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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청의 '스토리텔링 이음길 및 문병란 문학관 건립' 사업에 동의하지 않는 일부 주민들이 '스토리텔링 이음길 및 문병란 문학관 건립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기서 스토리텔링 이음길이란 6월항쟁의 주역 이한열 열사의 집,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문병란 시인의 집, 그리고 현대 한국 화단의 거목 오지호 화백의 생가를 잇는 답사로를 말한다.
 
이한열·문병란·오지호(시내 쪽에서 접근할 때의 집 순서)

이한열 : 1966년 8월 29일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7년 6월 9일 1000여 학생들과 함께 '대통령 직선제' 등을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이한열은 그해 7월 5일 숨졌다.) 시민과 학생들이 분노하여 민주화를 외치는 시위 군중이 100만 명을 넘게 되었다. 결국 전두환 군사정권은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문병란 : 1935년 3월 28일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다. 1959년부터 1963년까지 3회에 걸쳐 김현승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조선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1975년 이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가입하여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활동을 하다가 학교에서 해직되기도 했다.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공동의장으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역사의식에 바탕을 둔 참여시를 많이 썼으며, 평생에 걸쳐 시 창작과 시 교육에 몰두하가다 2015년 9월 25일 향년 80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오지호 : 1905년 12월 24일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고, 1938년 출판한 <오지호·김주경 2인 화집>을 통해 한국에 인상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천하에 알렸다. 1948년 조선대학교 미술과 창설에 참여한 이래 호남 지역 서양화계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1982년 12월 25일 세상을 떠났고, 유작 34점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되었다.
 

세 사람 모두 화순 출신이다. 다만 지금은 9월 25일 문병란 시인의 기일을 맞아 그의 대표작을 감상하려는 뜻에서 붓을 잡았으므로 이한열 열사와 오지호 화백에 관한 언급은 생략하고자 한다. 

화순은 임진왜란 의병장 최경회(1532-1593) 선생을 모시는 충의사가 있고, 1919년 독립만세운동 때 33인 대표로 활동하다 순국한 양한묵(1862-1919) 선생의 묘소와 추모비가 있는 고장인 만큼 언젠가는 방문을 할 예정이고, 그때는 이한열 열사와 오지호 화백에 대한 예의도 갖출 것이다.   

문병란 시인의 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직녀에게'

문병란 시인의 시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직녀에게'가 아닐까. 이 시는 1999년 박문옥의 작곡과 김원중의 노래를 거치면서 더욱 대중과 친숙한 사이가 되었다. 노래의 가사를 되새겨보고, 높은 소리로 음송도 해본다.  

세월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고이고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그대 손짓하는 여인아, 은하수 건너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여인아, 여인아 이별은 끝나야 한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아무려면 노랫말로 새롭게 가다듬은 것이기 때문에 본래의 시어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때 원작을 찾아 감상하지 않는다면 시인에게 큰 결례를 범하는 꼴이 된다. 필자 같은 문인에게는 시인의 시집이 책장에 꽃혀 있지만, 일반 대중이라면 '(사단법인) 서은 문병란 문학연구소' 누리집을 방문하면 된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을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단순 서정시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노랫말에 견주면 원작은 '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 같은 표현이 있어 훨씬 메시지가 강하다. 필자는 '직녀에게'가 통일의 염원을 노래한 절창으로 역사에 기록될 명시라고 믿는다.

'직녀에게'는 통일의 염원을 노래한 명시

문병란의 시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한편은 '식민지의 국어 시간'이다. 이 시를 읽고 감동한 일본 극작가 오리 교시(小里淸)가 시의 내용을 극화하여 도쿄 고엔지(高円寺)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공연 때 제목은 '국어의 시간'이었다. '식민지의 국어 시간'을 읽어본다.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20리를 걸어서 다니던 소학교
나는 국어 시간에
우리말 아닌 일본말,
우리 조상이 아닌 천황을 배웠다.

신사참배를 가던 날
신작로 위에 무슨 바람이 불었던가,
일본말을 배워야 출세한다고
일본놈에게 붙어야 잘 산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조상도 조국도 몰랐던 우리,
말도 글도 성까지도 죄다 빼앗겼던 우리,
히노마루(일장기)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 앞에서
조센징의 새끼는 항상 기타나이("더러운 놈")가 되었다.
 

어쩌다 조선말을 쓴 날
호되게 뺨을 맞은
나는 더러운 조센징,
뺨을 때린 하야시 센세이(선생)는
왜 나더러 일본놈이 되라고 했을까.

다시 찾은 국어 시간,
그날의 억울한 눈물은 마르지 않았는데
다시 나는 영어를 배웠다.
혀가 꼬부라지고 헛김이 새는 나의 발음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나는 국어 선생이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 간다는 한글,
배우기 쉽고 쓰기 쉽다는 좋은 글,
나는 배고픈 언문 선생이 되었다.
지금은 하야시 센세이도 없고
뺨 맞은 조센징 새끼의 눈물도 없는데
윤동주를 외우며 이육사를 외우며
나는 또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가.

어릴 적 알아들을 수 없었던 일본말,
그날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는데
다시 내 곁에 앉아 있는 일본어 선생,
내 곁에 뽐내고 앉아 있는 영어 선생,
어찌하여 나는 좀 부끄러워야 하는가.


누군가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내 귀에 가만히 속삭이는데
까아만 칠판에 써놓은
윤동주의 서시,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글자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 슬픈 국어 시간이여.


시를 읽으며 두 단어에 주목한다. 제목에 등장하는 '식민지'와 1연에  나오는 '소학교'이다. 시인은 왜 독립운동 시기가 아닌 1970년대의 수업을 '식민지'의 국어 시간이라고 했을까?

그가 보기에 우리나라는 '일본말을 배워야 출세한다'가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로 바뀌었을 뿐이다. '영어 선생'이 '뽐내고 앉아 있는' 상황이다. 문화적 식민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인식이다. 박정희 정부가 그의 시집을 무엇 때문에 '판매 금지 서적'으로 탄압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문화적 식민지 상태 
    
'소학교'가 '국민학교'로 이름이 바뀐 시기는 1941년이다. 문병란 시인은 1935년생이므로 그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아홉 살 때는 소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였다. 그런데 시인은 왜 국민학교라 하지 않고 소학교라고 했을까? 

기억 속에서라도 '(황)국(신)민'이 될 생각이 없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독립 후에도 51년이나 더 사용하다가 1996년에야 초등학교로 바꿨다.이제 지면 사정상 한 편만 더 감상하기로 한다. '압록강 둑은 무사한가'이다.
                         
눈물로 건넜던 이별의 다리
지금도 압록강 둑은 무사한가

스무 살 직녀는 할머니 되어
뗏목에 실은 사연 옛 노래 부르는가

압록강, 대동강, 영산강, 낙동강 강물은
바다에서 하나 되는데

분단 세월 반세기 전설도 아닌데
건너 갈 은하수엔 다리조차 없는가

꼭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동정의 모진 세월 입술을 깨물며

북녀여 직녀여
그대 이름 부른다

다시 찾을 압록강 푸른 물결 부른다
다시 오를 백두산 통일 세상 부른다


필자는 문병란의 시가 좋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가 되니 더욱 좋다. 운율도 살아 있어 시 고유의 읽는 맛도 잘 살아난다. 광주에 '문병란 문학관'이 세워지면 반드시 찾아가 그의 커다란 사진 앞에 고개를 숙이리라. 

* 이 글은 사단법인 '서은 문병란 문학연구소' 누리집의 여러 게시물을 참조해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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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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