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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로나 블루'(코로나로 인한 우울증)를 겪고 있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며칠 전, 지난 4월에 가게를 폐업한 후 아르바이트로 간신히 버텨 오던 고향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8월 들어 확진자가 급속하게 늘며 그나마 할 수 있는 일도 없어 하루하루가 두렵다고 했다. 그에게 약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 <나는 장례식장 직원입니다>(마시멜로 펴냄)를 선물했다.

8월 들어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서의 모 교회 집단 감염 소식이 들려오더니 하루가 멀다 하고 인근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에서 발생한 확진자는 n차 감염자인데, 누구든 지나칠 수밖에 없는 동네 입구 어린이집에 이틀 동안 오갔다고 했다. 또, 동네에서 광화문 집회 관련 확진자가 나왔다. 그래서 더 조마조마, 불안했다.

바쁘고 경황없는 와중에도 책은 놓지 않고 살아왔다. 마음 아픈 일도 책으로 위로받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8월에는 책이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다 읽기 시작한 책도 몇 쪽 읽다가 놓기 일쑤. 보다 빠져들 법한 책을 잡아 봤지만 얼마 못 가 놓곤 했다. 가까이에 와 있는 코로나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불안하고 어수선한, 그래서 책 한 권 읽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면서 마음 앓이를 호소한 고향 친구처럼 '이렇게 살아도 되나?' 막연히 두렵고 조급해졌다.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뭔가 시원하게 풀리지 않을 때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맵거나, 달거나 짠 일명 '맵단짠' 음식이 끌린다는 사람들이 많다. 맵단짠 음식처럼 강렬한, 그래서 정신 번쩍 들게 하는 그런 책이 없을까? 

이런 내가 몇 시간째 붙들고 읽은 책이 있다. 오싹해지고, 깔깔 웃고, 대체 뭘까? 호기심의 촉을 세우고, 나를 울컥하게 만든 이 책을 친구에게 선물했다.

웃다, 울다...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다 
 
 <나는 장례식장 직원입니다> 책표지.
 <나는 장례식장 직원입니다> 책표지.
ⓒ 마시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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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례식장 직원입니다>는 대만의 장례식장에 근무하는 다스슝이라는 20대 청년이 썼다. 청년이 주로 하는 일은 사망자가 발생한 곳으로 출동해 시신을 수습하고 시체 보관실 냉동 창고에 보관하거나, 시신을 장례가 끝날 때까지 돌보는 것. 그런 저자가 자신이 직접 겪은 것들을 들려주니 흥미로울 수 밖에 없는 일화들이 펼쳐진다. 
 
친척들의 성화에 못 이겨 장의사를 찾아와서는 아버지 장례식이 무엇이든 싼 것으로 해달라던 아들도 있었다. 심지어 화장을 할 때는 유골함도 생략했다. 대신 알록달록한 과자 통을 들고 와선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유골은 여기에 담아 주세요." - '키워주지도 않았는데 왜'에서

A씨는 막상 얼굴은 보려 하지 않으면서 꿈에서 엄마를 만났다며 "엄마가 춥대요", "엄마가 목마르대요", "엄마가 레몬이 드시고 싶대요" 했다. 나는 덕을 쌓는 셈 치고 매번 그녀의 부탁을 들어줬다. 발인 전날, 그녀는 매우 기쁜 듯 내게 다가와 말했다. "어젯밤 꿈에서 엄마를 만났어요. 엄마가 정말 감사하다고, 직접 인사를 드리고 싶대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움찔했다. 내게 직접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나는 최대한 겸손한 말투로 말했다. "괜찮아요. 큰일도 아닌데요, 뭘. 게다가 전, 엄마와 여동생 부부, 조카까지 함께 살고 있거든요. 그러니 직접 찾아오는 것은 곤란할 것 같아요"(…) 그 후 신기한 일이 생겼다. 발인 후 위패가 놓여 있던 자리에 숫자가 세 개 쓰인 종이가 한 장 놓여 있지 않은가. 그 세 개의 숫자로 로또를 샀는데 3등에 당첨됐다. - '돌아가신 엄마가 직접 인사드리고 싶대요'에서

그는 장례식장에 근무하기에 앞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요양보호사 등 여러 서비스업에 근무했다고 한다. 그래서 서비스업 특유의 습관이 몸에 배었는데, 장례 관련 전화를 해오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높은 톤으로 "반갑습니다. 기쁘게 모시겠습니다!"라고 인사하는 바람에 "우리 아버지가 죽었는데 넌 기쁘냐?"와 같은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블랙 코미디로 시작하는 책은 ▲장례식장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갖가지 해프닝들과 ▲장례식장에서 일하며 보고 들은 비정하거나 감동적인 사연들 ▲시신 운반사나 시신 복원사, 장의사, 안치실 경비원 등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과 면면들 ▲죽음에 따라 달라지는 시신 상태와 그에 따른 수습, 복원 방법 ▲죽음과 시신 및 장례식장 곳곳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이하거나, 으스스한 괴담 등을 담아냈다. 장례식장이라는 특별하며 엄숙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일화들이 코믹하면서도 한편으론 감동스럽다. 
 
그랬다. 이토록 끔찍한 일을 저지른 이유는 오로지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자신을 버리고 간 그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절대로 오지 않을 단 한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사망자는 건물에서 뛰어내리기 전 남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뒷일을 걱정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그 한 사람의 주의를 끌 수 있을지만 생각했겠지. (…) 만약 저 여성이 죽어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래도 뛰어내렸을까? - '의미 없는 유서'에서

책이 들려주는 일화는 53편. '편의점 밖 그 소녀'나 '귀신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처럼 오싹해지게 하는 이야기들도 있다. 또, '(죽은) 할머니는 왜 그 아이를 불렀을까?'처럼 '귀신이 정말 있나?' 믿고 싶을 정도로 불가사의한 일화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배를 잡고 웃을 정도로 유머스럽다.

그런데 유머러스한 이야기도 저마다 나름의 묵직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또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죽음'이나 '내려놓지 못한 자는 누구일까?(이 이야기에 메모지를 붙여, 이 책을 다음에 읽기로 한 딸의 책상에 올려 뒀다)'처럼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이야기들도 많다. 삶의 의미를 묻거나 힘을 얻게 하는 그런 내용들 말이다. 

책을 읽는 와중 몇 번이고 나의 생활과 주변을 돌아보며 먹먹해지곤 했다. 덕분에 다소 어수선했던 상념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고향 친구는 청소년기에 나보다 책을 더 좋아했다. 그 친구를 다시 만났던 2000년대 초, 그러나 삶의 우여곡절을 몇 고비 겪으며 책을 영영 놓고 살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다행히 이 책은 친구처럼 한동안 글을 멀리한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일화가 짧은 편이다. 친구는 어떤 이야기들을 인상 깊게 읽었을까. 어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어 그 친구와 차 한 잔 나누며 서로를 위로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장례식장 직원입니다

다스슝 (지은이), 오하나 (옮긴이), 마시멜로(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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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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