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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석에듀시어터 전경
 청석에듀시어터 전경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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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도 이런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경기도 광주에 있는 '청석에듀씨어터'. 5년 전인 지난 2015년 이 곳에 처음 발을 들였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광주 청소년 공연전문가 꿈의학교'의 이모저모를 살피기 위한 발걸음 이었다. [관련 기사 : 학교 탈출 교사부부 전 재산 털어 극단 차린 이유]

지난 8월 5일 이곳을 다시 찾았다. 5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는데도 그 첫 느낌 그대로가 다시 전해졌다.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자리한 하얀 건물. 멀리서 보면 중세 유럽의 성 같아서 우러러 뵈지만, 가까이서 보면 오래된 전원주택 같아 친근하다 못해 만만하기까지 한. 경안천을 향하고 있는 건물 앞쪽은 탁 트여 있어 시원했고 뒤편은 산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어 고즈넉했다.

건물에 발을 들이면 '수수한 멋'이 있는 카페 '떼아뜨르'를 만날 수 있다. 커피향이 무척 자극적이다. 한 잔 마시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강한 향기라, 난 4년 전 방문 목적을 뒤로하고 지나가다 들른 길손인 척 커피를 마시며 탁 트인 풍경을 즐겼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카페 떼아뜨르가 아니다. 배산임수라는 '명당' 조건을 갖춘 유럽풍의 멋진 건물도 아니다. 이 멋진 공간이 오롯이 연극과 뮤지컬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 내 마음을 파고 들어 부러움을 느끼게 했다.

배우, 그리고 배우를 꿈꾸는 이들이 마음껏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연습실과 공연장이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의상 등의 소품 제작실까지 갖추고 있다. 이 완벽한 공간에서 학생들이 꿈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내 속을 파고 들어 '우리 마을에도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운 마음을 갖게 했다.

연극 1번지 서울 대학로가 아닌 지방에 있는 작은 도시에 이 정도 규모를 갖춘 극단이 있다는 것은 무척 특별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청석에듀씨어터는 꿈의학교를 운영할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극단이라 강사도 충분했다. 현역배우 20여 명이 학생들의 선생님과 형(누나, 언니)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여기에 '마을교육'에 대한 의지로 똘똘 뭉친 이기복 교장 부부가 있어 무척 든든했다.

부부는 전직 교사다. 이기복 교장은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부인 우은희씨는 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이 부부는 정년도 되기 전에 과감하게 학교 밖으로 나와, 지난 2012년 전 재산을 털고 은행대출까지 얻어 광주에 청석에듀씨어터를 세웠다.

연극으로 행복한 마을을 만드는 게 목표 
 
광주 청소년공연전문가 꿈의학교 이기복 교장 부부
 광주 청소년공연전문가 꿈의학교 이기복 교장 부부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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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행복한 마을을 만드는 게 목표인데, 아이들을 교육하는 게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은 금세 커서 어른이 되니까요. 그러기 위해 아이들이 맘껏 뛰어 놀 예술 공간이 필요했는데, 허접스러운 공간은 싫었어요. 제대로 된 공간에서 최고의 강사진을 꾸려 수준 높은 교육을 해서 아이들을 최고로 만들고 싶었어요."

당시 이기복 교장 설명이다. 이 정도면 '마을교육을 하려는 의지로 똘똘 뭉쳤다'는 표현이 과하지는 않을 것이리라.

5년 만에 다시 이 학교를 찾은 것은 꿈의학교 6년이 남긴 결과물을 찾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청석에듀씨어터는 5년 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원하는 대로의 삶을 살아서 일까? 이기복 교장 부부 모습에서도 세월을 느낄 수 없었다. 카페 떼아뜨르 커피향도 예전 그대로였다. 변한 게 있다면 코로나19 여파로 손님들이 모두 마스크를 쓴 채 카페에 들어선다는 것뿐이었다.

5년 간 '청소년공연전문가 꿈의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150여 명이다. 그 중 60여 명이 연극영화나 뮤지컬을 대학 전공으로 선택했으니, 이것만으로도 큰 성과라 할만 했다. 60여 명이 자신의 진로를 찾았거나, 막연했던 진로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기복 교장은 이런 눈에 띄는 것을 최고의 성과로 꼽지 않았다. 꼬치꼬치 캐묻는 내 집요함에 못 이겨 마지못해 한 대답이었다. 이 보다는 청소년을 미래의 마을 사람으로 키운다는 '꿈의학교 정신'을 실현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청소년을 미래의 마을 청년으로, 이것이 꿈의학교가 우리 교육에 던진 가장 의미 있는 메시지입니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고향을 떠나게 하는 교육이었어요. 신분상승을 할 길은 교육 밖에 없다며,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 가서 빨리 고향을 떠나라고 했잖아요.

꿈의학교 6년. 학생과 학부모가 지역을 바라보게 됐어요. 마을에서, 마을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꿈의학교 덕분이죠. 이럴 때 좀 더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 졌으면 좋겠어요.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환경도 발전시켜야 좀 더 행복한 마을을 만들 수 있거든요. 서울이 아닌 '경기도 광주에 살아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면 청소년들이 고향을 떠날 이유가 없잖아요. 광주에서 결혼하고 애 낳고, 광주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겠죠."


그는 마을사람이 만들어 운영하는 꿈의학교가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을 변화시킨 것도 의미 있는 성과라고 말했다. 시니어에게 주니어를 키울 기회를 준 점도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게 이기복 교장 설명이다.

청소년을 미래의 마을 청년으로, 꿈의학교가 던지 중요한 메시지   
 
'뱅뱅뱅' 춤을 추고 있는 장면.
 "뱅뱅뱅" 춤을 추고 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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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사람들에게 교육자가 될 길을 열어 줬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가르치는 입장이 되면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질 수밖에 없거든요. 학생들이 바라보고 있으니 말도 조심해야 하고, 어떻게 가르칠까 생각도 해야 하고. 우리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도 갖게 되죠. (그래서) 꿈의학교 선생님들도 정말 많이 변했어요. 한마디로 마을사람들 수준을 한 단계 높여 놓은 거죠.

또 시니어에게 주니어를 키울 기회를 줬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아이들은 아빠, 엄마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더 잘 키웁니다. 아빠, 엄마는 우선 자식을 키워본 경험이 없잖아요. 자기도 어리기 때문에 감정싸움도 하게 되고요.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는 달라요. 능숙하죠. 마을에는 교육 능력과 경제력까지 갖춘 시니어가 많아요. 그런 시니어들 능력을 인정해 주고 행정 지원도 해주고 적잖은 돈까지 주었으니, 이것만 봐도 꿈의학교는 교육에 있어 아주 혁명적인 발상인 거죠."


또한 공교육을 하는 일반 학교가 꿈의학교 영향으로 변화한 점도 이 교장이 보기에는 무척 의미 있는 일이었다.

"처음 꿈의학교를 할 때는 공교육 선생님들이 손가락질 많이 했어요. 마을에 있는 학교를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죠. 지금은 선생님들이 직접 전화해서 '이 아이 꿈의학교와 잘 맞을 것 같으니 받아 달라'고 전화를 할 정도로 인식이 좋아졌어요. 자유롭고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강조하는 꿈의학교 영향을 받아 일반 학교 교사와 학생 관계도 수평적으로 변했고요.

저는 모든 학생이 꿈의학교를 했으면 좋겠어요. 학교에서 하루 종일 공부한 뒤에 학원가서 공부를 또 하는 거, 이게 말이 안 돼요.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했으면 꿈의학교에 와서 1시간 춤(운동 등)을, 이렇게 돼야죠."


(*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태그:#꿈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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