인정하고 대우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최전선에 있는 간호사들을 '덕분에'라고 치켜세우지만 이들이 만성적으로 호소해 온 인력 부족 상태와 처우 개선은 해결할 생각이 없다.

정부가 책정하는 복지수가로 결정되는 노인 요양보호사나 장애활동지원사들의 임금은 사실상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 돌봄교실을 맡은 돌봄전담사들은 단시간(시간제) 비정규직이다. 가족을 돌보고 가사를 일구는 노동은 여성들이 전담하는 무급 봉사로 여겨지기에, 여성들은 취업을 하거나 일자리를 유지할 때 불이익을 감수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이번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발표된 정부의 재난지원/경기부양책에서도 돌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정부가 안정기금을 지원하는 7대 기간산업으로 항공/해운/자동차/조선/기계/전력/통신 산업만을 뽑았고, 경기부양-일자리 정책으로 내건 한국판 뉴딜 정책에는 디지털/그린 뉴딜만이 있다. 모든 것이 멈춰도 돌봄은 멈추지 못할 정도로 필수적이건만, 왜 그 노동을 하는 여성들의 근로조건은 나아질 바를 모르며, 국가의 필수산업의 카테고리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며, 돌봄산업 일자리의 확충에는 왜 예산을 투여하지 않는 것일까?

어느 때 보다 돌봄의 가치가 부상하는 이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돌봄은 그저 여성들끼리 알아서(무급으로 값싸게) 하면 되는, 중요하지도 시급하지도 않은 취급을 받고 있다.

인간에게 정말 필수인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 사회의 근간인가? 무엇이 우리에게 필수적인가? 코로나로부터 우리는 그것을 배워야 한다. 캐나다가 코로나19 와중에도 근무를 계속하며 핵심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간호사, 요양보조사, 사회복지사 같은 이들을 '필수 노동자(essential worker)'로 규정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지원으로 그들의 임금을 인상하기로 했다는 기사에서 힌트를 얻는다.

그린뉴딜이랍시고 전기자동차를 더 생산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기업 배나 불려주는데 목적이 있는 그런 정책은 코로나 재난 같은 위기로부터 우리를 근본적으로 구원할 수 없다. 바이러스 확산으로 시작된 이 재난위기는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망쳐온 세계의 한계를 극명히 확인하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공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본주의는 공장 안에서는 일할 수 없고, 다만 공장이 잘 돌아갈 수 있게 밥과 쉼을 제공하는 역할로 여성을 제한하며 증식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지구환경을 망치며 지금까지 폭주하는 동안 여성들이 담지해 온 돌봄의 가치는 그렇게 철저히 무대에서 배제되었다. 하지만 돌봄 노동이 없다면 공장이 재가동되는 것은 물론이고, 인류의 유지 자체가 불가능하다. 긴 시간 여성에게만 주어진 '돌봄' 그래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돌봄 노동의 가치가 코로나 위기 극복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이 자리 있는 분들과 이러한 가치를 공유하며 나와 타인을 충분히 돌보며 일하고 삶을 영위할 수 있고, 누군가를 착취하며 돌봄 받지 않아도 되는 그런 포스트 코로나를 꿈꾸고 싶다.

태그:#여성환경연대, #한국여성노동자회, #여성노동, #코로나, #긴급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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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창립한 여성환경연대는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모든 생명이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녹색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생태적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환경단체 입니다. 환경 파괴가 여성의 몸과 삶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여 여성건강운동, 대안생활운동, 교육운동, 풀뿌리운동 등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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