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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은 여성주의를 기반으로 활동가와 지역주민들이 세우고 운영하는 곳이다. 여성노동자들이 대다수인 살림의원에서 어떻게 하면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하면서 여성노동자들이 일상과 어우러지는 노동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지속하고 있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은 여성주의를 기반으로 활동가와 지역주민들이 세우고 운영하는 곳이다. 여성노동자들이 대다수인 살림의원에서 어떻게 하면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하면서 여성노동자들이 일상과 어우러지는 노동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지속하고 있다.
ⓒ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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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네의 작은 의원에서 일하는 의사이다. 내가 일하는 동네 의원은 좀 독특한데, 지역 주민들과 페미니스트들이 같이 돈과 힘을 모아 만든 곳으로, 8년 전에 20평도 되지 않은 정말 작은 의원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치과와 운동(영양)센터를 같이 운영하고 있고, 올해 내로 돌봄사업소(장기요양기관)도 만들 예정이다.

이 의원이 이렇게 부쩍 성장한 것은 의원이 내는 매출이 높아서거나 잉여가 많아서가 아니다. 페미니스트들과 지역 주민들의 의료에 대한 필요가 하나둘 늘어났고, 그 필요에 따라 우리가 같이 모은 돈이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다. 새 의료기관을 만들 자본금을, 의료기관을 이용할 환자들과 그곳에서 일할 직원들이 같이 모았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 은평구에 있는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다.

동네 작은 의원의 노무관리 전략?

나는 아주 운이 좋게도, 의원 바로 근처에 산다. 집에서 직장까지 걸어서 딱 십 분이다. 이런 근무 조건은 쉽게 찾기 힘든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 직원들과는 출근길에 걸어가다가 종종 만난다. 나 말고도 다들 운이 좋은 건가. 직원들 입장에서야 아침 댓바람부터 직장 상사인 원장을 만나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 일일 수도 있을런가 싶지만, 아무려면, 어차피 곧 마주칠 사이니까, 다들 반가운 얼굴로 인사한다. 반가운 얼굴로 인사하면, 그보다 더 작은 얼굴의 꼬마 친구가 작은 손으로 엄마를 꼭 붙들고 옆에 서 있다. 우리 직원들의 귀여운 자녀들.

걸어서 출근하는 길에 만나는 어떤 직원들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러 가고 있거나 이미 맡기고 출근하는 중이다. 출근을 그렇게 했으니, 퇴근길에도 아이를 찾으러 갈 터였다. 여느 보건의료기관이 그런 것처럼 내가 일하는 직장도 여성 노동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제외하면 사실 전 직원이 여성들이다. 여성만 고용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보건의료 쪽이 워낙 여성노동자 비율이 높기도 하고, 또 여성주의/페미니즘의 운영원칙에 동의하는 직원들을 우선적으로 고용하려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이렇게 여성노동자들이 많으니, 게다가 원래도 페미니스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으니, 보건의료기관의 운영상, 그러니까 일종의 '경영 전략'이자 '인사노무 관리의 한 방편'으로도 '여성노동자들이 일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야 우수한 직원을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 내에서 구할 수 있고, 그래야 조합 의료기관이 살아남을 수 있다.

아이 돌봄에 대한 고민

이 문제는 짐짓 당연한 듯 보이지만, 상당한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직원들의 칼퇴근을 보장하려면 (직원들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데 문제가 없게 하려면), 대기하는 환자 숫자에 따라 조금 앞서 진료접수를 마감해야 한다. 대기하는 환자가 이미 10명이라면 오후 6시까지를 진료시간이라고 공표했어도 오후 5시에 진료 접수를 마감하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5~6시 사이에 진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분들이 허탕을 칠 수도 있다. 그들도 직장을 마치고 진료를 보러 부랴부랴 돌아온 노동자들, 오후 4시에 마치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찾아서 바삐 데리고 온 보호자들에 다름 아니니, 이 문제가 절대 만만치 않은 것이다.

