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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이 불러온 분노, 순혈주의를 남기다.
 경제난이 불러온 분노, 순혈주의를 남기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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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독일 베를린에서는 주목할 만한 시위가 두 차례 있었다. 8월 1일 열린 첫 번째 시위에는 독일 정부의 코로나19 통제조치를 반대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약 2만 명이 모였다. 8월 29일, 두 번째 시위에는 2배 가까이 늘어난 약 3만 8천 명이 모였다. 피켓에는 '노 마스크', '코로나19는 음모다' 등의 글이 적혀있었다. 이들은 정부로부터 자신들의 기본적인 자유를 지키겠다며 "우리가 국민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관련 기사: 코로나 음모론 집회에 4만여명... 극우파 위한 무대되다 http://omn.kr/1otcg)
  
경제 활동의 자유 보장과 코로나19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며 특정 정치 집단에 의해 조작되어 발표되고 있다는 음모론이 뒤섞인 집회였다. 음모론이 만들어낸 집회라는 점에서 가짜뉴스의 영향력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이 특이했다.
 
80년 전 제국주의로 돌아가자는 독일, 왜?
  
하지만 주목할 만한 점은 그것이 아니다. 시위 참가자들은 '네오나치'를 떠올리게 하는 제국주의 독일제국기를 흔들며 "독일제국을 부흥하자"라는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 중 수백 명은 연방의회 건물로 진입하려다 제지를 당하자 경찰에게 돌을 던지는 다소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에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시위대의 이와 같은 행동이 민주주의에 대한 우파 극단주의자들의 공격이라며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인 집회에서 표현할 수 있지만, 시위대가 민주주의의 적들과 정치적 선동가들의 마차에 올라탄다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왜 코로나19 관련 정부 감염 정책 반대 시위에서 나치즘을 떠올리는 깃발을 흔들며, 80년 전 제국주의 독일로 돌아가자고 했을까.
  
8월 29일(현지시간) 독일 수도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코로나19 관련 통제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8월 29일(현지시간) 독일 수도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코로나19 관련 통제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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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우파 극단주의자들의 과격한 시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12월 21일, 대중지 빌트는 토마스 데메지에르 당시 내무장관의 말을 빌려 난민수용소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수백 건 연달아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반(反)난민 시위대의 공격으로 지붕이 남아있지 않을 만큼 난민수용소가 파괴되었다며 외국인 증오 범죄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4년, 난민수용소를 향한 극우세력의 공격은 170여 건이었으나, 2015년에는 그 수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2018년에는 독일 켐니츠에서 반난민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 내 동양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 또한 계속해서 증가하는 중이다. 최근까지도 독일에서 인종차별이 발생했다는 기사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코로나19는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독일인들의 동양인 차별에 대한 명분으로 '중국발 코로나19'가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주독일대사관' 홈페이지에 공지사항이 하나 올라왔다. 코로나19가 악화하면서 중국인 및 동양인에 대한 혐오가 고조되고 있으니 신변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내용이었다. 동양인을 향한 인종차별적 발언은 물론 욕설에 구타 사건까지 지속해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독일 유학생 커뮤니티에선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더러운 코로나19라며 카트를 걷어차였다', '코로나19 취급을 받으며 구타당했는데 경찰이 이름만 적어갔다' 등의 인종차별 피해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관련 기사: 코로나19 옮을라... 일본인들, 분데스리가 경기장서 쫓겨나 http://omn.kr/1mr0x)

누군가는 "사람마다 겪는 게 달라서 그렇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사화될 정도의 인종차별은 계속 발생한다. 지금 독일에서 벌어지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경제난이 불러온 인종차별
    
8월 29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서 열린 '코로나19 통제' 반대 시위
 8월 29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서 열린 "코로나19 통제" 반대 시위
ⓒ 연합/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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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사는 데 있어서 가질 수 있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독일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건 아닐까. 

