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를 때 중요한 건 절대 포기하지 않는 끈기다. 힘들어서 그만두고 포기하고 싶어도, 숨이 헉헉 넘쳐 주저 앉고 싶을 때도, 참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정상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산을 내려 갈 때는 전혀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
"내리막 길을 갈 때 넘어지지 않으려면 발꿈치에 힘을 줘야 해."
산에서 내리막길을 만날 때마다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이다. 어릴 적 아버지는 주말마다 나를 데리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곤 내리막 길을 만나면 항상 가르쳐 주셨다.
"몸의 무게중심은 뒤 쪽으로 주고, 발이 땅에 닿을 때 약간 사선으로 디뎌야 해, 아주 심한 경사를 내려갈 때는 앞으로 걷지 말고 옆으로 걷고..."
몇 발 앞의 바닥 상태나 지형 지물도 주시하면서 내려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발을 헛디뎌 나뒹굴지도 모른다.
내 아이가 자라 대학 기숙사로 독립한 후 부터 주말마다 아내와 함께 산을 찾기 시작했다. 고작 서너 시간 정도의 가벼운 산책 수준이지만 주말마다 빠지지 않고 산을 찾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운동은 필수가 된다. 몸매를 멋지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50 대 초 하루 하루 달라지는 몸 상태, 이제부터는 살기 위해서 최소한 이 정도의 운동은 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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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을 오르는데는 끈기가 필요합니다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어도, 쉬지않고 오르다 보면 어느 새 정상에 올라 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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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몸 뿐일까? 마음도 예전 같지는 않다. 아무것도 무서울 것 없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젊었을 때가 아니다.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해 회한이 들 때도 있지만, 어떤 꿈들은 내가 할 수 없었던… 정말 '꿈' 에 불과했던 것이었음을 인정하는 시간이 된다. 이렇게 우리 인생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런데 왜 아무도 인생의 내리막 길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마음 자세는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을까? 산을 내려갈 때마다, 발꿈치에 힘을 줄 때마다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 승승 장구하던 세월을 지나 명예 퇴직을 한 친구들도 있고, 회사에 충성하느라 밤늦게까지 야근이며 회식에 지치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병을 얻은 친구도 있다.
어릴 때부터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시작으로, 일류 대학 가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을 교훈 삼던 학창 시절을 거쳐, 가족보다 회사가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사회 생활을 했던 그 모든 순간에 열심히 오르라고만 배웠다.
그렇게 내달리던 삶이 어느덧 중년의 세월을 맞아 몸도 마음도 내리막길이 되면서부터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왜 아무도 나이 들어 가는 것에 대해서는 열심히 가르쳐 주지 않았던 걸까? 내리막 길을 딛는 기술이 필요한 것인데…
더 탄탄하게 남은 삶에 발을 내딛는 법, 올랐던 모든 것들을 내려 놓아도 충만하게 남아 있는 것들을 느끼는 법, 내려 올 때 보이는 경치도 즐기는 법, 이제 그만 헉헉 대지 않고도 산을 오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산을 내려갈 때마다 발꿈치에 힘을 준다. 그리고 나지막이 읊조린다.
"이제 예술이 필요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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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을 내려가는 데는 예술이 필요합니다. 인생도 내리막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려가는 기술을 배운 적이 없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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