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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제의 기반은 설득과 협상 그리고 토론을 통한 과정과 절차에 있다. 진정한 민주사회의 실현은 사회구성원 상호간에 얼마나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소통이 이루어지느냐에 달려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하여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는 게 쉽지 않다. 이번 의대정원 증원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책이 제안되면 차분하게 그에 대해 짚어보면 된다. 아직 국회의결 같은 절차가 남아있다. 그런데 의사들이 파업을 하고 진료를 거부하고 있다. 의사협회는 이로 인해 단 한 명의 의사라도 처벌을 받으면 총파업 하겠다고 국민을 위협하고 있다.

의사들이 급기야 반정부 선동도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공공의대 입학생 선발과 관련하여 아직 정해지지도 않은 내용을 문제 삼으며 시민단체추천제 같은 사실이 아닌 내용을 확산시키다가, 이제는 공공의대 설립이 현 정부가 좌파 의사를 키우기 위해서란다.

나 개인적으로는 의사는 진정한 의미에서 좌파 의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좌파가 의사의 본분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윤을 극대화하고, 의료를 효율관점에서 접근하며, 무엇보다 자신이 제일이라는 우월주의에 빠진 의사는 의사선생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 사회의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인 조직 구조도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이런 조직 안에서는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수평적 의사소통의 장이 열리기가 어렵다. 9월 2일 YTN 보도에 의하면 전공의들 사이에서 파업에 반대하는 의견은 묵살된다고 한다. 자신들의 이익만이 최고이고, 그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뭉칠 뿐이다. 내부의 다른 의견은 용납되지 않는다.

의사들이 반대하며 주장하는 문제가 여럿 있지만, 공공의대 입학생 선발 방식을 두고 많은 잘못된 내용이 이들에 의해 확산되고 있다. 자신들의 반대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국민들에게 교육이라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민감한 문제를 끌어들여 현안을 호도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 홍보물에 시민단체장의 추천을 받은 학생이 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공공의대에 입학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홍보물에는 "의사파업을 반대하시는 분들 풀어보세요"라며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 중 누구에게 진단을 받겠느냐는 내용도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추천제는 '가짜뉴스'라고 밝힌 바 있고, 국회 발의 안에도 이러한 내용은 없다고 했다.

좋은 의사가 성적으로만 결정되는가? 나는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의사보다 공공의대 의사에게 가겠다. 공공의대 의사들이 정말 의사선생님이라면. 이참에 논의를 확대해서 일반 의대에도 성적만이 아니라 지역인재선발이나 취약계층 자녀와 같은 지원자들에게 문호를 더 개방해서 공부만 잘한 의사가 아니라 아픔을 함께하는 의사를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독일에서는 일반 의대 지원생들의 평균성적인 아비투어 최고점 1.0(Einser-Abi)이 아닌 2.0(실제로는 1.3) 정도만 되면 지역의사 과정에 입학이 가능하게 했다. 독일 아비투어 1.3도 매우 우수한 성적이다. 10년 의료취약지역 의무 진료 같은 조건이 있고, 이 의무조항을 위반할 경우 25만 유로(한화 약 3억2500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데도 아주 인기가 높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공공의대도 성적이 턱없이 부족한 학생들이 지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나는 일반 의대 지원자와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도 한다. 의사라는 직업이 워낙 인기가 높기 때문에 10년 지역근무를 불사하고라도 지원자는 넘칠 것이다. 의사들이 말하는 '우수하지 않은' 의사가 양산 될 것이라는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독일에서도 지역의사 할당제로 우수하지 않은 학생들이 지역의사가 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성적이 조금 떨어진다고 '좋은' 의사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성적인 의견이 대다수였다. 오히려 성적도 좋고 인성도 갖춘 정말 좋은 의사후보생들이 입학을 한다는 것이다.

지방에서 지역민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에는 전교 1등이 아니라 인성이 갖춰진 의사가 필요하다. 우리도 공공의대가 도입된다면 선발과정에서 반드시 독일처럼 인성에 대해 광범위하게 테스트를 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에 자리를 잡고 지역과 함께 살아가는 지역의사가 나올 것이다.

