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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은 코로나 재확산 이후 맞는 명절입니다. 겪어보지 못한 재난 앞에, 명절을 맞는 자세도 이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추석이라면 으레 지내던 차례, 가족과의 단란한 모임...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못 하거나 안 하는 게 많아진 이번 명절은 어떤 모습일까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추석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와 내가 먼저 "이번 명절은 어떻게 할까?" 물었다.
 추석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와 내가 먼저 "이번 명절은 어떻게 할까?" 물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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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며느리 생일이었다. 요즘 때가 때이니만큼 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키고, 조촐한 생일 파티를 했다. 추석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와 내가 먼저 "이번 명절은 어떻게 할까?" 물었다. 몇 달 전부터 허리디스크가 심했다. 명절 음식을 하고 나면 분명 허리가 더 아플 테고, 애들한테 이젠 앓는 소리도 하기 싫다.

또 예전처럼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음식을 하고, 싸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기회에 명절 문화를 조금 더 바꾸리라 생각했고, 이왕이면 모두 모였을 때 말하고 싶었다.

"며늘아, 이번 추석에는 친정부터 갔다 오렴."
"네?"
"친정부터 갔다 오라고."
"정말요? 네~."


며느리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각자 맛있는 거 싸오면 얼마나 즐겁게요?

사실 우리 집은 지난해 추석 명절 때부터 한 곳에 모여 미리 음식 준비를 하지 않고, 각자 집에서 나누어 해온 경험이 있다. 그랬기에 가족이 모두 모였지만, 주방에 가서 일하는 시간보다 거실에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두 번 지내보니 이 방법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고, 아이들 반응도 좋았다. 이날 며느리에게 '친정부터 갔다 오라'는 내 이야길 듣던 아들이 먼저 그런다.

"엄마 이번 명절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우리가 다 준비할게요."

듣던 중 반갑고 고마운 소리다. 사실 딸과 아들 모두 5분~10분 걸리는,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다. 며느리의 친정도 15분 정도 거리다. 멀리 살면 아예 오지 말라고 할 텐데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거리라 오지 말라고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들이 "우린 생선회, 매운탕, 불족발 준비할게요. 회 뜨고 나면 매운탕 거리도 다 준비해주니까요"라고 말하니, 딸 아이는 "그럼 우린 고기 종류를 준비 할게"라고 화답한다. "그럼 엄마는 나물 종류하고 전을 조금 부칠까?" 하니, 옆에서 남편이 "그래도 명절인데 아이들 좋아하는 갈비는 좀 해야지" 한 마디 한다.

아빠 말을 듣고 있던 애들이 입 모아 말한다. "그렇게 되면 또 이것저것 하게 되니깐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아니, 밥만 하세요" 한다. 며느리도 기분이 좋은지 "어머니 전도 사요. OO마트 가면 전도 그다지 비싸지 않아요"라고 덧붙이기에, "전은 그리 힘들지 않으니, 그 정도는 괜찮다"고 말했다.

이렇게 이번 명절은 '포틀럭 파티'(Potluck Party, 참석자들이 각자 음식을 가져와 서로 나눠 먹는 파티)처럼 보내기로 했다. 
 
 이렇게 이번 명절은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 참석자들이 각자 음식을 가져와 서로 나눠 먹는 파티)처럼 보내기로 했다.?
 이렇게 이번 명절은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 참석자들이 각자 음식을 가져와 서로 나눠 먹는 파티)처럼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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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부터 오는 딸, 이상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친정부터 갔다 오라'는 말에 며느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오래 전 딸아이가 명절에 우리 집부터 왔던 기억이 난다. 17년 전쯤이다. 결혼해서 2~3년 후였을 것이다. 사위와 의논해서 한 번은 친정, 한 번은 시집부터 번갈아 먼저 가기로 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그런 문화가 익숙지 않을 때라, 우리 집부터 온 아이들이 반가우면서도 혹시 사돈이 섭섭해 하지나 않을까? 딸아이가 괜찮을까? 싶어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어머나 세상에 이런 일도 있네. 너희들이 우리 집 먼저 오니까 이상하다"고 말하면서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아직 그런 문화가 낯설고 어색했던지라, 남편이 "마음은 고맙지만 다음부터는 하던 대로 해라"라고 말하기에 그 한 번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기분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지난해 명절부터 분담해서 음식을 해보니 나도 편하고 한가로웠다. 젊은 사람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되었다. 예전처럼 명절을 보내려면 음식 장만을 위해 시장과 마트에 여러 번 다녀와야 하고, 오랜 시간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명절이 끝나고 난 후에는 몸살 기운이 있어 2~3일은 누워 있는 것이 연례 행사이기도 했다. 가족끼리 일을 조금씩 분담을 하고부터는 몸살이 사라졌다. 특별히 차례를 지내지도 않으니, 앞으로도 가족끼리 부담 없이 만나고 즐겁고 편안한 명절을 보낼 생각이다.

나이 든 부모가 먼저 한발 양보하고 젊은 자식들의 의견을 물으니 좋은 의견이 나오고, 우리가 접하지 못한 명절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명절은 어느 한두 사람의 인내심으로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 모두 의논해서 결정하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듯하다. 대화 말미에 며느리에게 한 마디 더 보탰다. 

"참 며늘아, 친정에 가서 자고 오고 싶으면 자고 와."
"가깝잖아요. 안 자고 와도 괜찮아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하렴."


이래저래 며느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태그:#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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