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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건국시조 박혁거세는 기원전 57년에 즉위했다. 고구려 주몽은 박혁거세보다 20년 늦은 기원전 37년에, 백제 온조는 29년 늦은 기원전 18년에 각각 왕위에 올랐다. 모두 <삼국사기>의 기록이다. 하지만 역사학계의 통설은 고구려, 백제, 신라 순서이다.

<삼국사기>는 김씨의 시조 김알지가 65년(탈해왕 9)에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탈해왕이 월성 아래 계림숲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신하를 보내 알아보니 나뭇가지에 금빛 상자가 걸려 있고, 그 아래에서 흰 닭이 울고 있었다. 상자에는 어린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탈해는 자태와 용모가 매우 뛰어난 아이를 보며 "이 아이는 하늘이 내게 아들로 보내준 것이 틀림없다"고 기뻐했다. 왕은 금(金)빛 상자에서 나온 아이에게 김(金)씨 성을 부여했고, 아이가 나타난 계림을 나라이름으로 삼았다.
 
계림 신라 왕족 김씨의 시조 알지가 출현한 계림의 야경
▲ 계림 신라 왕족 김씨의 시조 알지가 출현한 계림의 야경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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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늘이 탈해왕에게 아들로 보내준' 알지는 임금이 되지 못했다. 김씨가 임금자리에 오른 것은 그로부터 197년이나 뒤인 262년(미추왕 원년)이었다. 이는 알지가 김씨의 시조라는 것, 그가 65년에 태어났다는 것, 탈해왕이 그를 임금 재목으로 생각했다는 것(금빛 상자에 담겨 출현했고, 하늘이 준 아들로 여겼다는 점) 모두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김기흥은 <천년의 왕국 신라>에서 "진흥왕 6년(545) 국사를 편찬할 무렵에도 (신라에서는) 아직 성씨가 사용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진흥왕 본인에게도 아직 성씨가 없었는데 그보다 480년이나 전인 65년(탈해왕 9)에 그의 조상 알지가 김씨를 썼다는 것은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418년(눌지왕 2) 왕의 동생 복호와 미사흔을 구하러 고구려와 왜국에 간 인물이 <삼국사기>에는 박제상, <삼국유사>에는 김제상으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 것도 그러한 판단의 또 다른 근거가 된다.

기원전 인물의 생몰연월일을 과연 알 수 있을까

알지의 출생 시기와 성씨에 관한 의문을 보면, 그보다 훨씬 아득한 옛날인 기원전 사람의 생몰 연월일을 아는 것은 불가능할 듯 여겨진다. 하지만 단테의 <신곡> 탄생에 원류 역할을 한 베르길리우스의 생몰 연월인은 <다음 백과> 등에 기원전 70년 10월 15일과 기원전 19년 9월 21일로 명기되어 있다.

놀라운 일이다. 명확한 근거도 없이 그렇게 밝혀놓지는 않았을 터이고, 무언가 분명한 자료를 토대로 삼았을 것이다. 김부식이 '왕의 명령을 받아(命老臣, 삼국의 역사에 관한 기록을) 모아서 책을 만든다(俾之編集)'고 하였듯이, 베르길리우스의 생몰 연월일을 적어놓은 어떤 고문서를 참조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다만 이 글이 그 원전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지는 않으므로 본래의 집필 방향에 맞추어 어눌한 문장을 이어갈까 한다.

그리스 궁벽한 황무지가 서양인의 이상향으로 부각되었다

베르길리우스는 미완의 대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s)를 통해 서양문학에 큰 발자취를 남긴 대문호이지만, 필자는 그가 인류의 자연회귀 사상에 미친 영향에 주목 한다. 그는 <아이네이스>에서 아르카디아(Arcadia)를 낙원으로 제시했다. 그 후 아르카디아는 2000년에 걸쳐 서양인들이 꿈에도 가고 싶어한 이상향이 되었다.
 
 터키에서 바라본 그리스의 풍경. 아르카디아는 그리스 중에서도 황폐한 땅이었는데 베르길리우스가 문학을 통해 서양의 이상향으로 창조했다.
 터키에서 바라본 그리스의 풍경. 아르카디아는 그리스 중에서도 황폐한 땅이었는데 베르길리우스가 문학을 통해 서양의 이상향으로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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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아는 베르길리우스가 상상 속에 만들어낸 '무릉도원' 류의 비현실 공간이 아니다. 아르카디아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쪽 산악에 있는 황량한 실존 지역이다. 그곳은 그리스 신화의 판(pan)이 양떼를 몰고 다니며 피리를 불고 춤을 춘 지리적 무대였다. 이를 베르길리우스가 자신의 대작 <아이네이스>에 차용했고, 그 이후 아르카디아는 일약 서양인들에게 무릉도원으로 각인되었던 것이다.

