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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명절은 결혼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미혼의 명절은 긴 휴가였고, 기혼의 명절은 긴 노동이었다. 희한하게도 며느리라는 명찰을 달고 시댁에 입성하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저자세가 됐다.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함에도 일일이 따질 수가 없었다. 나의 침묵이 기반돼야 화목한 가족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완성됐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불룩' 도드라지기 마련. 성격에도 맞지 않는 며느라기 노릇을 하다 보니 매번 명절이 다가오면 까칠함이 '불룩하게' 튀어나온다. 요즘이 딱 그 시점이다. 

나라에서 "고향 방문 자제해 달라"고 한 이번 추석 
 
 이러면 고민이 필요없을텐데요.... 현실은.... 올해도 어려운 며느라기 입장.
 이러면 고민이 필요없을텐데요.... 현실은.... 올해도 어려운 며느라기 입장.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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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명절 증후군 없이 지나가나 싶었다. 코로나19로 나라에서 먼저 가족 모임을 자제하라고 나서 준 터라, "올 추석엔 오지 말거라" 하는 메시지의 은총이 내게도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다. 남편에게 슬쩍 떠 봤더니 "(시댁에) 한참을 못갔는데 당연히 가는 걸로 아시지"라는 말로 내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한참을 못 간 건 친정도 마찬가지. 어떻게 하나... 고민스러웠다. 시댁은 한 시간 거리지만, 친정은 네 시간 거리. 코로나 이후 거의 지역 이탈을 한 적이 없어 장거리 채비를 하는 것이 영 찜찜했다. 눈치를 보며 시댁의 전화를 기다리던 것과는 달리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이번 추석은 어떡하지?"
"아이고 야야~ 함부러 올 생각일랑 말그래이."
"괜찮겠나?"
"오면 쫒아보낼 끼다. 애들도 있는데 우야든동 조심해라."
"아빠도 괜찮겠나?"
"느그 아빠도 당연하게 안 온다 생각하고 있다. 여는 신경 끄라." 


이것이 바로 친정 플렉스! 친정은 제사가 없고, 평소에도 친척들과 교류가 잦아 명절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 탓이기도 하다. 그래도 엄마가 먼저 저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최근 맘 카페에서도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대다수의 며느리들이 먼저 말은 못 꺼내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다. 오지 말라는 시댁 문자 인증샷은 어떤 명품 인증샷보다 더 많은 부러움의 댓글이 달렸다.

나처럼 아이가 있는 며느리들의 고민은 더했다. 학교도 못 보내고 있는 이 상황에서 다수의 친인척들을 만난다는 게 여간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터. 손주를 보고 싶어 하는 부모님과 안전을 먼저 꾀하고 싶은 며느리 간의 닿을 수 없는 접점이 확연히 드러났다. 특히 코로나 19에 취약한 고령의 부모님을 염려하는 마음 역시 잔꾀로 변질될까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본 어르신 모습이 떠올랐다. 말로는 오지 말라고 했지만 자식들에게 줄 음식을 만들고 차 소리만 나면 대문 쪽을 연신 바라보는 가슴 찡한 모습이었다. 이런 부모 마음을 미천한 자식이 어찌 다 알겠냐마는, 시국이 이러니 안타깝다는 말 외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런 상황에서 진짜 며느리 된 도리는 무엇일까?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 해도 시댁과 며느리와의 관계는 인수분해보다 어렵고, 우주 평행론보다 복잡하다. 특히 나에게 명절 문화는 도무지 풀 수 없는 수학 문제와 같다(문과형 며느리).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조상님에게 왜 성이 다른 여성(시어머니과 나)이 종일 음식을 만들어 상을 차리는지, 왜 친정 가는 시간을 시댁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왜 시댁은 댁이라는 높임말이고 친정은 그냥 친정인지, 왜 며느리의 안부전화가 효의 근간이 되는지... 정말 모르겠어서 해맑게 물어본 적도 있다. 

친정엄마는 "다 그런기다"라고 했고, 시어머니는 "나도 그래 살았다"라고 했고, 남편은 "그냥 우리가 해야 할 도리는 다하자"라고 했다. 

'수포자'는 결혼해서 '시포자'가 됩니다
 
 추석 연휴를 2주가량 앞둔 14일 광주 북구 영락공원묘지에서 효령동 주민이 벌초하고 있다.
 추석 연휴를 2주가량 앞둔 14일 광주 북구 영락공원묘지에서 효령동 주민이 벌초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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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명절 당일에 친정을 못 가는 대신 일찍 집에 가보겠다고 했다가 크게 사달이 난 적이 있었다. 하루 더 있다 가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냐고 호되게 야단을 맞았는데, 나는 정말 의아한 마음이었다. 왜 안 될 일이지? 차례도 지냈고, 시누이도 왔고, 친척도 모두 다녀간 후였는데 말이다. 그때의 그 사건 이후로 명절에 집에 갈 타이밍을 찾는 건 내게 너무나 어려운 눈치 게임이 됐다.  

이 눈치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며느리가 몇이나 될까? 고난도의 눈치 게임에서 이긴다 한들 마음이 편할 수나 있을까? 실은 이길까 질까의 문제가 아니라 이 게임의 룰 자체가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더 중요한 맹점일 것이다.

수(학)포(기)자인 나는 이 문제에서도 '시(댁)포(기)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문제 공식에 대한 설명을 해주지 않고 그저 달달 외우라고만 했기 때문이다. 

지난 명절에 딸이 물었다

"엄마, 왜 맨날 영천 할머니 집은 늦게 가?"
"어...?"
"그리고 차례 지낼 때 왜 오빠만 절 해." 
"아... 그게..."


9살 딸이 보기에도 어리둥절하기만 한 명절의 모습, 나는 전통과 관습을 들어 설명했지만 사실 나조차도 이해되지 않는 문제를 딸에게 이해시키기란 불가능 했다.

"나중에 엄마는 명절을 좀 합리적으로 보내고 싶어." 
"어떻게?"
"모두가 즐거울 수 있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야"


이 때 눈치 없이 끼어드는 남편.

"그래도 우리 종손은~ 와야하지 않을까?"
"끄응....혹시 자기 개명할 생각 없어?"
"뭐? 좋은 이름 있어?"
"고.구.마." 


밤고구마 백 개를 먹은 듯한 올 명절 연휴에 사이다 같은 해결책을 찾기란 상당히 힘든 일이다.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내겐 사이다는 아니지만 시원한 냉수 정도의 비책은 가지고 있다.  

바로 한가위 보름달 만큼 마음의 사이즈를 쭈~욱 늘리는 것이다. '둥글게 둥글게~.' 부디 웃어른들의 배려와 아랫사람들의 이해로 안전하고 풍성한 추석이 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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