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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1일 자로 서울 신촌역 역사 내 게시되었던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DAHOBIT, 아래 '아이다호') 광고가 내려졌다. 이로써 5월부터 장장 4개월에 걸친 아이다호 캠페인이 마무리됐다. 신촌역 아이다호 광고는 수많은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의 얼굴을 통해 성소수자가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살고 있음을 시민들에게 보여주었다. 

동시에 수차례 훼손이 반복되며 성소수자들이 마주하는 혐오와 차별의 현실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광고 게시가 마무리될 시점에 반복적인 훼손이 이루어져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3박 4일 신촌역에 상주하며 광고를 지키고 함께 꾸몄다. 3박 4일의 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
 
 7. 31. 신촌역에 게시된 아이다호 광고
 7. 31. 신촌역에 게시된 아이다호 광고
ⓒ 박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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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1일, 서울 지하철 신촌역 역사에 아이다호 광고가 게시되었다. 243명의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의 얼굴사진을 배경으로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광고였다. 아직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가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내기 쉽지 않음을 고려하면,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지하철 역사에 게시된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컸다. 이 광고를 접하는 시민들이 지하철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내가 만난 사람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다고 한 번쯤 생각하기를 바랐다.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이 5월 17일임에도 8월에 광고가 게시된 것에서 짐작되듯, 게시 자체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캠페인을 기획한 아이다호 공동행동에서는 원래 6월 게시를 목표로 서울교통공사에 광고 게시를 위한 심의를 요청했으나 공사는 구체적인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게시 불승인 통보를 내렸다. 재심의 신청 후에는 대행사로부터 '민원 발생 시 철거되며 이 경우 환불이 불가하다'라는 어이없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성소수자가 함께 살아간다는 너무나 당연한 메시지를 담은 광고가 이렇게 거부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었다. 이에 캠페인 기획단은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고 언론에 문제점을 알리며 항의 행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투쟁의 결과 7월 14일 공사로부터 광고 게시가 승인되었고, 마침내 아이다호 광고는 7월 31일부터 8월 31일까지 한 달간 신촌역에 게시되었다. 7월 31일 캠페인 기획단이 함께 모여 광고의 실물을 보고 인증샷을 찍으며 느꼈던 뿌듯함은 그러한 고투의 결과로 얻은 것이었다.

잇따른 훼손, 3박 4일 바짝 프로젝트

'무사히 게재되길 바란다', 광고 캠페인 기획 당시 얼굴 사진과 후원금을 보내며 많은 이들이 이런 말을 건넸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마주하는 심각한 혐오와 차별을 알기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한다 했던가. 광고가 게시된 지 채 이틀이 지나지 않은 8월 2일 광고 현수막은 칼로 무참하게 난도질당한 채 발견되었다. 재물손괴이자 명백한 성소수자 혐오에 기반한 증오범죄(hate crime)이었다. 이는 광고에 참여한 사람만이 아닌 수많은 성소수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충격을 받은 채로 끝낼 수는 없었다. 캠페인 기획단은 광고가 임시로 철거된 자리에 포스트잇으로 다시 '성소수자' 글씨를 만들고 증오 범죄의 실상을 알리는 안내를 부착했다. 소식을 접한 시민들 역시 응원 메시지를 담은 포스트잇을 붙이며 해당 공감을 함께 꾸몄다. 비록 해당 포스트잇 역시 8월 3일 훼손되었지만 같은 날 광고가 다시 게시되었다. 또한 칼로 훼손한 범인이 검거되었음이 알려지며 어느 정도 위안이 되었다. 증오 범죄로 입은 피해는 물론 컸지만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보다 단단해질 수 있었다.

이후 8월 하순까지 광고는 그 자리를 지켰다. 게시한 그대로는 아니었다. 본의 아니게 유명해지며 수많은 사람이 포스트잇과 스티커로 광고판을 꾸몄다. 그렇게 신촌역 광고판은 하나의 광고 현수막을 넘어서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인권을 말할 수 있는 '광장'이 되었다.
 
 8. 7.자 아이다호 광고 모습
 8. 7.자 아이다호 광고 모습
ⓒ 박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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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수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주며 광고 캠페인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게시 종료를 5일 남겨둔 8월 26일 누군가가 검은 매직으로 광고판에 낙서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즉각 경찰에 신고하고 수사 결과를 기다렸지만, 바로 다음 날인 8월 27일에는 푸른색 물감으로 글씨를 알아보기 어렵게 광고판이 훼손되었다. 연이어 이어지는 증오 범죄 앞에서 캠페인 기획단은 고민하였다. 경찰 수사를 통해 범인에 대한 즉각 검거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이것이 훼손 자체를 예방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광고를 재게시하더라도 훼손이 반복될 우려가 있었다.

