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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동부 해안의 전형적인 한가한 전경
 호주 동부 해안의 전형적인 한가한 전경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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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정착한 이후 비행기보다는 자동차 여행을 주로한다. 호주 오지를 비행기로 둘러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행기를 타고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여행보다는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에도 주변을 즐길 수 있는 자동차 여행을 선호하는 개인적인 취향도 한몫한다.

지금도 오래전 호주 대륙을 한 바퀴 돌았던 여행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에서 원주민들과 18개월 정도 함께 지내기도 하면서 집을 떠나 있었던 경험은 큰 자산으로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자동차로 호주 대륙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떠오른다. 

요즈음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장거리 여행이 불가능하다. 호주에서는 퀸즐랜드(Queensland)주를 비롯해 교통을 통제하는 주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내서 가까운 동네를 지도에서 찾아본다. 하이랜드 공원(Hyland Park)이라는 마음에 드는 동네 이름이 눈에 뜨인다. 동네 이름에 공원(park)이 들어가 있으니 분위기가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에서는 2시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 동네다. 숙소를 예약했다.

집을 나서는 날이다. 장거리 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 없다. 평상시와 같이 천천히 일어나 가방을 챙긴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다. 봄이 멀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여행하기에 좋은 날씨다. 

눈에 익은 고속도로를 천천히 운전하며 민박집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일단, 민박집에서 가까운 남부카 헤드(Nambucca Heads)라는 동네를 둘러본다. 남부카 헤드는 큰 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있는 동네다. 지방 뉴스에도 자주 언급되는 제법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다. 

강을 따라 만든 긴 산책로를 걷는다. 최근에 보수한 산책로가 마음에 든다. 주중이지만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걷는 사람이 많다.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는 긴 제방이 있다. 호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방과 다른 점이 있다면 크고 작은 바위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다. 제법 멋진 작품(?)도 있다. 이곳에도 강태공들은 물고기와 세월을 낚고 있다. 느지막한 시간까지 걸으며 하루를 정리한다.  

다음 날 아침에는 숙소 근처를 걷는다. 집을 나서니 정원을 잘 가꾼 평범한 단독 주택이 줄지어 있다. 봄기운을 알아채고 일찌감치 기지개를 켜는 꽃나무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바닷가 동네답게 보트를 가지고 있는 집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체통을 특이하게 만들어 시선을 끄는 집도 있다. 호주 시골 동네를 다니다 보면 집주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우체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곳도 예외가 아니다.
 
개성 있는 우체통; 시골을 여행하다 보면 특이한 우체통을 자주 볼 수 있다.
 개성 있는 우체통; 시골을 여행하다 보면 특이한 우체통을 자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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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 주인이 알려준 대로 작은 숲속 오솔길에 들어선다. 가파른 경사에는 계단을 만들어 놓았고 하천을 건너는 다리도 만들어 놓아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천천히 걷는데 중년 여인이 반려견과 함께 따라온다. 잠시 옆으로 비켜서면서 먼저 보낸다. 여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앞질러 간다. 물병이 매달려 있는 작은 배낭을 짊어지고 씩씩하게 걷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덩치가 큰 개도 익숙하게 주인을 따라간다. 

산책로를 따라 해변에 도착했다. 바닷물이 빠진 너른 모래사장에 서너 명의 사람이 개를 데리고 한가하게 바다를 즐기고 있다. 오늘 하루는 온전히 나의 것이다. 특별한 계획도 없다. 해변을 걷는다. 신선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파도가 내는 소리를 들으며 두어 시간 걸었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난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오후에는 이웃 동네에 가보았다. 벨라 비치(Valla Beach)라는 동네다. 동네에 들어서니 바닷가 언덕에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는 이미 한 남성이 큼지막한 카메라를 들고 해변을 주시하고 있다. 카메라 가방이 옆에 있는 것으로 보아 순간을 기다리는 사진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작가 옆에서 휴대전화로 해변을 담는다. 집에 두고 온 큼지막한 카메라가 생각난다. 그러나 휴대전화로도 내가 원하는 사진을 찍는데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전망대 옆 도로를 따라 해변까지 자동차로 내려가 본다. 주차장이 넓다. 해변 입구에는 상어가 포착되어서 해변을 폐쇄한다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잠시 주위를 걷는다. 벽돌로 큼지막하게 최근에 지은 샤워실도 있다. 한여름에는 많은 사람이 찾는 곳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해변은 한가하다. 상어 때문에 물놀이를 금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해변을 향해 있는 벤치에 작업복 입은 청년이 한가하게 점심을 먹고 있을 뿐이다. 
 