2,000년 동안 아르카디아는 실존 지역이면서도 상상 속 낙원처럼 여겨졌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양인들이 아르카디아를 방문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고 물산이 풍부해지면서 아르카디아 땅을 실제로 밟아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다. 결국 아르카디아는 황폐한 오지일 뿐 결코 낙원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동양의 이상향은 무릉도원과 이어도

아르카디아와 비슷한 이미지로 동양인의 뇌리에 박힌 곳이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무릉도원과 이어도였다. 아르카디아와 본질적 차이는 그곳들이 실존 현장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르카디아는 지리적으로 까마득한 곳이었지만 무릉도원과 이어도는 정신적으로 아득한 곳이었다. 인간의 이상향은 지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먼 곳'이었던 것이다.

불교에서 '행복이 있는 곳'을 의미하는 극락(Suhamati)은 아미타불의 땅이다. 즉 극락은 사바세계에서는 가늠도 할 수 없는 먼 곳에 있다. 따라서 극락은 현실세계에서 이룰 수 없는 행복 대신 내세의 왕생을 비는 대중에게 적격이었다. 아르카디아가 직접 갈 수 없을 시대에 서양인들의 '극락'이었듯이.

최치원도 시 〈추야우중(秋夜雨中)〉에서 '등불 앞에서도 마음은 만리밖(燈前萬里心)'이라고 읊었다. '자연을 놓아두고 천국을 이야기하다니! 그것은 지구를 모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한탄했던 소로우도 <월든>에서 '자연은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했다. 
 
박목월 생가의 복원된 모습(경주) 박목월은 '청운사 낡은 기와집'이 '머언 곳'에 있다고 했다. 대략,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상향은 '머언 곳'에 있다는 뜻이다.
▲ 박목월 생가의 복원된 모습(경주) 박목월은 "청운사 낡은 기와집"이 "머언 곳"에 있다고 했다. 대략,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상향은 "머언 곳"에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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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도 〈별헤는 밤〉에서 '어릴 때 소학교 동무들이 너무나 멀리 있다'고 했고, 박목월도 〈청노루〉에서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이라고 했다. 모두가 인간의 이상향은 '멀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과 맞지 않으니 이상향을 그리워할 수밖에

인간은 무엇 때문에 '먼 곳'을 그리워하는가? 동양 '귀거래 사상'의 원조 도연명은 〈귀거래사〉 3연에 그 까닭을 아주 간명하게 밝혀 두었다. 그는 '세상과 내가 어긋난다(世與我而相遺)'는 사실을 자각한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간들이 번잡한 세속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갔다. 이를 윤선도는 〈어부사시사〉에서 '멀수록 더욱 좋다. 인간이 아니로다!'라고 했다.

도연명이 자연으로 간 것을 인류는 '귀(歸)'라 한다. '갔다'가 아니라 '돌아갔다'라고 한다. 이는 인간이 본래 자연의 일부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여기서 자연은 고향의 산천은 물론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시간을 보냈던 어머니의 뱃속, 그리고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일 없이 동질성을 유지한 채 함께 어울렸던 어릴적 동무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태고 이래 아득한 세월 동안 자연 속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인류의 역사는 도시 생활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자연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집단 무의식이 되어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세잔이 자신의 고향 엑상프로방스의 바위산을 소재로 수십 점의 〈생트빅투아르 산〉을 그리고, 예이츠가 고향 슬라이고의 호수 섬 질(Gill)을 〈이니스프리 호수〉로 형상화한 것도 그런 회귀의식의 소산이다.

현대인은 왜 전원을 그리워하나

이호우가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고 한 것도 같은 인식이다. 하지만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1970년대 이후 출생자들에게는 원천적으로 그와 같은 향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태어난 곳이 전원이 아닌 까닭이다.

게다가 전통 신분사회에서는 태생 성분이 높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농경 사회였기에 자연으로 회귀해도 계급적·경제적 지위를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를 근본 속성으로 하는 과학시대의 현대인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농어촌에서 유유자적하게 사는 일이 가능하지 않다.

애당초 이상향이란 것은 존재한 바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삭막한 사람들의 세상이 바로 현대사회이다. 현대인의 아르카디아는 기껏 집을 교외에 두고 도시로 출·퇴근하는 수준이다. 그러면서 도로에 자동차가 막히면 짜증을 부려야 하는 지경이 현대인의 자연회귀이다. 하이데거의 지적처럼 '현대인은 고향을 상실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아! 신석기 시대가 그립다.

* 이 글은 정연지 논문 <회귀 개념을 통한 실존적 자아표현 연구>(2020)와 김기흥 저서 <천년의 왕국 신라>(창작과비평, 2002)를 참조해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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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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