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020시즌 V리그 여자배구 경기 모습

2019-2020시즌 V리그 여자배구 경기 모습 ⓒ 박진철 기자

 
프로배구 경기 시간 변경 문제가 배구계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난 25일 한국배구연맹(KOVO) 사무실에는 남녀 프로배구 13개 구단 사무국장들이 모였다. 2020-2021시즌 V리그 경기 시간 변경 문제에 대해 의견을 모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 주제는 V리그 중계 방송사 측에서 KOVO에 제안한 내용이었다. 11월 초까지 프로야구 정규리그가 계속 되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V리그 평일 경기 시간을 남녀 모두 오후 3시 30분으로, 주말 경기는 오후 7시로 변경해야 생중계가 가능하다는 점, 그렇지 않고 기존 경기 시간(평일 오후 7시, 주말 오후 2~4시)으로 V리그를 진행할 경우 녹화 중계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프로배구 구단들은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문제는 어느 것을 선택해도 구단, 선수, 팬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 프로구단 관계자는 27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선수들은 비시즌 동안 V리그 경기 시간에 맞춰 몸을 만들고 컨디션 관리를 한다. 개막을 앞두고 갑자기 경기 시간이 바뀌거나 들쑥날쑥하면 경기 리듬과 감각 유지에 좋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가장 큰 피해자는 팬들이다. 직장과 학교 때문에 경기를 시청할 수 없는 취약 시간대로 변경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구단들도 불편하고 답답한 상황이지만, 이날 회의에서는 그래도 생중계가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KOVO는 방송사 측과 경기 시간 변경 문제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프로야구 정규리그 95% 이상 중계' 의무 조항... 프로배구 직격탄
 
 프로배구 중계 카메라

프로배구 중계 카메라 ⓒ 박진철 기자

 
현재 V리그의 독점 중계권은 스포츠 전문 채널인 KBSN SPORTS가 갖고 있다. 그리고 중계권을 SBS Sports에 재판매를 하면서 두 방송사가 함께 V리그 중계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두 방송사는 프로야구 중계도 병행하고 있다. 결국 프로야구, 남자 프로배구, 여자 프로배구가 평일 오후 7시 동시에 경기를 치를 경우, 두 방송사는 프로야구 생중계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지상파 3사(KBS·SBS·MBC)와 체결한 TV 중계권 계약에 포함된 '프로야구 정규리그 경기의 95% 이상 중계 의무 편성' 조항 때문이다.

KBO는 지난 2월 3일 지상파 3사와 2020~2023년까지 4년간 2160억 원(매년 540억 원)에 TV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지상파 방송사는 자사 스포츠 전문 채널에 중계권을 재판매하면서 대부분의 프로야구 중계를 소화하고 있다. 시청률 하락세 등 중계권료 삭감 우려가 있었음에도 예상을 깨고 더 큰 규모의 계약을 이끌어낸 것이다.

또한 '정규리그 경기 95% 이상과 포스트시즌 전 경기 중계 의무 편성, 시범경기 중계' 조항까지 관철시켰다. 

바로 이 계약 조건 때문에 프로배구 중계 방송사인 KBSN SPORTS와 SBS Sports는 프로야구와 경기 시간이 겹치는 경우가 많으면, 프로배구 상당수를 생중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KBO, 광고주들과 계약 위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처럼 프로야구의 경기가 연기될 경우 문제는 심각하다. 프로야구는 올 여름 장마·태풍의 영향으로 연기된 경기가 속출했고 11월 초까지 정규리그 경기를 치러야 한다. 그런데 프로배구 V리그는 10월 17일에 개막한다. 많은 경기가 프로야구 정규리그와 겹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은 지상파에서 생중계하기 때문에 프로배구 중계와 충돌하지 않는다.

새 중계권 계약 '안전 장치' 중요

V리그 주관 방송사의 핵심 관계자는 28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KOVO에 경기 시간 변경을 제안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크게 2가지 측면이 고려됐다. 하나는 프로야구와 정규리그 경기 95% 이상 의무 중계 계약 문제가 있고, 다른 하나는 지금은 프로야구가 순위 결정과 마무리 시점이기 때문에 프로야구 중계에 비중을 두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며 "반대로 봄에는 프로배구 포스트시즌 중에 프로야구가 개막한다. 그때는 프로배구 중계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계자는 "물론 시청자와 팬들에게 100% 만족을 못 드린 부분은 있지만 저희 나름대로 시청자와 팬들 중심으로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을 한 제안"이라고 덧붙였다.
 
 2019-2020시즌 V리그 남자배구 경기 모습

2019-2020시즌 V리그 남자배구 경기 모습 ⓒ 박진철 기자

 
정작 큰 문제는 앞으로다. 지금 같은 방송 계약 조건이 계속 되는 한, 프로배구의 경기 시간 변경 피해는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프로야구와 프로배구 일정이 겹치는 건 피할 수 없는 상수다. 프로야구 개막이 3월로 앞당겨지고, 정규리그 일정도 뒤로 늘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최근 프로배구 일각에선 선수단 정원을 늘리고 주전 선수 혹사를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한 뒤, V리그 경기 수를 늘리는 방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 현재 V리그 TV 중계권 계약이 올 시즌을 끝으로 종료된다. KOVO는 내년 시즌인 2021-2022시즌부터 V리그 중계를 담당할 방송사를 정해 새롭게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기존 중계 방송사를 포함해 V리그에 관심이 있는 방송사들은 올해 안에 KOVO와 협상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KOVO의 행보가 주목될 수밖에 없다. 한 프로배구 구단 관계자는 "프로배구 구단들 입장에서는 경기 시간 변경 없는 '안정적인 생중계 보장 장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프로배구 구단 관계자는 "KOVO가 여러 방송사와 협상을 해서 가장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프로배구도 이제는 다른 프로 리그와 같은 시간대에 당당히 경쟁을 해야 하고 자생력을 더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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