또 예를 들어, 전직원 회식이나 워크샵이라도 갈라치면, 아이를 두고 올 수 없는 직원들을 위해 아이돌봄을 해줄 자원활동가를 찾거나 돌봄선생님을 1박 2일이라도 고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식이고 워크샵이고 참여할 수 없는 직원 엄마들이 있다. 대체 아빠들은 왜 회사 출장이나 워크샵에 가면서 아이를 데려가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증폭시켜, '아이는 아빠가 돌보라, 이 몸은 회사 일이 바빠서'와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여 잠시라도 직원들이 육아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나을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육아 노동을 회사에서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도록 자원을 마련하는 것이 더 나을지, 매번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도 정답이 없는 이런 문제에, 그나마 내가 원칙을 세운 것이 있다면 우리, 여성노동자들 스스로가 좀 더 강해지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몸을 강인하게 만드는 것 역시 살림의원에서 가지고 있는 방향이다. 몸을 근력을 키우고 몸을 쓰는 방법을 배워 강인해질 때 연대와 협동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을 강인하게 만드는 것 역시 살림의원에서 가지고 있는 방향이다. 몸을 근력을 키우고 몸을 쓰는 방법을 배워 강인해질 때 연대와 협동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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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이해하기

살림 같은 동네 의원에도 산전관리를 위해 찾아오는 여성들이 있다. 산전관리라면 당연히 분만 전문 산부인과를 찾아갈 것 같지만, 꾸준히 주치의 진료를 받아온 이들은 '나를 잘 알고 있는 의원'에서 이것저것 상담을 받고자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그녀들은 진짜로 임신 전부터 상담을 신청하곤 하는데, 임신을 하기 위해 어떤 몸을 만들어야 하냐는 것이 제일의 궁금증이다. 뭘 먹어야 하는지?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지? 당연히 맞아야 할 예방접종도 있고, 검사해 봐야 할 항목들도 있지만, 내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근력운동이다!
 
"네? 근력운동이요?"
"네! 근력운동이요, 웨이트요! 자, 생각해보세요. 아기는 태어날 때 3.3kg, 1년만 지나도 10kg이에요. 걔를 들었다 내렸다 안았다 업었다, 하루에 몇 번일 것 같아요? 아기를 역기다 생각하고 최대한 올바른 자세로 들어올리지 않으면 허리, 손목, 어깨, 무릎 다 나갑니다. 그야말로 뼛골 빠지는 거죠. 그러니 임신 전에 해야 할 건 근육을 쓰는 자세를 배우는 거예요."


신생아를 돌보는 여성들이 잘 걸리는 드퀘르벵씨병이라는 것이 있다. 이 어려운 프랑스 이름 질병의 정체는 손목건초염인데, 아기를 들어 올리면서 손목을 자주 꺾다 보니 손목의 근육과 건초 사이에서 마찰이 생겨 염증으로 이어진 것이다. 드퀘르벵씨병에 걸린 아기 엄마들은 손목이 조금만 꺾여도 찌릿한 통증을 심하게 느껴, 손을 잘 쓰지 못하게 된다.

이 질환은 여자들에게 잘 생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팔 근육은 약한데 아이를 주로 돌볼 수밖에 없는 여자들에게 특히 잘 생긴다. 그러니까 독박육아도 이 병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드퀘르벵씨병을 낫게 하려면, 당연히 육아의 짐을 더는 것이 필요하다. 독박육아에서 벗어나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지! 그런데 또 하나, 여자들이 지금보다 좀 더 강인해지는 것도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팔 근육이 약하고, 힘 쓰는 방법을 잘 모르니 손목을 꺾어서 아이의 무게를 지탱하는 이들이, 삼각근과 대흉근, 광배근을 써서 아이를 감당하는 법을 배우는 것, 겨우 하완의 가느다란 근육을 쥐어짜지 말고, 몸통 근육의 굵직한 힘을 팔을 통해 손까지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내 안에 거대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걸 제대로 쓰는 법을 배우는 것.

몸에 대한 권리

이것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엄마가 강해져야 한다는 것과는 절대 다르다. (순간만 아차해도 심하게 구려진다고!) 아이를 위해서, 임신을 위해서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강하고 아름다운 에너지가 흘러넘치면 주변을 적시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자부심에 가득 찬 직원들은 퇴근이 다가오는 시간에도 아파서 찾아온 환자들을 위한 연민을 가슴에 품게 된다. 강인해진 환자들은 아픈 와중에도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권리를 생각할 줄 알게 된다.

더 강해져야 우리 안의 혼재된 정체성을 바탕으로 연대하고 협동할 여유를 갖게 된다. 한편으로는 독박을 걷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강해지는 것. 스스로 그리고 함께. 이것이 내가 여성노동자들의 건강을 생각할 때 항상 떠올리는 기준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원장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신 추혜인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또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9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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