밸리 비치(Vally Beach) 전망대에서 전문 사진사가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밸리 비치(Vally Beach) 전망대에서 전문 사진사가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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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가 출연해 해변을 통제한다는 경고문
 상어가 출연해 해변을 통제한다는 경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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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보니 멀지 않은 곳에 하천을 가로지르는 사람만 다닐 수 있는 다리가 있다. 대충 짐작으로 방향을 잡고 다리를 찾아 나선다. 다리 근처 물가에는 대형 야영장이 있다. 그러나 생각보다 야영객은 많지 않다. 야영장 근처에서는 주택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다. 안내판을 보니 은퇴한 사람을 위한 주택단지를 짓고 있다. 노후 생활을 지내기에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리 주변에 차를 세우고 걷는다. 바닷물과 얕은 강물이 만나는 곳을 건너 해변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든 운치 있는 다리다. 입구에는 큼지막한 게시판에 온갖 물고기 사진과 함께 잡을 수 있는 물고기 크기와 수량이 적혀 있다. 

사람 두 명이 함께 가기에는 비좁은, 그러나 제법 긴 다리를 걷는다.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심이 얕은 물 속을 물고기가 떼를 지어 다닌다. 지나가는 청년에게 물고기 이름을 물으니 숭어(mullet)라고 한다. 도미가 아니냐고 재차 물으니 다른 물고기를 가리키며 저것이 도미라고 한다. 도미와 숭어가 떼를 지어 다니고 있으나 낚시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다리에서 잠시 물고기를 구경하는데 큼지막한 가오리(Stingray) 한 마리가 배회하고 있다. 물고기를 구경하며 잠시 다리 난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물고기가 많은 한가한 동네, 잡을 수 있는 물고기 수량과 크기가 있는 게시물을 다리 입구에 설치해 놓았다.
 물고기가 많은 한가한 동네, 잡을 수 있는 물고기 수량과 크기가 있는 게시물을 다리 입구에 설치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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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리가 한가하게 유영하는 수심 얕은 강
 가오리가 한가하게 유영하는 수심 얕은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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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 태평양 물결이 출렁이는 백사장에 도착했다. 해변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사람이 없어서인지 황량하게 보이면서도 아름다운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이다. 되돌아오면서 강을 따라 만들어 놓은 숲속 오솔길을 걷는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다와 강을 번갈아 보며 바다 냄새와 풀냄새를 만끽한다.

혼자 걷는 외진 오솔길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책상에서 나온 사상은 신뢰하지 말아라. 걸으면서 나온 사상만을 신뢰하라고 했다는 철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이런저런 떠오르는 생각에 몸을 맡긴다. 삶을 나름대로 다시 짚어본다.  
     
집에서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낯선 동네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 민박집을 떠난다. 관광이 목적이라면 아침 일찍 와서 구경하고 갈 수도 있는 거리다. 그러나 가끔은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에서 한발 물러선 시간, 잠시 거리를 두고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상생활에 파묻혀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가끔 자신과 떨어져 관조하는 여유를 갖겠다고 다짐한다. 
 
이곳에는 바위에 자신들의 흔적을 남겨 놓은 그림이 많다.
 이곳에는 바위에 자신들의 흔적을 남겨 놓은 그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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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호주 동포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그:#호주, #HYLAND PARK, #VALLA BEACH, #NAMBUCCA HEADS, #N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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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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