경제가 어렵고 사회는 어지럽다. 거기다가 코로나19 불황으로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힘든 시기 속 일반 국민들은 삶에 대한 불만이 쌓였고, 그 분노를 분출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게 하필 '이방인'이 됐다. 이들의 어긋난 대상 선정이 결국 반난민과 반이민 그리고 인종차별을 만들어냈다.
 
누군가 한마디만 던지면 된다. "난민 때문이야", "이민자 때문이야", "동양인 때문이야" 등 이미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을 꺼내주기만 하면 됐다. 군중심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퍼지고 흔들린다. 그게 잘못된 걸 알아도 눈만 감으면 쉽게 피할 수 있어서.
  
독일의 이런 모습은 과거 수많은 독일인이 힘들어진 경제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나치의 선동에 흔들렸던 것과 닮았다.

당시 독일은 패전으로 인해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연합국에 감당할 수 없는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이로 인해 독일인들은 배상금과 경기 불황으로 경제적 고통을 겪게 됐다. 이때 생겨난 좌절감과 패배감이 만든 분노는 한 대상을 정해 '탓'하기 시작했고, 그게 유대인이었다. 정당은 패전으로 생긴 경제난을 유대인 탓으로 돌리기만 해도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심리를 가장 잘 이용해 세력을 키운 이들은 정치적 선동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극우 정당 AfD(독일을 위한 대안)다. AfD는 반이슬람, 반이민 정책을 내세웠고 지지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18년 기준 여론조사에서 AfD가 2위를 차지했을 만큼 이들의 세력이 자라났다. 극우 시위의 규모는 날로 커졌다.
 
나치는 그저 과거가 아니다. 새로운 나치가 만들어지는 것 또한 순식간이다. 올해 초만 해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우익 극단주의자 독일인이 터키인과 중동 소수민족 등이 포함된 9명을 총기 난사 해 숨지도록 만들었다. 용의자가 남긴 자백 편지엔 "독일이 추방하지 못하고 있는 특정 민족들을 제거한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2019년에 발생했던 독일 동부 유대교회당 공격과 난민 옹호 독일 정치인 살해에 이어 3번째 주요 극우 범죄다.

이들의 분노를 잠재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창고가 가득 차면 예절을 알고, 입을 옷과 먹을 양식이 풍족하면 영광과 치욕을 안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이었던 관중이 한 말이다.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이다. 먹고살기 힘들고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무엇이 수치스럽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깨닫지 못한다.
 
근본적인 문제로 들어가 '힘든' 사람들의 '힘든 이유'부터 해결해 주면 어떨까. 우선 경제활동이 어려워져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게 된 사람들을 위한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일자리를 잃은 구직자에게 취업 지원을 해주고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앞서 독일은 지난 4월 경제활동을 하던 모든 내·외국인에게 기본 5000유로(약 673만 원)의 '코로나 즉시 지원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일시적인 구제안은 해결책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사람들의 생활은 다시 어려워졌다. 이들을 위한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정부를 향한 불신과 인종차별은 점차 심각해질 것이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인종차별 금지법을 강화해 국민들에게 좀 더 제대로 된 교육을 해야 한다. 선동을 유발하는 극우의 가짜뉴스도 자신들의 경제, 정치적 이익을 위해 유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속해야 한다. 인종차별 금지법을 가장 먼저 통과시키는 등 유독 차별 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알려진 독일마저도 실상이 이러니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가 해당하는 것은 비단 독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이다. 프랑스 파리, 스위스 취리히, 영국 런던에서도 독일에서 일어난 코로나19 통제조치 반대 시위와 비슷한 집회가 같은 날 열렸다.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는 반이민 행정명령을 내렸다. 한국이라고 다를 것 없다. 극우 지지자들은 날로 늘어난다. 이 또한 경제적 고통이 주는 분노의 삐뚤어진 표출임을 이제 더 이상 외면하지 말자. 지금 우리 시대가 보여주는 암울한 자화상이다.

태그:#독일, #극우, #신나치주의, #인종차별, #코로나19불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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