이에 기획단은 증오 범죄의 실상을 알리는 의미에서 훼손된 광고를 재게시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게시까지 남은 4일 동안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신촌역에 지킴이로서 상주하기로 했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우리의 광고판을 꾸며줄 것을 부탁했다. 그렇게 '3박 4일 바짝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함께 지키고 만들어가는 공간

쉽지는 않은 결정이었다. 신촌역은 매일 오전 5시부터 자정까지 개방된다. 지킴이를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새벽에 나오고 한밤중에 들어가야 한다. 나의 경우 3일 동안 새벽 시간대를 지켰는데 첫차도 뜨지 않은 새벽 3시경 집을 나오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러 활동가가 자원하여 필요한 시간대가 모두 채워졌다.

그렇게 하여 3박 4일 바싹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사실 지킴이라고 하지만 특별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광고판을 마주하고 역사 내에 몇 시간 동안 앉거나 서 있으면서 가끔 광고판에 적힌 메시지들을 한 번씩 다시 보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다만 그 효과는 분명했다. 

사람이 앞에 있음으로써 혹시 있을지 모를 훼손을 예방했을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시민들이 광고판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역사 바닥에 앉아 있는 나를 한번 신기하게 쳐다보고는 시선을 따라 광고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심히 지나가는 이들도 있었지만 문구를 따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사진을 찍는 이들도 많았다.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이게 그 광고구나 하면서 천천히 살펴보는 이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지킴이 활동을 통해 서로를 향한 지지와 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8월 28일 오후 신촌역에 앉아 있을 때 어떤 분이 나와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각자 광고를 바라보며 1시간가량 앉아 있는 동안 서로 대화는 주고받지 않았지만 같은 목표를 갖고 함께 나아가는 동지로서의 유대를 느낄 수 있었다. 고생이 많다며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분들도 있었고, 음료수나 간식을 건네주는 분들도 계속 있어 나중에는 농성장을 방불케 했다. 광고판 앞에서 퀴어댄스팀 큐캔디의 공연이 이어지기도 했다. 한둘씩 찾아와 인증샷을 찍는 가운데 간간히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이 공간이 정말로 우리가 지킬 가치가 있는 곳임을 실감케 했다.

훼손된 광고 역시 재탄생하였다. 푸른색 물감은 여러 사람의 힘으로 얼룩만을 남긴 채 지워졌고 포스트잇 등이 훼손된 자리에는 다시 새로운 문구들이 붙었다. 광고판 위에 한 송이 꽃을 붙이고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문구를 적어주신 분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젠더퀴어, HIV 감염인, 성노동 종사자 등 다양한 정체성과 삶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포스트잇 등을 붙였다. 칠레에서 온 한 외국인 커플은 자신들의 국기 그림과 함께 스페인어로 '우리는 모두 똑같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어떤 한 분이 이야기한 것처럼 아이다호 광고는 훼손됨으로써 역설적으로 모두가 꾸미는 공간으로 재탄생하였고, 성소수자 인권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우리는 지워지지 않는다
 
 8. 31.자 아이다호 광고 모습
 8. 31.자 아이다호 광고 모습
ⓒ 박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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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킴이 활동 동안 응원만을 마주했던 것은 아니다. 8월 29일 새벽에 한 차례 더 광고 부착물이 훼손되기도 했고 8월 31일에는 활동가들이 있는 앞에 가해자가 나타나 소동을 부리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함께 있다는 연대가 있었기에 혐오에 맞서 광고와 서로를 지킬 수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8월 30일 오후 나를 포함해 몇몇 활동가들이 광고판 앞에 서 있을 때 한 남성이 우리를 향해 세 장의 A4 종이를 뿌리고 갔다. 그 안에는 '성소수자=변태', '성소수자=정신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의도가 분명한 모욕 행위이다. 그런데 막상 당하는 입장에서는 모멸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헛웃음도 났다. 직접 이야기도 못 한 채 종이만을 뿌리고 후다닥 지나가는 저이는 대체 어떤 삶을 사는 걸까.

한 활동가는 이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성소수자가 일상 속에 있다는 말도 못 견디면서 어떻게 세상을 살 거냐고. 그 말마따나 어디에나 존재하는 성소수자의 존재조차 못 견뎌서 혐오를 일삼는 이들과, 서로의 연대를 확인하며 함께 광장을 만드는 성소수자들, 과연 누구의 삶이 더 풍요롭다 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읽는 분들이 각자 그 답을 찾아보기를 바라며, 광고에 붙여진 메시지 중 일부로 글을 마무리한다.

"너희가 찢을 수 있는 것은 겨우 종이뿐, 우리는 지워지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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