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망친 여자> 스틸컷

영화 <도망친 여자> 스틸컷 ⓒ (주) 영화제작전원사 , 콘텐츠판다

 
영화 <도망친 여자>는 옆모습투성이다. 관객에게 호기심 반 답답함 반을 안기며 전개되는 블라인드 탐색 같은 연출이다. 그래서 느낀 측면 조명의 관람 팁은 둘이다. 하나는 등장인물들의 개성적 실루엣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거다. 다른 하나는 화장발 같은 가시적 외모보다 어투나 대사 같은 내면심리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상대를 더 잘 알고 싶을 땐 측면 응시도 괜찮겠다.
 
최근 개봉한 <도망친 여자>는 홍상수 감독의 24번째 장편영화다. 대사를 레시피 삼아 만남 속 균열들을 들추는 찰진 솜씨가 여전하다. 매번 봐도 클리셰와 거리 먼 김민희(감희 역)의 표정과 몸짓에 몰입하고 만다. 결혼 후 처음으로 홀로 외출해 세 번의 만남을 가지는 감희가 '도망친 여자'인가 헤아리며. 5년 간 남편과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고, 최근에 제 손으로 머리를 싹둑 잘랐고, 육식을 좋아하게 됐다 등을 단서 삼아.
 
감희의 만남 중 둘은 계획이고, 하나는 우연이다. 그러나 화면 속 감희의 일렁임은 인과율에 다름없어서 우연이란 없다. 전자는 언니라 부르는 영순(서영화 분)과 수영(송선미 분)이고, 후자는 친구였던 우진(김새벽 분)이다. 텃밭을 가꾸며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하려는 영순과 달리 수영은 단골 술집을 드나들며 자기 밖에서 재미를 찾는다. 딴판인 둘과 어우러지는 감희는 자기 양면성에 부대끼다 '도망친 여자'다.
 
그러니까 <도망친 여자>는 완료형이 아니다. 벗어나고파 긴 머리를 끊은 것이고, 그 연장선에 육식이 있다. 흔한 소재와 비유로 일상의 파열음을 가리키는 홍 감독은 디테일에 강하다. 길냥이 밥 문제로 이웃과 불통하는 영순과 원나잇 스탠드 부작용에 시달리는 수영을 공감 부재의 공방에 생생하게 노출시킨다. 잘나가는 남편(권해효 분)의 대중적 위선적 언행이 자꾸 짚여 맘이 멀어지는 우진 캐릭터도 호소력 있다.
  
 영화 <도망친 여자> 스틸컷

영화 <도망친 여자> 스틸컷 ⓒ (주) 영화제작전원사 , 콘텐츠판다

 
이혼을 했든, 분가를 했든, 마음이 멀어지는 중이든 감희는 주변에 도사린 도망친(치는) 마음들을 응시한다. 영화 속 영화 장면에서 끊임없이 일렁이는 바다의 물결들을 바라보듯. 그런 관점에서 감희도 바다 속 물결이다. 어떤 물결도 물결 뭉치인 바다에서 도망칠 곳은 없다. 그러나 거대한 물결이나 다른 물결들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독립적 자세는 도망이 분명하다. 몸은 붙어 있어도 마음은 떨어져 있듯이.
 
머리를 자르거나 고기를 맛있게 씹어 먹으면서 감희는 남편의 물결과 차별화를 꾀했으리라. 그 자발적 타자화는 불협화음이어서 장차 부부 사이를 가를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도망친 여자>는 그런 뇌관에 직면한 여자들을 조명한 셈이다. 그렇다고 여성 중심 영화라고 보고 싶지 않다. 바닷물결을 통째로 보면, 남녀 편 가르기는 의미 없다. 육식이나 채식으로 식성이 변하는 건 남성에게도 일어나니까.
 
블라인드 탐색의 지향은 도망친 섬(독립적 물결)일망정 연륙교 삼을 관계를 일구어 공존하는 거다. 발품을 팔아 만남을 이어가는 감희는 그런 통찰로 향하고 있다. 영순에게, 수영에게, 그리고 우진에게 말 거는 행위는 소위 확증 편향이나 답정너와는 거리 먼 열린 인식이니까. <도망친 여자>는 감희의 동선을 통해 끊임없이 일렁이면서도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물결 같은 존재가 나(우리)임을 넌지시 일깨운다.
덧붙이는 글 https://brunch.co.kr/@newcritic21/48
도망친 여자 홍상수 김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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