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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 가격에 턱없이 못 미치지만, 마당이 있던 고향 집을 떠나 서울 도심의 반지하에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나이를 먹고 집은 조금씩 넓어졌지만, 내 터전은 도심과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결국에는 서울에 있는 회사까지 가기 위해 1시간 30분 동안 매일 아침 광역버스로 즐겁지 않은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해보지 않고서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웃픈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매일 이걸 해내는 모두가 위대한 순례자다.

설상가상으로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까지 착용해야 하니, 뒷자리에서 버스 안을 둘러보면 괴기스럽기 그지없다. 왕복 3시간을 견디기 위해 책도 읽어보고, 명상도 해보는 등 별짓을 다 해 봤지만, 최종선택은 음악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라디오 키즈 세대일지 모를 나는 여전히 라디오 앱을 통해 음악을 듣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라디오를 듣던 어느 날, 반주부터 귀에 쏙 박히는 팝 하나가 비루한 몸뚱이를 움직이게 했다. 몇 해 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퍼렐 윌리엄스의 <해피>처럼 대책 없이 신나면서, 세련된 멜로디였다. 빌보드 1위를 차지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는, 잘 만들어진 팝송이었다.

역사를 새로 쓴 '다이너마이트'
 
방탄소년단 '다이너마이트' 티저 사진.
 방탄소년단 "다이너마이트" 티저 사진.
ⓒ 연합뉴스=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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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끝나고 DJ의 소개를 통해 이 곡이 방탄소년단(BTS)의 신곡 <다이너마이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한 곡을 무한반복으로 듣게 되었고,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슬금슬금 BTS의 다른 노래들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예전 서태지의 음악을 즐기지 못하던 아버지를 보며, 나는 나이가 들어도 최신 곡을 꿰고 있을 거라고 단언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을 때, BTS의 노래를 즐기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사죄의 말씀을 올렸었다.

역시 사람은 그 나이가 되어보지 않고, 미래의 일에 대해서 단정을 지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나는 소망한다. 광복절날 일장기를 들고 거리로 나가는 행동을 하지 않는 분별력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있기를...

퇴근 후, 동갑내기 아내에게 BTS의 신곡을 들려주었고, 며칠 후 출근길에 아내가 톡을 보내왔다.

"BTS 빌보드 핫 100 1위, 팝 역사를 새로 쓰다."

코로나에 장마에 태풍에, 폭염에, 미세먼지에 신의 이름을 빌려 더러운 욕망을 채우려는 존재들에 의해 지친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뒤이어 여성호르몬이 용솟음치는 나이에 걸맞게 버스 안에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그리고, 아재답게 IMF 시절 맨발의 박세리와 하이킥의 박찬호의 분투를 통해 위로를 받던 시절을 떠올렸다.

선진국의 완성은 경제, 군사력뿐만 아니라 문화라는 마지막 퍼즐이 필요하다. BTS가 문화강국의 한 축을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삶의 질은 물질로 어느 정도는 향상 시킬 수 있지만, 우리의 정신을 채우는 것은 음악을 비롯한 문화일 것이다.

이 노래들이 없었다면

살아온 반 백 년 가까운 시간을 돌아보니, 삶의 고비마다 위로가 되어준 노래가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끝없는 사막처럼 펼쳐진 야자(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오아시스가 되어준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이 있었으며, 사람이 더워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94년 여름의 신병 훈련소에서는 <날개 잃은 천사>가 있었다.

어학연수를 다녀오고도, 100번 넘게 서류전형에서 탈락한 IMF 시절의 마이 히든트랙은 <서른 즈음에>였으며, 물리적으로 완벽한 노총각에 접어든 나이에 맞이한 이별의 순간, 자취방의 BGM이 되어준 알리의 <365일>이 있었다.

40대의 나이에 좌천이 되어 아내 몰래 눈물 흘리며, 매일 밤 듣던 해철이 형의 <민물장어의 꿈>이 없었다면 글을 쓰는 나는 없었을 것이다.
 
방탄소년단(BTS)이 2019년 12월 31일(현지시간) 밤 미국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스퀘어에서 새해맞이 라이브 무대를 펼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이 2019년 12월 31일(현지시간) 밤 미국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스퀘어에서 새해맞이 라이브 무대를 펼치고 있다.
ⓒ 뉴욕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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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은 늘 힘겨웠지만, 2020년은 모두에게 참으로 고단한 한 해이다. 이런 시국에 큰일을 해낸 BTS도 대견하지만, 오늘을 견디고 버티는 우리도 대단하다.

제목부터 경박한 두 권의 역사책(<찌라시 세계사>, <찌라시 한국사>)을 출간한 후, '역사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았다.

역사는 슈퍼 히어로 무비다.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한 줌의 빌런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면, 도처에 도사리고 있던 -개인의 영달을 포기한- 바보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바보들을 지지하고 마침내 그들을 히어로로 만드는 것은 쪽수에서는 밀리지 않는 우리들이다. 기술의 진보는 소수의 천재에 의해 가능하지만, 역사의 진보는 다수의 국민들만이 이룰 수 있다.

오늘의 방탄소년단을 만든 것은 아미라면, 오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매일
출근하여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코로나와 고군분투하는 당신들이다.

먼 훗날, 세상이 2020년을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지만, 나는 코로나로 모두가 힘겨워 하던 시기에 또 한 곡의 노래로 위안을 받았다고 기억할 것이다.

고맙다, BTS!

태그:#BTS, #방탄소년단, #아미, #다이너마이트, #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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