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망친 여자> 관련 사진.

영화 <도망친 여자> 관련 사진. ⓒ (주)영화제작전원사

 
감희(김민희)는 차를 몰고 친구들을 찾는다. 반나절 혹은 하루 이상을 머물며 집을 둘러보고 친구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과 헤어진다. 영화 <도망친 여자>는 줄곧 이런 이야기의 반복으로 시작되고 끝난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도망친 여자>는 어쩌면 그가 선보인 여러 작품 중 가장 소품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상성과 우연성이 그의 작품 기저에 흐르는 공통된 성질이었다면 이 영화엔 기저뿐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때론 그게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집에 대해 그리고 서로의 남편 혹은 애인에 대해 얘기하고 음식을 나누는 장면을 보면서 관객은 감희와 그 앞에 앉은 상대와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된다.

도망치며 던진 질문들

삶의 진실은 우리가 스치듯 흘려버리는 대화 곳곳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감희는 가장 처음 찾아간 영순(서영화)에게 묻는다. "언니 3층에 무슨 비밀이 있어요? 나 못 믿죠? 3층에 못 올라가게 하는 걸 보니". 더러워서 그렇다고 아니라고 부정하는 영순과 그 말을 듣는 감희 사이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묘한 긴장감 내지는 과거의 어떤 기억들이 있었음을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두 번째로 찾아간 수영(송선미)에게도 비슷하다. 필라테스 강사일을 하며, 그리고 틈틈이 현대무용을 해 온 수영은 돈을 많이 모았다고 털어놓고, 그 말을 감희는 되뇐다. 상대방을 높이면서도 문득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는 것처럼 말이다.

세 번째 만남은 우연이었다.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았던 감희는 우진(김새벽)을 만나게 된다. 앞선 두 만남보다 더욱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사연 역시 보다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한 남자로 두 사람이 갈등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과를 하고 싶었다는 우진을 향해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감희의 모습이 어딘가 쓸쓸해 보인다.

감희 역시 기혼자다. 세 친구를 만나며 공통적으로 그들에게 남편이 출장을 갔고, 지난 5년간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다고 애써 강조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황망함이 느껴진다. 제목 그대로 감희는 무엇으로부터 대체 왜 도망쳤던 것일까. 도망친 행위로 그는 무엇을 얻고 싶었던 것일까. 

여러 질문을 던지게 하고, <도망친 여자>는 거기서 명쾌하게 답하진 않는다. 홍상수 감독의 전작이 그러했듯 상황과 대화의 맥락에서 유추하거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따름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베를린영화제에 진출했을 당시 홍 감독이 "개인적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 개인적 사실이 누구에게나 진실일 수는 없다"고 말한 만큼 이번 영화 또한 열린 태도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영화 <도망친 여자> 관련 사진.

영화 <도망친 여자> 관련 사진. ⓒ (주)영화제작전원사

  
 영화 <도망친 여자> 관련 사진.

영화 <도망친 여자> 관련 사진. ⓒ (주)영화제작전원사

 
자전적 요소 있지만, 해석은 열려 있다

영화 외적으로 또 하나 남는 질문이 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 이후 오롯이 홍상수 감독의 뮤즈로 자리한 김민희는 어떤 배우로 남고 있을까. 홍상수 감독이 발표한 최근작 7편에 모두 김민희가 등장했다. 과거 화려하고 스타성이 강했던 이미지는 옅어졌지만 여전히 화면 곳곳 그의 표정과 몸짓에서 보이는 에너지가 강하다. 영화팬 입장에선 보다 다양한 작품에서 그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이미 김민희는 이런 의문에 답한 바 있다. 국내언론에 두 사람이 함께 선 처음이자 마지막 공식석상에서 김민희는 국내 상업 영화에 더 이상 출연하지 않을 것인지, 계속 홍상수 감독의 뮤즈로 살 것인지 묻는 한 기자의 말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영화를 할 때) 어떤 계획이나 목표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주어진 작업에 굉장히 만족하고, 연기할 때 그 과정에만 몰두하려 합니다. 그걸로 모든 게 채워지길 바랍니다. 홍상수 감독님과 작업하는 모든 순간이 너무 귀한 일입니다."

어쩌면 이제 홍상수 감독이 답할 차례일지 모른다. 꾸준히 자신의 작품을 내놓고 있는 와중에 개인적 진실과 사건을 재료로 일상성을 강조한 작업 말고 김민희라는 배우를 염두에 둔 또 다른 색깔의 작품을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일까. 물론 전적으로 창작자 개인의 영역이며 자유겠지만 다채로운 김민희를 좀 더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의 마음도 분명 존재하니 말이다.

한줄평: 여전히 홍상수다운 특별한 진실의 나열
평점: ★★★☆(3.5/5)

 
영화 <도망친 여자> 관련 정보

각본 및 감독: 홍상수 
출연: 김민희, 서영화, 송선미, 김새벽, 이은미, 권해효, 신석호, 하성국 
제작: ㈜영화제작젂원사 
배급: ㈜영화제작젂원사, ㈜콘텐츠판다 
러닝타임: 77분 
관람등급: 청소년관람불가 
해외 배급: ㈜화인컷 
개봉: 2020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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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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