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 18:37최종 업데이트 20.09.0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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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국민의힘 관계자가 국회 당 대회의실 백드롭을 교체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지난 2일 '국민의 힘'으로 당명을 교체했다. 당명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힘, 국민을 위해 행사하는 힘,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힘을 함축한 것이라는 것이 당의 설명이다. 2020.9.3 ⓒ 연합뉴스

 
2일 미래통합당의 새로운 당명인 '국민의힘'이 확정되었다. 논란이 없지는 않았지만 비상대책위원회와 상임전국위원회에서 연이어 추인하고 전국위원회가 최종 의결함으로써 미래통합당은 7개월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너무 잦은 당명 변경에 귀에 익고 입에 붙을 만하면 바꾼다는 세간의 우스갯소리도 없는 건 아니지만, 당명 교체를 통해 탈이념을 강화하겠다는 포부에 지금과는 다른 보수 정당으로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불과 7개월 만에 막을 내린 미래통합당. 지난 2월 17일 자유한국당은 유승민계의 새로운보수당, 이언주 의원의 미래를향한전진4.0 등과 미래통합당으로 합치면서 새로운 보수 정당을 공언했다. 이후 실시된 4.15 총선에서 국정농단 세력이라는 손가락질에 이제는 '탄핵의 강을 건넜다'며 지지를 호소했지만,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박근혜 없는 새누리당이었고 반성 없는 자유한국당이었을 뿐 새로운 모습을 찾아 보기 힘들었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지만, 국정농단 사건으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꿀 이유는 딱히 없었을 것이다. 또 자유한국당이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을 했다면, 총선 직전에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꿀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자유한국당에서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개정하면서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믿어 달라고 큰절하고 읍소도 했지만, 그것이 쇄신의 다짐이라기보다는 과거 나쁜 흔적 지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만한 국민은 다 알았던 셈이다.

이 때문에 미래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꾼 데에도 나쁜 과거 흔적 지우기에 불과하다는 비난과 그래도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변화의 기대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고 진정성을 증명해야 하는 게 국민의힘의 과제다. 당명은 언제나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당명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저력은 국민의 관심과 지지다. 국민의힘의 전신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그 당명들이 허물어진 건 폐기해야 할 낡은 정당의 서까래로 또다시 새집을 지어왔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으로 당명 개정을 확정한 전국위원회는 기본소득 도입, 피선거권 연령 인하 등 개혁적인 정강 정책과 '국민통합위원회', '약자와의동행위원회' 신설을 위한 당헌도 의결했다. '보수 정당이 이런 정책을'이라며 놀랍기도 하지만 아직 박수는 이르다. 빈 공약이 될지, 변화의 시발점이 될지, 판단의 근거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7개월 만에 사라진 미래통합당도 '혁신, 확장, 미래'를 비전으로 모두에게 열린 기회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등의 10대 약속을 내세웠다. 자유한국당이나 새누리당 당명 개정 때도 숱한 말잔치는 넘쳐 났다. 국민의힘도 언어의 성찬으로 끝나지 않을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말의 성찬 넘어설 수 있을까

김종인 비대위가 의원직 4연임 금지안을 내놓았다가 중진들의 반발에 좌초됐다. 연임의 횟수가 갑질과 부패의 크기처럼 저울질 되는 현실에서 4연임 금지안은 여야 지지를 떠나 국민 대부분이 지지할 개혁안임이 틀림없다.

당은 좌초의 원인이 헌법 위반 소지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대통령 5년 단임제, 지자체장 4연임 금지(3연임까지만 허용)와의 형평성을 생각하면 급조된 핑계라는 생각이 든다. 또 논란과 좌초의 과정에서 나타난 구태 세력의 발목잡기에 국민의힘이 내세운 개혁적인 정강 정책과 국민들의 아픔을 치유하겠다는 위원회가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쇄신을 표방하던 비대위 체제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과거로 빠르게 되돌아갔던 보수 정당. 내년 4월로 정해진 김 위원장이 임기 내에 구태로 회귀할 길을 끊어놓을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더 근본적인 회의는 김 위원장이 개혁적인 의제 발굴을 넘어 입법까지 강제할 진정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과거 경제민주화 의제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선거를 지휘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 의제는 번번이 국민들의 표를 모으는 달콤한 공약이었을 뿐 정책으로 입안되지 못했다.

훗날 김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탓으로 돌렸지만, 양당을 넘나들며 공약 보따리 장사를 했다는 세간의 비아냥도 영 틀린 지적은 아니다. 기본소득 도입과 피선거권 연령 인하가 국민의힘 잔칫상에 올리는 고명이 되지 않으려면 진정성을 증명할 김 위원장의 적극적인 행보가 필요하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출범부터 당명을 바꾼 최근까지 여전히 보수 정당의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많다. 8월 15일 광화문 집회가 코로나 재확산의 계기가 되어 국가의 경제와 국민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마당에 집회 참석자의 외침은 새겨 들어야 한다며 오히려 극우 난동 세력을 옹호했던 주호영 원내대표. 국민 건강을 볼모로 잡은 의사들의 파업에 정부가 협박만 하고 있다고 의사 편을 든 김종인 위원장. 본인들의 수십 억 시세차액은 묻어두고 정부 다주택 고위 공직자에게 왜 강남 아파트를 안 팔고 지방 아파트를 파느냐고 다그치는 의원들. 이전 보수 정당과 다를 바 없다.

낡은 과거와 싸워야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온라인 화상회의 시스템을 활용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0.9.3 ⓒ 연합뉴스

 
국민의힘의 지지율을 올리고 수권 정당이 되려면 투쟁의 상대는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정강정책을 내놓아도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식 낡은 사고의 의원들이 다수라면 국민의힘 당명 개명 효과는 7개월 만에 간판을 내린 미래통합당보다 짧을 수도 있다.

당명 개정이 빛을 발하려면 개혁 정책이 말잔치로 끝나지 않도록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하고, 의원 개개인이 변화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국민의힘은 당명에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힘' '국민을 위해 행사하는 힘'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힘'의 3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말의 성찬일 수 있지만 국민을 떠받들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과거, 국민의 힘에 맞서고, 국민을 편 가르고, 권력의 힘으로 국민을 지배하려 했던 보수 정당의 과오를 되풀이해선 안된다. "시대 변화에 뒤처진 정당, 기득권 옹호 정당, 이념에 치우친 정당, 계파로 나눠 싸우는 정당을 바꿔 변화를 선도하고, 국민과 호흡하는 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게 김종인 위원장의 포부다.

기대도 있고 의심과 우려도 반반이다. 국민의힘의 당명 개정이 보수 정당에 새로운 주춧돌을 놓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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