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채널 예능 <노는 언니> 한 장면.

E채널 예능 <노는 언니> 한 장면. ⓒ E채널

 
지난 8월부터 방영을 시작한 E채널 예능 <노는 언니>는 평생 운동만 하며 살아왔던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것들에 도전하며 '놀아보는' 세컨드 라이프 프로그램을 표방했다. 박세리(골프), 남현희(펜싱), 곽민정(피겨), 한유미(배구), 정유인(수영), 김은혜(농구) 등 한국 스포츠 각 종목을 대표하는 전-현직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대거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 스포테이너(스포츠스타+엔터테이너)라는 용어가 유행할 만큼 스포츠 스타들의 방송계 진출이 활발하다. 하지만 그동안 남성 스포츠 스타들에 비하여, 여성 스타들의 모습을 방송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뭉쳐야 찬다>, <아는 형님>, <1박 2일>, <도시어부> 등 '버라이어티'나 '야외 예능' 장르 역시 철저하게 남성 출연자들 위주로 짜였다. 

<노는 언니>는 여성 스포츠 스타들의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색다른 조합을 들고나왔다. 진행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문 MC나 연예인 없이 모두 스포츠 선수로만 구성한 것도 실험적이었다.

아무래도 <노는 언니>를 보면서 기존 남성 예능들의 데자뷔가 겹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프로그램의 제목부터가 <아는 형님>을 패러디한 분위기를 풍기는   데다 전설적인 스포츠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는 점에서는 <뭉쳐야 찬다>의 컨셉을 연상시킨다.

초창기의 <아는 형님>이나 수많은 남성 버라이어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노는 언니> 역시 색깔이 아직 확실하게 자리 잡힌 프로그램이라고는 할 수 없다.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처음 만나서 함께 MT를 가는 모습을 보여준 1,2회에 이어, 3,4회에서는 스포츠에 전형적인 예능식 게임을 결합한 '언림픽'(언니+올림픽)을 선보이기도 하고, 5회에서는 다시 야외로 나가 캠핑을 즐기는 모습이 방송됐다.

멤버 구성도 첫 회를 함께 했던 이다영-이재영이 하차하고 한유미와 김은혜가 합류하는 등 지속적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여성 스포츠스타만으로 구성된 예능이 처음이고 멤버 개개인의 방송 역량도 아직 검증되지 않은 만큼, 제작진과 출연자 모두 서로를 적응하고 파악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국대 언니'들의 방송 적응력은 우려했던 것보다는 준수한 편이다. 역시 한 종목을 풍미한 운동 선수들답게 어떤 미션이나 상황이 주어지면 자신도 모르게 승부욕이 발산하고, 때로는 몸개그까지 선보이며 재미를 선사한다.

스포츠 스타들이라서 '토크'나 '진행'에는 막연히 취약할 것이라는 우려도 기우다. 팀의 맏언니이자 방송경험도 상대적으로 많은 박세리가 자연스럽게 리더의 역할을 맡아 분위기를 잘 이끌어주고 있으며, 나이차이 나는 어린 멤버들도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거리낌없이 할 말을 다 하는 분위기다. 방송이 거듭되면서 팬들은 잘 몰랐던 스포츠 종목이나 해당 선수들의 알려지지 않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하나씩 풀어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기서 <노는 언니>가 경계해야 할 것은 어설픈 기존 예능의 코드를 결합하려다가 프로그램이 이도저도 아닌 아류작의 한계에 갇히는 것이다. 제작진은 초기에 예능이 익숙하지 않은 멤버들의 적응을 우려한 듯, MT 에피소드 중간에 황광희, 유세윤, 장성규 등 연예인 멤버들을 진행자 역할로 투입했다가 시청자들 사이에서 순조롭게 진행되던 이야기의 맥만 끊었다는 혹평을 받았다.

결국 제목처럼 <노는 언니>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작진들이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알아서 '마음껏 놀 수 있는 판'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깔아주느냐에 달렸다고 할수 있다. 여행이나 스포츠도 좋지만, 굳이 고정된 포맷에 연연할 필요 없이 여러 가지 미션에 도전하면서 프로그램에 어울리는 색깔을 찾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알고 보면 <아는 형님>도 처음부터 지금처럼 성공한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내로라하는 방송쟁이들을 모아놨음에도 지금의 컨셉과 캐릭터가 안정적으로 자리잡는데 사실상 1년 가까이가 걸렸다.

심지어 여성만 나오는 예능은 더 만들기 어렵다는 선입견이 강하다. 사실상 최초의 여성 스포츠 버라이어티물로서 <노는 언니>의 연착륙 여부는, 앞으로 국내 방송가에 '여성 중심 예능'의 부활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실험무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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