독일 바이에른 주는 2단계 선발 과정으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1단계에서는 전공적합성 테스트와 보건의료 관련 시험을 보며, 2단계에는 면접인터뷰를 통해 인성 테스트를 한다. 우리의 공공의대 계획과 비교해서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선발된 학생들은 바이에른의 모든 대학 의학부에서 학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 대학이 거의 국공립이기에 가능하겠지만, 우리도 공공의대 설립이 어려우면 지방 국립대에 지역의사 과정을 신설하여 지역의사를 교육하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내용들은 2018년 10월 1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필수의료의 지역 격차 없는 포용국가 실현을 위한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 3장의 학생선발에 보면 "시․도별로 학생을 일정 비율 배분, 미래 공공의료 인재로서 적절한 역량을 갖춘 학생을 별도의 평가체계로 선발"한다는 내용과 같다.

또한 이 계획에는 ⓵공공보건의료에 대한 이해도가 높거나 관련 경험이 있으며, 공공보건의료에 기여하고자 하는 동기와 헌신 의지가 확고한 학생 선별 ⓶도 지역에서 충분한 거주 경험(중·고교 졸업)이 있는 학생 선발 ⓷대학뿐만 아니라 지역 및 공공보건의료 전문가를 포함한 선발위원회를 구성하여 선발의 타당성을 높임이라는 선발기준도 있다. 의협이나 전공의협의회에서 주장하는 시민단체장 추천은 없다.

지역의사 교육과정 측면에서도 독일 작센 주는 지역에 기반 한 지역의사 교육을 도입했다. 2020년 10월부터 지역의사 의대생들은 대학병원이 아닌 자신이 졸업 후 의사로 진료를 할 지역에서 실습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지방에 젊은 의사 공급을 개선하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센 주정부는 지역의사 지망생들이 학업 기간 동안 이미 현장의 병원에서 진료 경험을 쌓았고, 그로써 "뿌리가 형성"될 경우 지역에 자리를 잡는 경우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교육과정 또한 종합대책 3장 '교육과정 예시'의 내용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① 3학년까지 표준교육과정으로 운영하고 4학년에 트랙제(공중보건, 공공의료, 국제보건)를 운영하여 학생 선택 기회 제공 ② 지역사회 또는 공공보건의료 전문가와 학생 간 1:1 매칭 지도 ③ 몰입형 지역사회 조기노출 프로그램 운영(스웨덴 제네바대학 사례 참고) ④ 지방의료원, 보건소, 의료취약지, 일차의료 실습 의무화(장기통합임상실습과정) ⑤ 통일의료, 국제보건분야에 진출할 핵심자원 양성 프로그램 운영 ⑥ MD(Doctor of Medicine)-MPH(Master of Public Health) 과정을 의무화하여 졸업 후 보건행정과 의료정책의 전문가로서 역할 수행" 제대로만 운영된다면 참으로 이상적인 의사교육이다.

독일 대학입시 기관인 대학입학허가재단(hochschulstart.de)에 따르면 2019 여름학기에 정확히 1만8928명의 지역의사 지원자가 있었고, 그 중 10% 정도만이 합격했다고 한다. 우리보다 의사도 많고, 지역에 따른 격차도 작은 독일의 지역의사 입학정원은 매년 약 1700명이다.

우리는 400명 증원한다는 계획인데 이 난리다. 이 중 지역의사가 300명, 역학조사관·중증외상 등 특수 전문분야 50명, 의과학자 50명 등 매년 400명의 의대생을 추가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는 2.4명으로 OECD 평균 3.4명에 훨씬 못 미친다. 독일은 4.3명이다. 지역별로도 서울은 3.1명이지만, 경북 1.4명, 세종 0.9명 등 격차가 크다.

대한병원협회도 '의사인력 적정성 연구'의 중간결과를 토대로 의대 정원을 500명 늘릴 경우 2065년에야 의사 수급이 마침내 적정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500명을 현재 증원해도 45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 의대정원을 증원해야 한다.

나는 이런 이유로 현재 의사파업이 정당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의사들의 반대는 자신들의 이익만을 유지하려는 집단행동임이 분명하기에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다.

태그:#지역의사, #의대정원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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